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 한준 기자= 박주영(27)이 44일 만에 아스널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밟았다. 올해 들어 치른 공식 경기는 쿠웨이트와의 월드컵 아시아 예선 경기에 이어 세 번째다. 지난해 박주영은 제한된 기회 속에도 효과적인 활약을 펼쳤다. 국가 대표팀에서 연속골을 뽑아냈고, 아스널 소속으로 나선 칼링컵 대회에서도 두 번째 출전 기회에서 득점을 올렸다.
하지만 올해 들어 치른 세 경기에서 박주영은 이렇다 할 공격 상황을 만들지 못했다. 지난 1월 22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치른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에서 거의 볼을 잡지 못했다. 팀은 1-2로 뒤져 있었고 굳히기에 나선 맨유의 수비를 뚫기 역부족이었다. 출전 시간에도 10분 남짓이었다.
이어 풀타임을 소화한 쿠웨이트와의 월드컵 예선 경기에선 중원 플레이가 실종되면서 문전에서 멀어졌다. 이동국의 뒤를 받치며 볼을 배급해주는 역할을 맡다보니 문전에서 특유의 킬러 본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다. 그래도 제 몫을 다했다. 영리한 움직임과 깔끔한 패스로 2-0 승리 과정에 기여했다. 그라운드에서 볼 수 있는 시간은 적었지만 박주영이 꾸준하고 묵묵하게 자기관리를 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7일 새벽(한국시간) 런던 에미리츠 경기장에서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AC 밀란을 상대로 얻은 출전 기회는 어느 때보다 소중했다. 아스널에서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시점에 얻은 천금 같은 기회다. 아르센 벵거 감독은 경기 전날 이미 총공세로 나설 밀란전에 박주영도 출전 가능한 옵션이라고 공언했다. 박주영에겐 지금까지의 설움을 일거에 날려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아스널은 전반전에 3골을 뽑아내며 뒤집기 8강행 가능성을 높였고, 후반전 시작과 함께 몸을 풀기 시작한 박주영은 후반 38분 부상 당한 시오 월컷을 대신해 그라운드를 밟았다. 박주영은 측면에 배치됐다. 페널티 에어리어 근방과 후방에서 꾸준히 빈 공간을 찾아 움직이며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위치를 선점해도 패스는 오지 않았다.
후반 추가시간 역습 상황은 내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자기 진영에서 볼을 끊어낸 중앙 미드필더 알렉스 송은 하프 라인으로 전진하는 과정에서 패스 루트를 고민했다. 오른쪽에 토마시 로시츠키, 왼쪽에 박주영이 있었다. 최전방에 마루아네 샤마흐와 제르비뉴가 대기하고 있었다.
오른쪽의 로시츠키는 수비의 견제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속도를 살리지 못하는 위치에 있었다. 최전방 공격진은 밀란 수비진의 압박 수비를 당하고 있었다. 왼쪽의 박주영은 송이 볼을 탈취한 순간부터 공간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밀란 수비 두 명을 따돌릴 수 있었고 전방에 적지 않은 공간이 열려있었다. 박주영의 속력을 살려준 패스가 이어졌다면 좋은 득점 상황을 연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송은 박주영을 흘깃 본 뒤 문전으로 롱패스를 시도했다. 볼은 허무하게 밀란 수비에 차단됐다. 벤치에 있던 아르센 벵거 감독도 통탄했다. 박주영은 씁쓸히 뛰던 걸음을 멈추고 돌아와야 했다. 국내 팬들의 입장에선 더더욱 아쉬움이 진하게 남은 상황이었다.
패스 받지 못한 박주영, 왕따 아니다…EPL 무대의 흔한 적응과정
송은 왜 박주영에게 패스하지 않았을까? 아직 아스널 1군 선수들에겐 함께 발을 맞춰본 경험이 적은 박주영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리미어리그 무대에 도전했던 모든 선수들이 같은 일을 경험했다. 이동국(전 미들즈브러), 설기현(전 레딩, 풀럼), 김두현(전 웨스트 브롬), 이청용(현 볼턴) 등도 입단 초기 신뢰 형성이 되지 않은 경기에서 볼을 전달 받지 못해 고개를 떨군 일을 자주 겪었다.
‘작은 철인’ 이영표도 토트넘 홋스퍼에서 패스를 받지 못한 일이 있다. 지금은 ‘주장 완장’을 찰 정도로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지만 박지성 역시 맨유에서 좋은 위치를 선점하고도 패스를 받지 못한 일이 허다하다. 프리미어리그 무대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의 도전기를 다 년간의 현장 취재로 생생하게 담은 ‘한국인프리미어리거영웅전(조한복 홍재민 공저)’에는 그라운드 위의 ‘패스 왕따 사건’에 대한 각 선수들의 사례가 자주 등장한다. 밀란전의 박주영 역시 이 사례집에 포함될 수 있는 같은 상황이었다.
