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문 감독 작두 탔다”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회상..“신구 조화 최고였던 시기”
입력 : 2024.07.23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오상진 기자= 한국 야구의 황금기에 부동의 국가대표 2루수로 활약했던 정근우(42)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를 회상했다.

정근우는 지난 18일 공개된 유튜브 채널 ‘정근우의 야구인생’에서 한국 야구 최초로 올림픽 메달(동메달)을 차지했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과 자신이 국가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획득했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을 비교 분석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은 김응용 감독의 지휘 아래 이승엽, 김한수, 정수근, 이병규, 박석진, 홍성흔, 박진만, 박종호, 구대성, 박석진, 정민태, 임선동, 손민한, 진필중, 임창용, 송진우 등이 주축으로 뛰었으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김경문 감독이 사령탑을 맡아 류현진, 오승한, 장원삼, 김광현, 정대현, 한기주, 윤석민, 봉중근, 송승준, 진갑용, 이승엽, 김민재, 정근우, 박진만, 이대호, 이택근, 김현수 등이 참여했다.

정근우는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 한국에는 구대성 선수가 있었다. 140km/h 후반의 공을 155구 던져 9이닝 1실점 11탈삼진 완투를 했다. ‘내가 아니면 안 돼’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며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을 이기며 마침내 한국 야구가 일본과 동등한 수준에서 라이벌로 경기를 할 수 있는 수준임을 증명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자신이 참여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대해서는 “한국 야구에 신구 조화가 최고였던 시기”라며 “김경문 감독은 발이 빠른 선수, 중심을 잡아줄 선수, 젊은 선수로 팀을 꾸렸다. 당시 대표팀의 평균 연령은 26.7세였다”고 밝혔다.

정근우는 “이때는 김경문 감독님이 거의 작두를 탔다. 대타를 기용하는 족족 (타자들이) 해결했다. 모든 면에서 작전이 완벽했고 팀의 합이 최고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당시 대표팀 선수들의 자신감을 언급하며 “일본 야구는 선수 풀도 넓고 인프라도 많다. 하지만 단기전에서만큼은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며 “대타로 나갔는데, 마운드가 굉장히 멀리 있고 볼도 한참을 날아오는 것 같더라. 공이 회전하는 것도 보이고 마크까지 보이는 것 같았다”며 충만한 자신감이 경기력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정근우는 “SK 와이번스 시절 오키나와에 전지훈련을 가면 일본 팀들과 상대를 많이 하고 많이 이겨봤다. 상대를 충분히 알고 있기에 승리하는 것이 가능했다”며 데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결승에서 만난 쿠바 역시 베이징 올림픽 준비하며 친선경기를 2경기 했다. 연습경기 봤던 투수, 타자 데이터 있으니 자신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근우는 “단상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애국가를 듣는데 눈물이 많이 났다. 지금까지 들었던 애국가 중에 가장 아름다웠던 걸로 기억한다”며 “한국야구가 그만큼 간절했고, 준비도 잘했고, 감독님, 선수들, 스태프 일심동체 하나가 됐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로 프로야구 역시 붐을 맞았으며, 현재의 전성기로 이어졌다. 정근우는 “그렇게 야구 인기에 기여하고, 지금은 ‘최강야구’로 이어가고 있는 걸 보면, 야구 흥행의 중심은 나구나 싶다”며 웃었다.



사진=뉴스1, OSEN, 유튜브 '정근우의 야구인생'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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