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후광 기자] 한때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국가대표 뒷문지기로 활약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불과 6개월 전 지난해 헌신을 인정받아 팀 내 비FA 투수 최고 연봉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들은 왜 올 시즌 패전조로 전락한 것일까.
지난 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시즌 14번째 맞대결.
두산 이승엽 감독은 0-4로 끌려가던 4회초 무사 1, 2루 위기에서 권휘를 내리고 김명신을 투입했다. 추가 실점을 막고자 지난해 믿을맨으로 활약한 김명신에게 추격의 발판을 마련하는 추격조 임무를 맡긴 것이다.
소위 패전조 전락도 서러운데 투구 내용 작년의 김명신이 아니었다. 2이닝을 소화했는데 키움 타선에 8피안타 1사구 3탈삼진 4실점으로 난타를 당했다. 첫 타자 김재현 상대 1타점 적시타를 맞은 뒤 임병욱의 삼진, 이주형의 진루타로 이어진 2사 2, 3루에서 김혜성(2타점), 송성문, 최주환(2타점), 변상권을 만나 무려 4타자 연속 안타를 허용, 순식간에 스코어가 0-9까지 벌어졌다.
김명신은 5회초에도 마운드에 올라 1사 후 김재현, 임병욱 상대 연속 안타, 이주형에게 사구를 내줘 만루 위기를 자초한 뒤 김혜성을 만나 초구에 1타점 좌전 적시타를 허용했다.
2-13으로 크게 끌려가던 8회초에는 한때 필승 요원으로 이름을 날렸던 박치국이 마운드에 등장했다. 그 또한 선두타자 김건희의 내야안타, 이주형의 우중간을 가르는 2루타로 처한 2사 2, 3루 위기에서 송성문에게 2타점 좌전 적시타를 맞으며 고개를 숙였다. 기록은 2이닝 3피안타 무사사구 3탈삼진 2실점 28구.
두산은 마운드 난조 속 키움에 5-15 대패를 당하며 3연승 뒤 2연패 수렁에 빠졌다.
김명신과 박치국 모두 한때 두산 뒷문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선수다. 김명신은 ‘헌신의 아이콘’, 박치국은 ‘필승 잠수함’으로 이름을 날렸던 시기가 있었다. 3일 경기처럼 상대에 승기가 넘어간 상황에서 이른바 가비지이닝을 처리하는 건 이들에게 낮선 임무다.
김명신은 지난해 필승조와 전천후를 오가며 두산의 2년 만에 포스트시즌 복귀에 큰 힘을 보탰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팀이 필요로 할 때 마운드에 올라 70경기 3승 3패 1세이브 24홀드 평균자책점 3.65로 헌신했고, 그 결과 1억4500만 원에서 8000만 원 오른 2억2500만 원에 2024년 연봉 계약을 체결했다. 리그 불펜 최다 이닝 3위와 함께 베어스 투수 비FA 최고 연봉의 주인공이 됐다.
김명신은 최근 2년 연속 75이닝 이상 소화 여파로 1군이 아닌 2군 스프링캠프로 향해 휴식과 회복에 중점을 뒀다. 다행히 페이스를 빠르게 끌어올려 개막 엔트리 승선에 성공했지만, 부진을 거듭하면서 1군과 2군을 자주 오갔다. 올해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김명신의 기록은 34경기 2승 1패 4홀드 평균자책점 8.24로 처져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주말 잠실에서 만난 이승엽 감독은 “사실 김명신이 지난해 많이 무리했다”라고 운을 떼며 “지금 구위가 나쁜 편은 아닌데 리그 투수들의 평균 구속이 확실히 올라온 느낌이다. 김명신의 경우 제구력으로 강약을 조절하는 유형인데 상대적으로 다른 투수들보다 공의 힘과 스피드가 떨어져 보인다. 선발투수가 150km를 던지다가 김명신이 140km를 던지니 타자들 눈에 익을 수밖에 없다”라고 바라봤다.
박치국은 제물포고를 나와 2017년 신인드래프트에서 두산 2차 1라운드 10순위 지명된 우완 사이드암 투수다. 데뷔 첫해부터 신예답지 않은 승부사 기질을 앞세워 필승조 한 축을 꿰찼고, 이에 힘입어 이듬해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승선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치국은 그해 67경기 1승 5패 3세이브 17홀드 평균자책점 3.63 호투로 두산 10년 필승조의 탄생을 알렸다.
승승장구하던 박치국은 2021년 스프링캠프에서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며 7월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았다. 이후 긴 재활을 거쳐 2022년 6월 1군에 복귀했지만 15경기를 뛴 가운데 팔꿈치 인대 부위에 불편함을 느꼈고, 다시 6개월이 넘는 장기 재활에 돌입했다.
박치국은 이승엽 감독 부임 첫해인 지난해 금메달 필승조의 면모를 되찾았다. 62경기에 출격해 52⅔이닝을 소화하며 5승 3패 2세이브 11홀드 평균자책점 3.59로 재기에 성공했다. 박치국은 인고의 시간을 거쳐 이기는 순간에 출격해 리드를 지켜내는 베어스 필승조의 핵심 요원으로 인정받았다.
박치국은 올해도 이승엽호의 필승 요원으로 분류됐지만, 39경기 2패 1세이브 3홀드 평균자책점 7.41로 방황 중이다. 4월부터 부진이 시작되면서 최지강, 이병헌, 김택연 등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줬고, 패전조로 보직을 옮겨서도 큰 반전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박치국이 크게 뒤진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르는 것 자체가 낯선 장면인데 부진까지 겪으며 2군에도 두 차례 다녀왔다.
이승엽 감독은 “박치국은 구위는 좋은 편인데 스트라이크-볼 비율이 좋지 않다. 스트라이크와 볼의 차이가 크다 보니 타자들이 그렇게 어려워하지 않는다”라고 아쉬워했다.
두산은 여름 들어 전반기를 책임진 어린 불펜 투수들이 체력 과부하에 시달리고 있다. 이승엽 감독이 꼽은 전반기 MVP 가운데 한 명인 최지강과 전천후 이영하가 부상 이탈했고, 이병헌, 김택연은 철저한 관리 속에 경기를 소화하고 있으나 전반기에 이어 후반기 또한 부름이 잦다. 홍건희, 김강률 등 베테랑들의 헌신도 지속되고 있는 터. 불펜 경험이 풍부한 박치국, 김명신의 반등이 절실한 이유다.
이승엽 감독은 “최지강, 이영하가 빠져 있는 상태라 경험 있는 중간 투수들이 역할을 해줘야 큰 힘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아직 그런 효과는 없다”라며 “아직 30경기 이상이 남아 있다. 이제는 경험 있는 투수들이 해줘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라고 두 선수의 기량 회복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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