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뉴스 | 채준 기자]
세상을 살아낸다는 것은 그런 것 같다. 극복한 것 같기도 하고 초월한 것 같기도 한 착각 사이에서 하루가 지나간다. 그러나 자신의 시간을, 사건을, '극복한다'는 어려운 말을 쓰지 않아도 좋다. 자신을 다독이며 살아내는 매일이면 족하지 않을까.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이 제목을 처음 보자마자 '행복한 청소부' 그림책을 떠올렸다. 내가 행복한 청소부를 좋아했었던 만큼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가 무언가 감동을 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얼른 읽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늘 글과 그림, 그 언저리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호기심이 들었을 것이다.
먼저 행복한 청소부(모니카 페트 지음, 안토니 보라틴스키 그림, 김경연 옮김, 풀빛 2000)부터 이야기해야 될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은 독일의 거리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이다. 이 사람은 몇 년 전부터 똑같은 거리의 표지판을 닦고 있는데, 그 표지판에는 작가와 음악가들의 이름이 쓰여있었다. 어느 날 청소부는 '글뤼크'를 '글루크'로 거리의 표지판에 글자 한 부분이 지워진 것이 아니냐고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질문하는 것을 들었다. (독일어로 '글루크'는 아무 뜻이 없지만 글뤼크는 '행복'이라는 뜻이 있다고도 한 줄 슬쩍 붙여 놓았다.) 이 대화에서 자기가 닦고 있는 표지판 이름의 작가들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 작가들에 대해서 알려고 하기 시작했다.
청소부는 음악가들의 이름을 한 사람씩 벽에 써서 붙여놓고 그들에 대해 알기 위해 레코드판을 사서 듣기도 하고 연주회에 가기도 했다. 거리를 청소할 때는 그 음악가의 곡들을 외우며 휘파람으로 불었다고 한다. 그렇게 거리의 표지판에 나오는 음악가들을 다 알게 된 후에는 표지판의 작가들을 알기 위해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보기 시작했다.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할 때는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고 저녁에는 책 속의 이야기들에 잠겨 있기도 하면서 그렇게 작가를 알려고 했다. 그런 그는 자기가 알고 있는 그 작가들의 음악을 휘파람으로 부르기도 하고 시를 읊기도 하고 읽은 소설을 다시 중얼거리면서 사다리 위에서 표지판을 닦았다고 한다. 표지판을 닦으면서 자기 자신에게 음악과 문학에 대해 강연하는 것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게 되었고 드디어는 텔레비전 방송국에서까지, 그리고 대학에서 강연을 해달라고 부탁이 올 정도까지 되었다. 그런 그였지만 '나에게 강연을 하는 건 오로지 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랍니다.' 하면서 거절했다는 것이 주인공의 마지막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나는 내가 무언가를 내세우기 위해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했다는 사실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 무엇이 내가 바르게 살기 위해 또는 즐거워서라기보다는 어떤 의무감에서이지 않았을까? 주인공인 그 청소부 아저씨가 표지판의 작가에 대해 알려고 했다는 이야기는 나에게 '너는 왜 사는 거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니?'를 물어보는 것 같았다. 나는 과연 내가 하는 일을 행복한 마음으로 하고 있는가, 일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고 있는가를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는 꽤 오랜 시간이 또 무심히 지나갔었다. 그런 매일이, 그날이 그날 같던 날에 붙잡게 된 책이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웅진 지식하우스,2023)이었다. '메트'(met는 메트로폴리탄Metrop0litan Museum of Art의 애칭과도 같은 약칭이라고 번역자는 말했는데 여기에서는 책의 제목을 메트로 줄여서 부르겠다)는 뉴욕에 사는 한 청년이 암으로 투병하던 형이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겪으며, 그 처절함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이겨내는가 하는 것이다. 주인공 나는 '가장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가 책의 부제이듯이 그 스스로를 지금까지 추구하며 살았던 세계가 아닌 전혀 다른 직업을 택하며 10년을 살았다고 한다.
