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용의 메타 템포] 시가 대신 오만함을 문 리피의 입, 오만인가 경계인가
입력 : 2013.10.26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2000년대 중반까지 유럽 무대에서 맹위를 떨치던 이탈리아 축구가 힘을 잃어가고 있다. 승부 조작과 인종 차별, 폭행 사건 등이 문제가 되며 스타 선수들이 하나 둘 잉글랜드나 스페인으로 떠났다. 하지만 세계 축구 전술의 변화에는 늘 이탈리아가 중심이었다. 이제 겨우 다사다난했던 이탈리아 축구의 전반전이 끝났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후반전을 앞두고 ‘메타 템포’(하프타임)를 가져본다.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명장 마르체로 리피는 한국에 올 때 마다 큰 화제를 몰고 다니고 있다. 하지만 그 화제가 그리 유쾌하지 않은 것이다. 리피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하나하나가 한국 축구 팬들의 분노와 실소를 일으키게 만들고 있다.

리피 감독은 26일 펼쳐지는 FC 서울과의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치르기 위해 광저우 에버그란데를 이끌고 한국에 왔다. 그래도 이번에는 공식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나타내 기자들에게 얼굴을 내비쳤다. 지난 3월 전주에서와는 달랐다.

지난 3월 전북과의 조별리그 경기를 앞두고 리피 감독은 감기를 이유로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않았다. 1,000달러 (약 110만 원)의 벌금을 내고 자신의 방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래도 올 해 두 번째 한국 방문에서는 공식 기자회견장에 등장하며 예의를 지키는 가 했다. 하지만 기자회견장에 앉은 리피는 얼마 있지 않아 “우리는 24일 한국에 입국했지만, 운동장 등 훈련 제반 시설이 준비되지 않아 호텔에서 연습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이 광저우에 온다면 훈련과 관련한 모든 것들을 제공하겠다”며 지난 3월을 떠올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미 기자회견을 갖기 하루 전 자신이 묵고 있는 호텔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요청하며 자신의 버릇이 어디 못가는 듯 한 행동을 보였다.



이렇 듯 올 해 한국 원정을 두 번 와 무례한 모습을 보인 리피 감독의 의도는 무엇일까.

이것은 오만함이 아닌 상대팀을 흔들기 위한 하나의 전술적인 언행이다. 이는 리피가 한창 유럽 무대를 호령했던 1990년대에서 2000년도까지 활동했던 감독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리피 감독은 이탈리아의 명문 유벤투스를 이끌고 1995/1996시즌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리그에서도 5회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지난 2006년에는 이탈리아 대표팀을 이끌고 독일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1990년대와 2000년 대 초반 세계적인 명장을 불렸던 인물이다.

또 이 시대의 가장 대표적 인물은 리피의 절친한 친구인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이다. 그는 경기를 앞두고 상대팀과의 신경전을 벌이는 것은 늘상 있는 일이었다. 이런 퍼거슨 전 감독의 한 마디의 발언에 상대팀은 긴장하거나 안심 해 다음 경기 준비에 차질을 빚게 됐다.

지난 6월 한국과의 월드컵 최종예선을 치렀던 이란의 감독인 카를로스 케이로스는 당시 퍼거슨 전 감독의 수석 코치로 이런 심리전을 바로 옆에서 보고 배웠던 인물이다. 그는 끊임없이 한국을 자극하는 발언과 행동으로 경기를 앞둔 선수들을 동요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감독들간의 언쟁은 현 시대에서 많이 사라졌다. 아직 주제 무리뉴 감독이 촌철살인과 같은 언변으로 상대팀에 대한 압박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럽을 대표하는 감독들은 최대한 언쟁으로 인한 힘 빼기를 피하려고 한다.

감독들은 최근에 그저 자신의 팀에 대한 언급이나 상대팀에 대한 찬사를 하며 경기 분위기를 끌어오는데 더 힘을 쏟고 있다.

리피 감독 역시 이를 모를 리 없다. 이는 리피 감독이 한국 구단들과의 경기를 제외한 다른 구단들과의 경기에서 오만한 모습을 보였다는 외신을 통해 듣지 못했다는 것에서 나타난다. 그만큼 리피 감독에게는 한국 구단들이 위협적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 구단들의 전력을 알고 있는 리피 감독은 서울과의 경기가 결코 쉽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유벤투스를 이끌고 챔피언스리그에서 준우승 3회에 그친 아픈 경험이 있다. 아픈 추억을 더 이상 경험하기 싫은 리피 감독은 자신이 좋아하는 시가 대신 오만함과 불안을 입에 가득 물고 서울을 경계하고 있다.

글=김도용 기자
사진=김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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