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체 투입’ 박주영, 결정적 기회에 패스 받지 못했다
입력 : 2012.03.07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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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 한준 기자= 절체절명의 순간, 아르센 벵거 감독이 오랜만에 박주영 카드를 꺼내들었다. 지난 1월 22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프리미어리그 경기에 이어 AC 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이라는 빅매치에 출전 기회가 주어졌다. 두 경기 모두 종료 시점이 다가온 후반 38분에 투입됐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했다. 박주영에게 주어진 시간을 추가시간을 포함해 고작 10분에 불과했다.

맨유와의 경기 당시 아스널은 1-2로 뒤져 있었다. 승점 확보를 위해 한 골이 필요했다. 7일 새벽(한국시간) 밀란전도 상황은 비슷했다. 밀라노 원정 1차전에서 0-4로 패한 아스널은 2차전 홈 경기에서 3-0으로 앞서고 있었다. 한 골을 추가하면 연장전으로 돌입할 수 있었다. 골이 필요한 순간, 총공세가 필요한 아스널은 모든 공격 자원을 투입해야 했다. 벤치에 남아 있던 박주영도 선택 받았다.

5골을 넣어야 8강에 오를 수 있는 아스널에게 밀란전은 모든 공격 자원을 쏟아부어야 하는 경기였다. 하지만 안드리 아르샤빈이 러시아 무대로 임대됐고, 요시 베나윤과 미켈 아르테타가 부상으로 쓰러졌다. 이 와중에 박주영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천금같은 기회였다. 박주영은 경기 초반부터 화면에 잡혔고 후반 시작 이후 일찌감치 몸을 풀었다. 그리고 후반 38분 부상으로 쓰러진 시오 월컷을 대신해 그라운드에 섰다.

박주영은 왼쪽 측면에 배치됐다. 최전방에 로빈 판페르시와 마루아네 샤마흐가 자리했고, 2선에 박주영, 토마시 로시츠키, 제르비뉴가 자리했다. 무려 5명의 공격 자원이 동시에 전진배치된 것이다. 그 뒤에서 알렉스 송이 볼 배급을 맡았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밀란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비롯해 키핑력이 좋은 선수들이 즐비했다. 밀란의 강한 전진 압박에 아스널은 좀처럼 공격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밀란 선수들은 측면 전방을 파고들며 시간을 지연시키려 했다. 아스널은 바카리 사냐의 투지 넘치는 수비를 앞세워 볼을 확보했다. 하지만 공격으로의 연결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 밀란 수비는 아스널의 패스 길목을 노련하게 차단했다.

고군분투한 박주영, 시간과 기회가 부족했다

박주영은 짧은 시간동안 전력을 쏟았지만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박주영은 역습 상황에 영리한 움직임으로 빈 공간을 선점했고 빠르게 달렸다. 적극적으로 수비에 임했고 볼을 탈취하는 장면도 연출했다. 하지만 아스널 동료 선수들과의 연계 플레이가 아쉬웠다. 함께 실전 경기를 거의 치른 적이 없는 다른 아스널 선수들은 박주영의 움직임을 이해하지 못했다.

가장 아쉬운 장면은 추가 시간에 나왔다. 아스널의 역습 공격 상황에서 박주영이 왼쪽 측면으로 침투했다. 송이 중원에서 볼을 잡고 패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밀란 수비는 오른쪽으로 쏠려 있었다. 박주영에게 볼을 넘겨줬다면 수월하게 전진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송은 박주영에게 패스하지 않았다. 오른쪽 측면으로 넘어간 볼은 밀란의 밀집 수비에 막혀 차단됐다. 벤치에 있던 벵거 감독도 크게 분통을 터뜨리며 아쉬워했다. 그 이후 아스널은 더 이상 유효한 공격 상황을 맞지 못했다.

만약 박주영이 패스를 이어 받고 골까지 기록했다면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향후 박주영의 입지는 크게 달라질 수 있었다. 칼링컵 볼턴전에서 아스널 데뷔골을 넣었던 장면과 비슷한 위치였다. 벵거 감독이 박주영은 왼쪽 배치한 이유도 그 장면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하지만 송이 패스를 하지 않으면서 모든 기적의 가능성은 물거품이 됐다.

아스널 선수들은 팀의 운명이 걸린 순간 박주영을 신뢰하지 못했다. 최근 리그 경기에 조금이나마 출전 기회를 부여 받고 자신의 실력을 보여줬다면 패스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스널은 3골을 따라잡으며 기적을 일으키기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그것은 기적이 아니었다. 집중력과 투쟁심, 그리고 노력의 결과였다. 끝내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도 ‘운명의 장난’이 아닌 ‘인재’다. 벵거 감독은 이전 경기에서 박주영에게 좀 더 기회를 줬어야 했다. 박주영의 실전 감각을 끌어올릴 수 있는 것 뿐 아니라 다른 동료 선수들이 그를 신뢰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했다.

밀란전에 박주영의 움직임은 나쁘지 않았다. 그는 공간을 이해하고 동료의 움직임을 파악하며 기술적인 완성도도 높은 선수다. 아시아 무대에서 '축구 천재'로 불렸던 재목이다. 이미 프랑스 리그와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통해 국제 무대에서의 검증도 마쳤다. 출전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아스널의 9번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밀란전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경기다. 박주영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출전 시간 뿐이다.

사진=ⓒBPI/스포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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