‘한국인프리미어리거영웅전’은 이 같은 상황을 한국 선수에 대한 ‘왕따’로 이해해선 안된다고 지적한다. 수년간 영국 현지에서 프리미어리그를 취재한 저자는 본문에서 “외국인 선수는 몰라도 영국선수들은 경기장 안에서 굉장히 냉정한 구석이 있다. 자기가 인정하지 않은 동료에게는 절대로 패스를 내주지 않는다. 한마디로 ‘저녀석은 믿을 수 없다’라는 식이다. 그러다가도 경기 중 한두 번 확실한 모습을 보여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패스도 주고 뜨거운 동료애를 표현하기도 한다. 단순하게 보이지만 결국 그게 냉정한 프로의 세계일 수도 있다”고 전하고 있다.
험난한 도전 속에 그대로 무릎을 꿇은 경우도, 끝내 이겨내고 팀내 최고의 ‘믿을맨’으로 거듭한 경우도 있다. 비단 한국 선수 뿐 아니라 프리미어리그 무대에 도전한 모든 선수들이 겪는 일이다. 박주영 역시 프리미어리그 무대 생존 경쟁 과정에서 쓰라린 경험을 했다. 이겨내는 것은 박주영 본인의 몫이다.
밀란전은 아스널의 운명이 걸린 경기였다. 박주영의 투입 시점은 연장전으로 가기 위해 골이 필요했던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아르센 벵거 감독이 박주영 카드를 꺼낸 것은 그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물론 부상 선수들이 많은 와중에 찾아온 기회지만 출전 기회를 줬다는 것은 믿음이 있다는 증거다. 벵거 감독은 박주영의 대표팀 조기 차출을 거절한 바 있다. 그를 1군 즉시전력감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박주영의 도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박주영의 도전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더욱 어렵다. 아스널은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BIG4’ 중 한 팀이다. 살아남기가 더욱 어렵다. 진출 자체로 박수를 받았던 이적이었다. 살아남는 다면 그만큼 값진 성공이 될 것이다.
아스널은 칼링컵과 FA컵에 이어 챔피언스리그에서도 탈락했다. 이제 남은 목표는 리그 4위 수성이다. 기회는 더욱 제한적일지 모른다. 하지만 기어코 안방에서 3골을 따라잡은 아스널이 그랬듯 기적은 존재한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볼턴전 박주영의 아스널 데뷔골은 티에리 앙리를 연상케 할 만큼 탁월했다. 박주영의 마무리 클래스는 의심할 수준이 아니다.
아직 시즌 폐막까지 두 달 가까운 시간이 남아있다. 리그 4위 수성을 위한 골을 터트린다면 시즌 내내 이어진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 경기 종료 몇 분에 주어질 많지 않은 기회를 살려야 한다. 박주영의 프로 경력에 주어진 가장 어려운 미션이다. 박주영이 벵거 감독의 믿음을 지키고 동료 선수들의 믿음까지 얻을 수 있을까? 아스널의 9번, 박주영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들어 치른 세 경기에서 박주영은 이렇다 할 공격 상황을 만들지 못했다. 지난 1월 22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치른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에서 거의 볼을 잡지 못했다. 팀은 1-2로 뒤져 있었고 굳히기에 나선 맨유의 수비를 뚫기 역부족이었다. 출전 시간에도 10분 남짓이었다.
이어 풀타임을 소화한 쿠웨이트와의 월드컵 예선 경기에선 중원 플레이가 실종되면서 문전에서 멀어졌다. 이동국의 뒤를 받치며 볼을 배급해주는 역할을 맡다보니 문전에서 특유의 킬러 본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다. 그래도 제 몫을 다했다. 영리한 움직임과 깔끔한 패스로 2-0 승리 과정에 기여했다. 그라운드에서 볼 수 있는 시간은 적었지만 박주영이 꾸준하고 묵묵하게 자기관리를 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7일 새벽(한국시간) 런던 에미리츠 경기장에서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AC 밀란을 상대로 얻은 출전 기회는 어느 때보다 소중했다. 아스널에서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시점에 얻은 천금 같은 기회다. 아르센 벵거 감독은 경기 전날 이미 총공세로 나설 밀란전에 박주영도 출전 가능한 옵션이라고 공언했다. 박주영에겐 지금까지의 설움을 일거에 날려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아스널은 전반전에 3골을 뽑아내며 뒤집기 8강행 가능성을 높였고, 후반전 시작과 함께 몸을 풀기 시작한 박주영은 후반 38분 부상 당한 시오 월컷을 대신해 그라운드를 밟았다. 박주영은 측면에 배치됐다. 페널티 에어리어 근방과 후방에서 꾸준히 빈 공간을 찾아 움직이며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위치를 선점해도 패스는 오지 않았다.
후반 추가시간 역습 상황은 내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자기 진영에서 볼을 끊어낸 중앙 미드필더 알렉스 송은 하프 라인으로 전진하는 과정에서 패스 루트를 고민했다. 오른쪽에 토마시 로시츠키, 왼쪽에 박주영이 있었다. 최전방에 마루아네 샤마흐와 제르비뉴가 대기하고 있었다.
