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 한국인은 축구를 사랑한다. FIFA 월드컵 때마다 나라 전체가 뒤집어진다. 올림픽 동메달 따야 한다며 무더운 여름밤 광화문 광장에 모일 정도로 극성이다. 그런데 김창수가 팔이 부러지도록 뛸 때까지 그가 어느 팀 선수인지 알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정말 축구 좋아하는 사람들 맞나?
뿌리깊은 스포츠 내셔널리즘
석사 졸업논문 주제가 ‘한국의 유럽축구 팬 행동양식’이었다. 2006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회수된 유효응답수가 300건 정도로 기억한다. 당시 박지성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영표는 토트넘 홋스퍼로 옮긴 첫 시즌이 끝나려는 무렵이었다. 가장 선호하는 클럽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두 번째로 좋아하는 클럽을 보고 깜짝 놀랐다. PSV에인트호번이었다. 지도교수는 유효한 데이터라고 말하는 한국인 제자를 의심의 눈빛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해외 진출 한국인에 대한 특별대우는 늘 치열하고 비장해야만 했던 한국 스포츠의 뿌리깊은 운명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웠던 시절, 스포츠는 강대국에 맞설 수 있었던 유일한 도구였다. 척박한 환경상 팀보다 개인 종목이 주를 이룰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복싱 세계타이틀매치를 현장 관전했을 정도다. 국민 대부분이 비행기 타봤다는 것만으로도 자랑거리였는데, 외국에서, 그것도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에서 성공하면 정말 엄청난 위인인 셈이다. (정희준 교수의 <스포츠 코리아 판타지>(2009, 개마고원)를 추천한다)
따라서 박찬호, 박세리, 박지성, 이청용 등의 활약도 한국 사회는 국위선양 관점에서 해석한다. ‘박찬호의 LA다저스가 있는 메이저리그’였다. LA다저스는 박찬호의 팀, 소속선수들은 박찬호의 친구들로 바라봤다. 박찬호 없는 LA다저스는 유재석 없는 무한도전이자 윤아 없는 소녀시대일 뿐이다. 박찬호가 떠난 뒤 LA다저스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해체되었다고 거짓말 해도 “정말?”이라며 놀랄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박지성에 대해서만 떠들어줘
그러니 유럽축구라고 해도 결국 한국인 관련 소식이 주를 이룬다. 그 중에서도 90% 이상이 박지성 이야기들이다. 박지성 관련 기사는 잘 팔린다. 독자는 항상 박지성의 소식을 가장 먼저, 가장 많이, 가장 자세히 알고 싶어한다. 프리미어리그 개막보다 박지성의 주장 데뷔가 더 큰 관심사다. 주제 무리뉴의 전술 ‘따위’보다 박지성의, 예를 들어, “개막전 0-5 대패 빨리 잊겠다” 식의 뻔한 인터뷰를 읽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유럽축구를 넓게 즐기고픈 소비자층은 한국인 선수에게만 집중되는 언론 보도가 불편하다. 평소 재미있게 읽던 <친절한 근우씨>의 위근우 칼럼니스트도 지난 주말 있었던 퀸즈 파크 레인저스(이하 QPR)의 개막 생중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실제로 프리미어리그 중계권자의 편성표를 보니 이번 주말에도 QPR 경기와 겹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딜레이(delay) 중계로 밀렸다. 볼턴 원더러스 경기가 일년 내내 생중계되는 곳은 지구상에서, 아마도,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다. 방송사는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십이 아니라 박지성과 이청용, 김보경의 중계권을 구입한 셈이다.
언론 시장에서 이런 논쟁은 진부하다. 소비자(독자)는 “공급자(언론사)가 박지성만 떠드니까”라고 말하고, 공급자는 “소비자가 박지성만 원하니까”라고 서로 책임을 미룬다. 하지만 상품(기사)은 분명히 공급과 수요 양측의 합의에 의해서만 거래된다. 예를 들어, 리베르타도레스 관련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에는 리베르타도레스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어하는 독자도 분명히 있겠지만, 언론사로 하여금 관련 기사를 생산해내게 할 만큼 많진 않다.
물론 오피니언 리더(Opinion Leader)로서 언론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현상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언론이 도와야 한다는 책임론이다. 박지성보다 맨체스터 라이벌의 우승 경쟁, 주제 무리뉴의 UEFA챔피언스리그 우승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언론사 역시 시장경쟁자다. 먹고 살아야 할 법인이다. 팔리는 상품의 공급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잘 팔리는 한국인 관련 기사를 우선적으로 생산하고 나서야 기타 또는 ‘진짜’ 유럽축구 소식을 다룰 여유가 생긴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퇴근시간이다.
