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어제, LA시간으로는 25일 오후다. 1~2시간 뒤면 월드시리즈(WS)의 막이 오른다. 다저 스타디움에 구름 같은 인파가 몰린다. 수만 관중의 입장이 시작된 것이다. 거대하고, 팽팽한 긴장감이 일대를 감싼다.
그런 시간이다. 기자들도 덩달아 정신없다. 족히 100명은 넘을 것 같은 보도진이다. 덕아웃에서, 그라운드에서. 노트북과 마이크, 카메라가 열일 중이다.
인터뷰 룸도 마찬가지다. 초대된 주요 인사들에게 질문 세례가 쏟아진다. 그중 한 명이다. 홈팀 관계자를 뺄 수 없다. 다저스 구단의 야구부문 사장이 자리에 앉았다. 앤드류 프리드먼(47)이다.
의례적인 질문과 대답이 오간다. ‘휴식 시간은 충분했다고 생각하나’ ‘부상 선수들 상태는 어떤가’ ‘시리즈 준비는 잘 됐나’ 등등. 대부분 뻔한 물음들이다. 어찌 보면 데이브 로버츠(감독)가 답해도 될 것들이다.
그런 와중이다. 난데없는 질문 하나가 ‘훅’ 치고 들어온다. ‘일본인 투수 사사키 로키의 획득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소리 나는 곳으로 시선이 쏠린다. 샘 블럼이라는 기자다. 유력한 매체 디 애슬래틱 소속이다.
순간 프리드먼 사장의 표정이 달라진다. 조금 전의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사라진다. 완전한 정색 모드다. 잠시 싸늘한 정적이 흐른다. 그리고 날카로운 답변이 돌아온다.
“지금 진지하게 묻는 건가요?” 언짢은 반응이 이어진다. “그게 정말 질문이에요? 이건 월드시리즈예요. 너무하군요.”
매체 클러치포인트가 이 상황을 기사화했다. 제목이 현장 상황을 묘사한다. ‘사사키 로키 질문에 앤드류 프리드먼이 발끈했다 (Rōki Sasaki question gets Andrew Friedman's blood boiling)’.
맞다. 가을의 고전(Fall Classic) 아닌가. 시즌을 마무리하는 최고의 축제다. 모두가 집중하는 이벤트가 곧 시작된다. 관련한 불문율도 많다. 관심을 분산시키지 않는 게 암묵적인 원칙이다. 이를테면 감독 해임/선임 같은 주요 일정도 진행(발표)을 미루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굳이 스카우트 문제를 묻는다. ‘이건 선을 넘었다’는 게 프리드먼의 반응이다.
물론 괜한 질문은 아니다. 전후 맥락은 있다. 그동안 다저스가 워낙 진심이었다. 틈만 나면 사사키 로키(22)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가장 적극적인 게 프리드먼 자신이다. 지난달 말이다. 정규 시즌 막판. 그 중요하고, 바쁜 와중에 친히(?)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직관을 위해서다. 이 경기에서 사사키는 9이닝 1실점(탈삼진 10개)으로 호투했다. 소속팀 지바 롯데 마린즈를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 날이다.
일본 기자들 앞에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진정한 재능을 지닌 투수다. 나는 그동안 일본에 여러 번 왔고, 많은 뛰어난 선수들을 봤다. 사사키는 과거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일본의) 대단한 투수들의 대열에 함께 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 분명하다.”
이런 관심은 적을 만든다. 다저스가 못 마땅한 팀은 하나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일본 출신으로 상당한 전력보강을 이뤘다. (ML) 나머지 29개 팀은 모두 신경이 곤두선다. 그러다 보니 반감이 드러난다.
최근 일본 한 매체의 보도다. 메이저리그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전했다. ‘프리드먼 사장의 방문과 코멘트를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템퍼링 의혹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탬퍼링(Tampering)이란 ‘스카우트를 위한 사전 접촉’을 의미한다. 메이저리그가 엄격히 금지하는 과정이다.
특히 최근 들어 더 민감하다. 바로 사사키 때문이다. 이로 인해 ML 사무국은 한미일 각 구단에 공문도 발송했다. 자매결연을 빙자한 구단 간의 국제적인 협력을 면밀히 관찰하겠다(혹은 규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자칫 사전 접촉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게다가 사사키에 대한 일본 내 여론도 보수적이다.
우선은 나이가 걸린다. 25세 이하는 스카우트 비용이 제한적이다. 일반적인 포스팅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칠 우려가 있다. 즉, 소속팀 지바 롯데에 대한 보상이 크지 않다. 여기에 기여도도 걸린다. 오타니나 야마모토처럼 팀을 우승시킨 후에나 명분이 생긴다는 여론이다.
이래저래 사사키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특히 다저스에게는 무척 민감한 사안이다. 한편으로 프리드먼 사장이 발끈한 것도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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