[OSEN=고성환 기자] "불만이 있으면 소셜 미디어가 아니라 직접 전화해라."
아직도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는 듯하다. 이번엔 로드리고 데 폴(30,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대표팀 동료 엔소 페르난데스(23, 첼시)의 인종차별 논란에 대해 입을 열었다. 역시나 사과와는 거리가 멀었다.
영국 '메트로'는 19일(이하 한국시간) "아르헨티나 스타 데 폴이 엔소의 인종차별 논란 이후 그를 언팔로우하고 소셜 미디어로 비판한 첼시 선수를 비난했다"라고 보도했다.
엔소는 최근 몰지각한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뭇매를 맞았다. 발단은 남미축구연맹(CONMEBOL) 코파 아메리카 2024 우승 뒤풀이. 아르헨티나는 지난 15일 CONMEBOL 코파 아메리카 2024 결승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라우타로 마르티네스의 골로 콜롬비아를 1-0으로 꺾으며 정상에 올랐다.
아르헨티나는 이번 우승으로 코파 아메리카 2021,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에 이어 이번 대회까지 메이저 대회 3연속 우승이라는 대업을 이뤘다. 동시에 코파 아메리카 최다(16회) 우승국으로 올라섰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승리의 기쁨에 취한 엔소가 소셜 미디어 라이브를 통해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팀 버스 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는데, 노래 가사에 인종차별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것. 이 영상은 순식간에 소셜 미디어를 통해 퍼져나갔다.
안 그래도 이미 논란이 됐던 노래였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프랑스를 꺾고 우승했을 때 팬들이 불러 비판받았기 때문. 노래에는 "엄마는 나이지리아, 아빠는 카메룬 사람이지만 여권에는 프랑스라고 적혀 있지", "(킬리안) 음바페는 트렌스젠더들과 자는 걸 좋아해", "들어봐. 그리고 널리 퍼뜨려. 그들은 프랑스에서 뛰지만, 모두 앙골라 출신이야" 등의 가사가 담겨 있었다.
음바페의 사생활에 관한 루머와 아프리카계 출신으로 구성된 프랑스 선수단을 조롱하는 가사로 명백한 인종차별적 챈트다. 아무리 농담식이라고 해도 피해자들로서는 불쾌할 수밖에 없다.
가사가 자극적인 만큼,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당장 엔소의 첼시 동료들이 먼저 반응했다. 현제 첼시 구단에는 1군만 악셀 디사시, 브누아 바디아실, 레슬리 우고추쿠, 크리스토퍼 은쿤쿠, 말로 귀스토, 웨슬리 포파나 6명의 프랑스 국적 선수가 있다. 게다가 모두 아프리카계 흑인이다.
특히 아버지가 코트디부아르인인 포파나는 불쾌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논란이 된 영상을 공유하며 "2024년의 축구. 거리낌이 없는 인종차별"이라고 적었다. 포파나뿐만 아니라 디사시와 귀스토 역시 엔소와 소셜 미디어 팔로우를 끊었다.
또한 첼시 구단은 성명을 통해 페르난데스에 대해 "차별적인 행동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면서 자체 징계 조치에 착수했다. 프랑스축구협회(FFF)도 필립 디알로 회장이 직접 나서서 아르헨티나 대표팀과 국제축구연맹(FIFA)에 직접 이의를 제기하고 법적 제소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엔소도 머리를 숙였다. 그는 17일 소셜 미디어를 통해 "대표팀 축하 행사 중 제 인스타그램 채널에 올린 영상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이 노래에는 매우 모욕적인 표현이 포함돼 있으며 이러한 단어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전혀 없다"라며 "나는 모든 형태의 차별에 반대하며, 코파 아메리카 축제의 도취감에 사로잡힌 것에 대해 사과드린다. 해당 영상과 그 순간, 그 단어는 나의 신념이나 성격을 반영하지 않았다. 정말 죄송하다"라고 사과문을 올렸다.
당사자인 엔소는 잘못을 인정했지만,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억울한 모양이다.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아르헨티나 올림픽 대표팀 감독은 "우리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인종차별과거리가 멀다. 모든 것이 맥락에서 벗어난 이야기"라며 "난 각 나라의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가 농담으로 하는 말이 다른 곳에서는 다른 의도로 잘못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라고 황당한 발언을 내놨다.
이뿐만이 아니다.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은 '주장 리오넬 메시와 축구협회 회장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한 훌리오 가로 체육부 차관을 비판하며 곧바로 해임해 버렸다.
심지어 빅토리아 비야루엘 부통령은 "어떤 식민주의 국가도 축구 노래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말을 한다고 해서 우리를 협박하지 않을 것"이라며 "위선자들, 분노하는 척하지 말라. 엔소, 난 당신 편이다"라고 공개 옹호했다. 인종차별의 심각성을 하나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여기에 엔소의 대표팀 동료인 데 폴까지 입을 열고 나섰다. 그는 유튜브 채널 'OLGA'에 출연해 "경기장에서 부른 노래를 분석하진 않는다. 사람들은 그 노래를 농담에 더 가깝게 본다"라며 "난 인종차별로 고통받고, 인종차별을 싫어하는 이들을 이해할 수 있다. (적합한) 장소가 있는 것 같다. 만약 어떤 사람이나 엔소 동료들이 기분이 상했다면 소셜 미디어로 얘기할 게 아니라 그에게 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데 폴은 "약간의 악의가 있거나 전혀 상관없는 일과 엔소를 엮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아주 이상하다. 쓰러진 나무를 발로 차는 것 같다. 전화해서 '무슨 일이야?'라고 하면 된다. 항상 라커룸에서 함께 있는 사람들이다. 그를 팔로우하지 않는 건 내게 무의미한 것 같다"라며 "엔소에게 전화를 걸어 '들어봐. 우리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사과하는 글을 올리는 게 어때?'라고 하면 끝난다. 그런 쇼를 보여줄 필요가 없다"라고 주장했다.
물론 데 폴의 말이 어떤 맥락인지는 이해할 수 있다. 팀 내 분위기를 위해서라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키우기보다는 내부적으로 해결하는 게 옳다는 것.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외부인이자 가해자 옆에 있던 데 폴이 할 말은 아니다. 데 폴이 했어야 하는 말은 피해자들을 향한 훈수가 아니라 사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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