오른쪽의 로시츠키는 수비의 견제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속도를 살리지 못하는 위치에 있었다. 최전방 공격진은 밀란 수비진의 압박 수비를 당하고 있었다. 왼쪽의 박주영은 송이 볼을 탈취한 순간부터 공간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밀란 수비 두 명을 따돌릴 수 있었고 전방에 적지 않은 공간이 열려있었다. 박주영의 속력을 살려준 패스가 이어졌다면 좋은 득점 상황을 연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송은 박주영을 흘깃 본 뒤 문전으로 롱패스를 시도했다. 볼은 허무하게 밀란 수비에 차단됐다. 벤치에 있던 아르센 벵거 감독도 통탄했다. 박주영은 씁쓸히 뛰던 걸음을 멈추고 돌아와야 했다. 국내 팬들의 입장에선 더더욱 아쉬움이 진하게 남은 상황이었다.
패스 받지 못한 박주영, 왕따 아니다…EPL 무대의 흔한 적응과정
송은 왜 박주영에게 패스하지 않았을까? 아직 아스널 1군 선수들에겐 함께 발을 맞춰본 경험이 적은 박주영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리미어리그 무대에 도전했던 모든 선수들이 같은 일을 경험했다. 이동국(전 미들즈브러), 설기현(전 레딩, 풀럼), 김두현(전 웨스트 브롬), 이청용(현 볼턴) 등도 입단 초기 신뢰 형성이 되지 않은 경기에서 볼을 전달 받지 못해 고개를 떨군 일을 자주 겪었다.
‘작은 철인’ 이영표도 토트넘 홋스퍼에서 패스를 받지 못한 일이 있다. 지금은 ‘주장 완장’을 찰 정도로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지만 박지성 역시 맨유에서 좋은 위치를 선점하고도 패스를 받지 못한 일이 허다하다. 프리미어리그 무대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의 도전기를 다 년간의 현장 취재로 생생하게 담은 ‘한국인프리미어리거영웅전(조한복 홍재민 공저)’에는 그라운드 위의 ‘패스 왕따 사건’에 대한 각 선수들의 사례가 자주 등장한다. 밀란전의 박주영 역시 이 사례집에 포함될 수 있는 같은 상황이었다.
‘한국인프리미어리거영웅전’은 이 같은 상황을 한국 선수에 대한 ‘왕따’로 이해해선 안된다고 지적한다. 수년간 영국 현지에서 프리미어리그를 취재한 저자는 본문에서 “외국인 선수는 몰라도 영국선수들은 경기장 안에서 굉장히 냉정한 구석이 있다. 자기가 인정하지 않은 동료에게는 절대로 패스를 내주지 않는다. 한마디로 ‘저녀석은 믿을 수 없다’라는 식이다. 그러다가도 경기 중 한두 번 확실한 모습을 보여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패스도 주고 뜨거운 동료애를 표현하기도 한다. 단순하게 보이지만 결국 그게 냉정한 프로의 세계일 수도 있다”고 전하고 있다.
험난한 도전 속에 그대로 무릎을 꿇은 경우도, 끝내 이겨내고 팀내 최고의 ‘믿을맨’으로 거듭한 경우도 있다. 비단 한국 선수 뿐 아니라 프리미어리그 무대에 도전한 모든 선수들이 겪는 일이다. 박주영 역시 프리미어리그 무대 생존 경쟁 과정에서 쓰라린 경험을 했다. 이겨내는 것은 박주영 본인의 몫이다.
밀란전은 아스널의 운명이 걸린 경기였다. 박주영의 투입 시점은 연장전으로 가기 위해 골이 필요했던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아르센 벵거 감독이 박주영 카드를 꺼낸 것은 그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물론 부상 선수들이 많은 와중에 찾아온 기회지만 출전 기회를 줬다는 것은 믿음이 있다는 증거다. 벵거 감독은 박주영의 대표팀 조기 차출을 거절한 바 있다. 그를 1군 즉시전력감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박주영의 도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박주영의 도전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더욱 어렵다. 아스널은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BIG4’ 중 한 팀이다. 살아남기가 더욱 어렵다. 진출 자체로 박수를 받았던 이적이었다. 살아남는 다면 그만큼 값진 성공이 될 것이다.
아스널은 칼링컵과 FA컵에 이어 챔피언스리그에서도 탈락했다. 이제 남은 목표는 리그 4위 수성이다. 기회는 더욱 제한적일지 모른다. 하지만 기어코 안방에서 3골을 따라잡은 아스널이 그랬듯 기적은 존재한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볼턴전 박주영의 아스널 데뷔골은 티에리 앙리를 연상케 할 만큼 탁월했다. 박주영의 마무리 클래스는 의심할 수준이 아니다.
아직 시즌 폐막까지 두 달 가까운 시간이 남아있다. 리그 4위 수성을 위한 골을 터트린다면 시즌 내내 이어진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 경기 종료 몇 분에 주어질 많지 않은 기회를 살려야 한다. 박주영의 프로 경력에 주어진 가장 어려운 미션이다. 박주영이 벵거 감독의 믿음을 지키고 동료 선수들의 믿음까지 얻을 수 있을까? 아스널의 9번, 박주영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