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기자]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외국인 타자 요나단 페라자(26)는 지난달 23일 대전 삼성전부터 3일 대전 KIA전까지 최근 8경기 연속 지명타자로 나서고 있다. 우익수로 38경기(38선발 303이닝), 좌익수로 41경기(29선발 259⅔이닝) 나섰지만 최근에는 지명타자로 고정됐다.
외야수로는 최다 9개의 실책을 범할 만큼 페라자는 수비가 약하다. 내야수 출신으로 2020년부터 외야수로 포지션을 바꾼 탓인지 기본기가 떨어진다. 의욕은 넘치지만 공을 쉽게 놓치고, 떨어뜨린다. 미국 마이너리그 때도 수비가 최대 약점으로 지적됐고, 한국에 와서도 언제 어떻게 터지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다.
하지만 페라자가 최근 붙박이 지명타자가 된 것은 단순히 수비를 못해서가 아니다. 올해 팀 내 최고 타자로 떠오른 김태연이 우익수로 자리잡은 가운데 2군에서 콜업된 뒤 기회를 살린 ‘왼손 거포’ 김인환(30)이 좌익수로 비중을 늘려가고 있는 영향이 크다. 김경문 한화 감독의 내년 밑그림은 이미 ‘좌익수 김인환’이다.
김경문 감독은 “앞으로 김인환을 좌익수에 쓰려고 한다. 지금 2번을 치고 있는데 좋은 타순에 갈 수 있는, 타격 재능이 있는 선수다. 앞으로 특별하지 않는 이상 김인환이 계속 좌익수로 나올 것이다. 내년이 되면 그 위치가 낯설지 않게 만드는 게 목표”라면서 남은 시즌 김인환을 좌익수로 고정하겠다고 밝혔다.
김인환은 2022년 113경기 타율 2할6푼1리(398타수 104안타) 16홈런 54타점 OPS .722로 활약하며 왼손 거포로서 존재감을 보였고, 신인상 투표 2위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112경기 타율 2할2푼5리(325타수 73안타) 7홈런 42타점 OPS .639로 하락했고, 올해는 1루수·지명타자 포지션이 겹치는 FA 안치홍의 가세로 입지가 좁아졌다.
4월 중순 잠깐 1군에 콜업돼 3경기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한 뒤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잊혀지는가 싶었지만 6월초 김경문 감독이 부임한 뒤 기회가 왔다. 김경문 감독이 와서 1루뿐만 아니라 좌익수 수비도 본격적으로 연습했고, 지난달 14일 1군의 부름을 받았다. 이후 13경기 타율 3할5푼(40타수 14안타) 1홈런 5타점 OPS .820으로 맹타를 치고 있다.
대타로 시작해 지난달 23일 대전 삼성전부터 2번 타자 좌익수로 고정돼 8경기 연속 선발 출장했다. 이 기간 페라자와 1~2번 테이블세터를 이뤄 한화의 공격 야구와 7연승을 이끌었다. 좌익수 수비에서도 큰 실수 없이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인데 3일 KIA전에선 1회 정확한 원바운드 송구로 2루 주자 최원준을 홈에서 잡아냈다. 첫 보살로 팀의 실점까지 막아냈다.
김인환을 과감하게 2번 좌익수로 발탁한 김경문 감독도 흡족해했다. 김경문 감독은 “1루수만 해오다가 내가 온 뒤 외야도 시켰다. 외야 수비 연습할 시간이 많이 없었는데 지금 이 정도면 잘하는 것이다. 나름 운동 신경이 있다고 봐야 한다. 최형우(KIA)도 맨 처음에는 외야 수비가 낯설었는데 지금은 엄청 잘하고 있지 않는가”라며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고 봤다.
최형우도 2002년 삼성에 입단할 때는 포수였지만 경찰야구단을 다녀온 뒤 2008년부터 좌익수로 포지션을 바꿔 1군에서 기회를 받았다. 처음 몇 년은 외야 수비가 불안했지만 꾸준히 경험을 쌓아 평균 수준으로 올라왔다. 김인환도 최형우와 같은 좌타 거포 유형으로 타격을 살리기 위한 외야 전향이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다.
김 감독은 “(타격 지표가 떨어지는) 우리 팀으로선 인환이가 좋은 공격력을 갖고 있으니 써야 한다. 수비에서 실수를 해도 다음날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그 자리에서 힘이 생길 수 있게끔 하려고 한다. 현재까진 기대보다 잘 해주고 있다”고 힘을 실어줬다.
이대로 김인환이 좌익수를 자기 자리로 만든다면 한화는 우익수 김태연과 함께 외야 코너가 해결된다. 자연스럽게 페라자의 입지에도 영향을 미친다. 내년에 외국인 타자를 중견수로 찾을 수도 있다. 페라자가 남은 시즌 지명타자로서 확실한 폭발력을 보여줘야 살아남을 수 있다. 5월까지 리그 최고 타자로 활약한 페라자이지만 펜스와 충돌로 가슴을 다친 뒤 30경기 타율 2할4푼2리(120타수 29안타) 3홈런 15타점 OPS .683으로 페이스가 완전히 꺾였다. 이대로 시즌을 마친다면 지명타자로서 활용 가치도 낮다. ‘좌익수 김인환’ 카드가 성공하면서 페라자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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