축구 하는 셀러브리티
한국의 스포츠 시장을 더 독특하게 만드는 것은 ‘팀’보다 ‘개인’을 우선시하는 성향이다. 한국에서는 유럽축구라기보다 ‘유럽파 한국인 축구선수 시장’이다. 엄밀히 말해 이곳에선 ‘축구’나 ‘팀’을 다루지 않는다. 유럽에서 뛰는 한국인 축구 셀러브리티를 다루는 곳이다. 10여년 세월을 거치면서 유럽축구 자체에 관심이 높은 그룹도 분명히 커졌다. 하지만 여전히 소비력은 충분하지 않다. 리버풀은 한국 방문계획을 취소했다. 흥행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리오넬 메시라는 역사적 스타플레이어의 경기에도 서울월드컵경기장의 6만 관중석은 다 차지 않았다.
한국 대중은 축구선수를 셀러브리티로서 대한다. 박지성과 기성용, 이청용, 구자철 등은 볼을 잡아도 “꺅~” 소리가 난다. FC MEN(연예인 축구팀)에서 시아준수가 볼을 잡을 때 들려오는 바로 그 함성이다. 조지 베스트, 데이비드 베컴 등 유럽 축구 역사를 통틀어도 손에 꼽을 만큼 극소수의 슈퍼스타만이 누렸던 환대가 한국인 유럽파들에겐 당연지사다. 올림픽 축구대표팀의 인천국제공항 해단식 현장 분위기도 완벽한 ‘아이돌의 귀환’이었다. 기성용이 소개되자 “결혼해줘요~”라는 소녀 팬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녀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 그만큼 한국인 축구 스타의 영역이 연예계와 크로스오버된다는 것이다.
물론 해박한 축구 지식이 팬 또는 소비자의 자격요건이 될 순 없다. 기성용에게 “결혼해달라”는 소녀도 축구 팬이다. 소비 대상이 약간 다를 뿐이다. 그녀가 기성용을 보기 위해 대표팀 경기의 티켓을 구입한다면, 오히려 공짜 인터넷 중계를 보며 이러쿵저러쿵 훈수를 두는 ‘축구 매니아’보다 훨씬 더 긍정적인 축구 소비자다. 박지성을 소비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QPR과 프리미어리그까지 덩달아 즐길 수밖에 없는 절대다수의 소비자 그룹도 마찬가지로 ‘유럽축구 팬’이다. 아마도 이들은 박지성이 나오는 경기보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훨씬 더 큰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낄 것이다. 어차피 그들의 소비 대상은 ‘셀러브리티’ 박지성이다.
시장은 커지고 있다. 아주 조금씩, 아주 느리게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박지성과 유럽축구의 괴리가 국가대표팀과 K리그 사이에 놓인 거리와 비슷하다고. 한국에서 축구는 곧 국가대표팀을 뜻한다. K리그는 그냥 K리그다. 공중파 TV채널은 국가대표팀 경기 외에는 관심이 없다. TV방송사는 축구 국가대표팀과 프로야구 컨텐츠를 시장에 공급한다. 그곳에는 수익을 주는 광고주가 있기 때문이다.
선덜랜드와 아스널의 TV생중계를 원하는 목소리만큼 K리그 시장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지난 주말 FC 서울과 수원의 슈퍼매치는 5만 관중을 동원했다. 전주 시내로부터 한참이나 떨어져있는 전주월드컵경기장에도 13,000명이 전북과 제주의 경기를 관전했다. 절대로 적은 숫자가 아니다. 전주나 포항 같은 지방 도시에서 매번 1만 명 이상을 동원할 수 있는 이벤트는 K리그밖에 없다. 다만 아직 공중파 광고주 마음을 흔들 정도가 아닐 뿐이다.
시장은 분명히 변하고 있다. 올림픽 축구 종목이 지나치게 부각된다고 불평하던 필자를 대선배께서는 “예전에는 올림픽이 월드컵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라며 다독이셨다. 80년대 이안 러시가 유벤투스로 이적했다고, QPR이 홈구장에 인조잔디를 깔았다고 전해준 한국 언론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루카 모드리치의 거취가 실시간으로 보도된다. 한국의 유럽축구 시장도 글로벌 공통 트렌드에 조금씩 편입되고 있다는 증거다. 애국 코드가 여전히 진하지만, 유럽축구 자체를 즐기려는 그룹, K리그를 소비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늘고 있다. 느리지만 그래도 '늘고 있다'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어 다행이지 않은가?
