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인환 기자] 총균쇠는 가라. 이제 총칼활의 시대가 열렸다.
파리 올림픽은 12일 오전(이하 한국시각) 4시 폐회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당초 금메달 5개를 목표로 했던 한국 선수단은 13개의 금빛 메달을 수확하며 역대 단일 올림픽 최다 금메달 타이기록을 세웠다.
한국은 축구, 농구, 배구 등 주요 구기 종목의 올림픽 출전권 획득 실패와 맞물려 1976년 몬트리올 대회 이래 48년 만에 가장 작은 규모로 올림픽에 임했다.
이에 대한체육회는 현실적으로 대회 결과를 예측했다. 1984 로스앤젤레스・2020 도쿄 대회에서 딴 금메달 6개보다 낮은 수치인 금메달 5개, 종합 순위 15위를 목표치로 설정했다.
놀랍게도 한국 선수단은 큰 폭으로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금메달 13개를 따내며 2008 베이징・2012 런던 올림픽에서 거둔 역대 단일 올림픽 최다 금메달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그 중심에는 전통의 효자 종목인 펜싱과 양궁, 사격이 있었다. 펜싱이 2개(남자 단체전, 남자 개인전), 사격이 3개(), 양궁이 전종목(남여 개인전, 남여 단체전, 혼합 복식) 석권으로 위엄을 뽐냈다.
여러모로 칼, 총, 활로 일낸 것. 한국 전통의 효자 종목으로 불리던 레슬링이나 다른 종목들이 상대적으로 침체된 자리를 완전하게 채우면서 새롭게 효자 종목들로 자리 잡았다.
이번 대회에서도 이 종목들이 한국의 메달 사냥을 주도했다. 가장 먼저 메달을 울린 것은 '칼'이었다. 28일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오상욱(대전 시청)이 파리 그랑 팔레에서 한국 펜싱 역사상 처음으로 남자 사브르 개인전 최초의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전까지 최고 성적은 도쿄에서 김정환(은퇴)이 따냈던 동메달이었다.
오상욱은 16강부터 남다른 물오른 기량을 과시하면서 쾌속 질주했다. 결승에서 튀니지의 파레스 페르자니(세계 랭킹 13위) 상대로 15-11로 승리하면서 오상욱은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도 목에 걸면서 세계선수권과 아시아선수권, 아시안게임, 올림픽을 모두 차지한 그랜드 슬래머가 됐다.
여기에 오상욱은 구본길(국민체육진흥공단), 박상원(대전시청), 도경동(국군체육부대)와 함께 31일 남자 사브르 단체전 결승서도 헝가리(세계 랭킹 3위) 상대로 45-41로 제압했다. 다시 한 번 포디움 제일 높은 곳에 오르면서 한국은 2012년 런던, 2021년 열린 2020 도쿄 대회에 이어 올림픽 단체전 3연패라는 금자탑을 달성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종목이 제외됐기 때문에 기록서 제외된다. 아시아 국가가 펜싱 단일 종목 단체전서 3연패를 기록한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다. 또한 세계 펜싱 역사를 봐도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3연패가 나온 것은 헝가리가 1928년 암스테르담 대회부터 1960년 로마 대회까지 7연패를 달성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총도 부지런했다. 지난 도쿄 대회 노메달의 굴욕을 이겨내고자 나선 사격 대표팀은 부지런히 총성을 울렸다. 도쿄와 달리 2024 파리올림픽에서 사격 대표팀은 역대 최고 성적을 내면서 금의환향했다. 금메달 3개와 은메달 3개로 양궁(금 5개)에 이어 한국 선수단 중 2번째로 많은 메달을 수확했다.
여성 사수들의 활약이 빛났다. 먼저 여자 공기권총 10m에서는 오예진(19, IBK기업은행)과 김예지(31, 임실군청)이 나란히 금메달과 은메달을 합작했다. 여기에 김예지는 월드 스타가 됐다. 팬들은 사격을 할 때 시크한 김예지의 표정과 스타일링이 마치 영화에서 보는 킬러와 닮았다며 ‘멋있다!’면서 열광했다.
여기에 이어서 열린 여자 공기소총 10m에서 고교 스나이퍼 반효진(26, 대구체고)이 금메달을 추가했다. 그는 한국 하계올림픽 역사상 최연소이자 100번째 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또한 올림픽 여자 사격 최연소 금메달이라는 기록도 달성했다.
여기에 여자 권총 25m에서는 금빛 저격수가 나타났다. 세계 랭킹 2위인 양지인(21, 한국체대)이 금메달을 추가하면서 한국은 역대 최고 성적을 마크했다.
칼과 총이 합쳐서 금메달 5개. 단 궁수의 나라답게 양궁은 홀로 5개를 수확했다. 이번 대회 한국 양궁은 편안한 '골드 웨이'를 달렸다. 여자 복식에서는 임시현과 남수현, 전훈영이 나서 여자 단체전 올림픽 10연패를 달성했다. 1988 서울 올림픽에서 양궁 단체전이 신설된 이후 여자 단체전은 한국이 모두 금메달을 따냈다.
다음 금메달은 남자 양궁이 해냈다. 김우진과 오진혁, 김제덕이 나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남자 양궁은 단 한 번의 슛오프도 가지 않으면서 압도적인 실력을 뽐냈다.
그 다음 혼합 복식에서는 랭킹 라운드 성적이 가장 좋은 김우진과 임시현이 나섰다. 두 선수 모두 전체 랭킹 1등으로 혼성 단체전에 나서 김메달을 합작했다.
이어진 개인전에서는 임시현이 남수현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김우진도 슛오프까지 가는 접전 끝에 4.9mm 차이로 브레이디 엘리슨(미국)을 꺾었다.
남여 동시 3관왕을 차지한 것을 모자라서 김우진은 2016 리우 2020 도쿄서 획득한 단체전 메달에 이번 대회 3개를 추가하면서 동하계 통틀어 한국 역대 최다 금메달리스트에 등극했다. 임시현 역시 항저우 아시안게임 3관왕에 이어 이번 파리 올림픽 3관왕까지 차지하며 명실상부한 여자양궁 에이스로 자리 잡는데 성공했다.
이런 활약을 인정 받아 대한체육회가 현지 기자단 투표로 선정한 한국 대표팀의 파리 올림픽 MVP로 김우진과 임시현이 나란히 선정되면서 겹경사를 누렸다.
칼이 2개, 총이 3개, 활이 5개. 여러모로 역대 최소로 우려되던 올림픽이었지만 기존 효자종목들이 힘을 내주면서 이탈리아, 독일을 제치고 종합 8위로 대회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더욱 고무적인 부분은 대부분의 금메달을 따낸 선수가 20대라는 점에서 4년 후 LA 올림픽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악재를 이겨내고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둘 수 있게 만들어준 총과 칼, 그리고 활. 과연 2028 LA 올림픽에서도 이 기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mcadoo@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