글=홍재민 기자
사진=ⓒJavier Garcia/BPI/스포탈코리아
뿌리깊은 스포츠 내셔널리즘
석사 졸업논문 주제가 ‘한국의 유럽축구 팬 행동양식’이었다. 2006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회수된 유효응답수가 300건 정도로 기억한다. 당시 박지성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영표는 토트넘 홋스퍼로 옮긴 첫 시즌이 끝나려는 무렵이었다. 가장 선호하는 클럽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두 번째로 좋아하는 클럽을 보고 깜짝 놀랐다. PSV에인트호번이었다. 지도교수는 유효한 데이터라고 말하는 한국인 제자를 의심의 눈빛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해외 진출 한국인에 대한 특별대우는 늘 치열하고 비장해야만 했던 한국 스포츠의 뿌리깊은 운명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웠던 시절, 스포츠는 강대국에 맞설 수 있었던 유일한 도구였다. 척박한 환경상 팀보다 개인 종목이 주를 이룰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복싱 세계타이틀매치를 현장 관전했을 정도다. 국민 대부분이 비행기 타봤다는 것만으로도 자랑거리였는데, 외국에서, 그것도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에서 성공하면 정말 엄청난 위인인 셈이다. (정희준 교수의 <스포츠 코리아 판타지>(2009, 개마고원)를 추천한다)
따라서 박찬호, 박세리, 박지성, 이청용 등의 활약도 한국 사회는 국위선양 관점에서 해석한다. ‘박찬호의 LA다저스가 있는 메이저리그’였다. LA다저스는 박찬호의 팀, 소속선수들은 박찬호의 친구들로 바라봤다. 박찬호 없는 LA다저스는 유재석 없는 무한도전이자 윤아 없는 소녀시대일 뿐이다. 박찬호가 떠난 뒤 LA다저스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해체되었다고 거짓말 해도 “정말?”이라며 놀랄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박지성에 대해서만 떠들어줘
그러니 유럽축구라고 해도 결국 한국인 관련 소식이 주를 이룬다. 그 중에서도 90% 이상이 박지성 이야기들이다. 박지성 관련 기사는 잘 팔린다. 독자는 항상 박지성의 소식을 가장 먼저, 가장 많이, 가장 자세히 알고 싶어한다. 프리미어리그 개막보다 박지성의 주장 데뷔가 더 큰 관심사다. 주제 무리뉴의 전술 ‘따위’보다 박지성의, 예를 들어, “개막전 0-5 대패 빨리 잊겠다” 식의 뻔한 인터뷰를 읽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유럽축구를 넓게 즐기고픈 소비자층은 한국인 선수에게만 집중되는 언론 보도가 불편하다. 평소 재미있게 읽던 <친절한 근우씨>의 위근우 칼럼니스트도 지난 주말 있었던 퀸즈 파크 레인저스(이하 QPR)의 개막 생중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실제로 프리미어리그 중계권자의 편성표를 보니 이번 주말에도 QPR 경기와 겹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딜레이(delay) 중계로 밀렸다. 볼턴 원더러스 경기가 일년 내내 생중계되는 곳은 지구상에서, 아마도,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다. 방송사는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십이 아니라 박지성과 이청용, 김보경의 중계권을 구입한 셈이다.
언론 시장에서 이런 논쟁은 진부하다. 소비자(독자)는 “공급자(언론사)가 박지성만 떠드니까”라고 말하고, 공급자는 “소비자가 박지성만 원하니까”라고 서로 책임을 미룬다. 하지만 상품(기사)은 분명히 공급과 수요 양측의 합의에 의해서만 거래된다. 예를 들어, 리베르타도레스 관련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에는 리베르타도레스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어하는 독자도 분명히 있겠지만, 언론사로 하여금 관련 기사를 생산해내게 할 만큼 많진 않다.
물론 오피니언 리더(Opinion Leader)로서 언론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현상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언론이 도와야 한다는 책임론이다. 박지성보다 맨체스터 라이벌의 우승 경쟁, 주제 무리뉴의 UEFA챔피언스리그 우승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언론사 역시 시장경쟁자다. 먹고 살아야 할 법인이다. 팔리는 상품의 공급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잘 팔리는 한국인 관련 기사를 우선적으로 생산하고 나서야 기타 또는 ‘진짜’ 유럽축구 소식을 다룰 여유가 생긴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퇴근시간이다.
축구 하는 셀러브리티
한국의 스포츠 시장을 더 독특하게 만드는 것은 ‘팀’보다 ‘개인’을 우선시하는 성향이다. 한국에서는 유럽축구라기보다 ‘유럽파 한국인 축구선수 시장’이다. 엄밀히 말해 이곳에선 ‘축구’나 ‘팀’을 다루지 않는다. 유럽에서 뛰는 한국인 축구 셀러브리티를 다루는 곳이다. 10여년 세월을 거치면서 유럽축구 자체에 관심이 높은 그룹도 분명히 커졌다. 하지만 여전히 소비력은 충분하지 않다. 리버풀은 한국 방문계획을 취소했다. 흥행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리오넬 메시라는 역사적 스타플레이어의 경기에도 서울월드컵경기장의 6만 관중석은 다 차지 않았다.
한국 대중은 축구선수를 셀러브리티로서 대한다. 박지성과 기성용, 이청용, 구자철 등은 볼을 잡아도 “꺅~” 소리가 난다. FC MEN(연예인 축구팀)에서 시아준수가 볼을 잡을 때 들려오는 바로 그 함성이다. 조지 베스트, 데이비드 베컴 등 유럽 축구 역사를 통틀어도 손에 꼽을 만큼 극소수의 슈퍼스타만이 누렸던 환대가 한국인 유럽파들에겐 당연지사다. 올림픽 축구대표팀의 인천국제공항 해단식 현장 분위기도 완벽한 ‘아이돌의 귀환’이었다. 기성용이 소개되자 “결혼해줘요~”라는 소녀 팬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녀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 그만큼 한국인 축구 스타의 영역이 연예계와 크로스오버된다는 것이다.
물론 해박한 축구 지식이 팬 또는 소비자의 자격요건이 될 순 없다. 기성용에게 “결혼해달라”는 소녀도 축구 팬이다. 소비 대상이 약간 다를 뿐이다. 그녀가 기성용을 보기 위해 대표팀 경기의 티켓을 구입한다면, 오히려 공짜 인터넷 중계를 보며 이러쿵저러쿵 훈수를 두는 ‘축구 매니아’보다 훨씬 더 긍정적인 축구 소비자다. 박지성을 소비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QPR과 프리미어리그까지 덩달아 즐길 수밖에 없는 절대다수의 소비자 그룹도 마찬가지로 ‘유럽축구 팬’이다. 아마도 이들은 박지성이 나오는 경기보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훨씬 더 큰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낄 것이다. 어차피 그들의 소비 대상은 ‘셀러브리티’ 박지성이다.
시장은 커지고 있다. 아주 조금씩, 아주 느리게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박지성과 유럽축구의 괴리가 국가대표팀과 K리그 사이에 놓인 거리와 비슷하다고. 한국에서 축구는 곧 국가대표팀을 뜻한다. K리그는 그냥 K리그다. 공중파 TV채널은 국가대표팀 경기 외에는 관심이 없다. TV방송사는 축구 국가대표팀과 프로야구 컨텐츠를 시장에 공급한다. 그곳에는 수익을 주는 광고주가 있기 때문이다.
선덜랜드와 아스널의 TV생중계를 원하는 목소리만큼 K리그 시장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지난 주말 FC 서울과 수원의 슈퍼매치는 5만 관중을 동원했다. 전주 시내로부터 한참이나 떨어져있는 전주월드컵경기장에도 13,000명이 전북과 제주의 경기를 관전했다. 절대로 적은 숫자가 아니다. 전주나 포항 같은 지방 도시에서 매번 1만 명 이상을 동원할 수 있는 이벤트는 K리그밖에 없다. 다만 아직 공중파 광고주 마음을 흔들 정도가 아닐 뿐이다.
시장은 분명히 변하고 있다. 올림픽 축구 종목이 지나치게 부각된다고 불평하던 필자를 대선배께서는 “예전에는 올림픽이 월드컵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라며 다독이셨다. 80년대 이안 러시가 유벤투스로 이적했다고, QPR이 홈구장에 인조잔디를 깔았다고 전해준 한국 언론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루카 모드리치의 거취가 실시간으로 보도된다. 한국의 유럽축구 시장도 글로벌 공통 트렌드에 조금씩 편입되고 있다는 증거다. 애국 코드가 여전히 진하지만, 유럽축구 자체를 즐기려는 그룹, K리그를 소비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늘고 있다. 느리지만 그래도 '늘고 있다'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어 다행이지 않은가?
글=홍재민 기자
사진=ⓒJavier Garcia/BPI/스포탈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