이 책에 호기심을 느낀 첫 번째는 행복한 청소부 제목과 순식간에 오버랩되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All the Beauty in the World)'인데 우리나라 번역 책에는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라고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제목을 붙였다면 아마 나는 안 보았을 것이다. 제목이 추상적이기도 하고 그저 그런 이야기 같아서 읽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예전에 '닭고기 스프'라는 번역 책이 있었는데, 재판을 찍을 때인가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로 제목을 바꾸었더니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미국에서 음식에 맛을 내기 위한 것이 닭고기 스프여서 미국 사람들에게는 친숙하게 들렸을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전혀 의미가 느껴지지 않는 말이지 않은가? 그런 것처럼 가장 멋진 공간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그 공간을 누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지킬 뿐인 '경비원'을, 함께 붙여서 만든 그 아이러니 한 제목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이 책이 나를 사로잡은 두 번째는, 모두 13장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의 두 번째 장이었다. 여기에 메트의 전시실 중 B구역에만 '210명의 예수가 산다'는 말에 눈이 번쩍 떠졌다. 이 구역을 지킬 때 관람객들이 '맙소사, 여기도 예수 그림이잖아'라고 불평하는 소리를 가장 많이 듣는 그가 그림들에서 예수가 몇 번 나오는지를 세어봤다고 한다. 그래서도 나는 이 책을 자세히 보게 되었다. 예수의 행적을 그림과 짤막한 글로 묶은 '예수님과 함께'라는 내 원고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난 내가 예수를 몇 명 그렸는지 헤아려 볼 생각도 안 했었는데, '메트에는 예수가 210명이 산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210명이 사는 그 미술관이 그 그림들이 너무 궁금해졌다. 어떻게 그렸는지 그 그림들을 한꺼번에 보고 싶어서 뉴욕에 가봐야 할 것 같다.
이 책을 본 세 번째 이유는 주인공이 '모리스 센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읽으며 자랐다는 이야기가 있어서였다. 이러한 것들은 어머니의 영향이었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내 남편이 일찍이 써놓은 원고가 '그림책 이야기'인데 그것은 전체가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모티브로 그림과 글과 책의 구조를 말하고 있다. 그 영향으로 나도 그림책 강의를 많이 했었다. 심플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은, 삶의 극복을 담은 그림책들을 나는 좋아한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읽으며 자랐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나를 빠져들게 만들었다.
메트의 마지막 부분에 안젤리코가 그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이야기로 자연스럽게 10년 경비원 생활의 마지막이며, 책의 마무리를 했다는 점 때문에 끝까지 열심히 볼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의 결론처럼 메트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나올 때 자기가 가지고 나오고 싶은 그림이 이 안젤리코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라고 했다. 그는 어린 시절, 그의 어머니가 미술관 구경하고 나올 때 가지고 가고 싶은 그림을 하나씩 고르게 했었던 것을 기억하며 이 그림을 선택했다고 한다.
나도 '수난을 당하고 있는 예수' 그림에 발치에서 어머니 마리아와 그 어머니를 위로하고 있는 마리아를 그려 넣었었다. 죽어가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을 느끼며 그렸었다. 그리고 이 극복하기 어려운, 초월하기도 어려운 이 상황을 나는 내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생각하곤 했다. 그런 내 생각과 이 작가 브링리와 또 화가 안젤리코의 생각이 이 그림에서 겹쳐지고 있어서 나는 또 이 책을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에 이 그림을 선택했다고 하는 것은 자기의 자리를 언제나처럼 지키며 살아가는 '행복한 청소부'처럼 아마 이 작가도 지나온 10년이라는 극복과 초월의 순간들을 말하는 것 같았다.
- 서승옥행정사법인 CST 부설 ICST의 전문위원
문화체육 전문 행정사법인 CST는
문화예술, 콘텐츠, 저작권, 체육, 관광, 종교, 문화재 관련 정부기관, 산하단체의 지원이나 협력이 필요한 전반 사항에 대해서 문서와 절차 등에 관한 행정관련 기술적인 지원을 포괄적으로 펼치고 있다.
채준 기자 cow75@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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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낸다는 것은 그런 것 같다. 극복한 것 같기도 하고 초월한 것 같기도 한 착각 사이에서 하루가 지나간다. 그러나 자신의 시간을, 사건을, '극복한다'는 어려운 말을 쓰지 않아도 좋다. 자신을 다독이며 살아내는 매일이면 족하지 않을까.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이 제목을 처음 보자마자 '행복한 청소부' 그림책을 떠올렸다. 내가 행복한 청소부를 좋아했었던 만큼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가 무언가 감동을 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얼른 읽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늘 글과 그림, 그 언저리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호기심이 들었을 것이다.
먼저 행복한 청소부(모니카 페트 지음, 안토니 보라틴스키 그림, 김경연 옮김, 풀빛 2000)부터 이야기해야 될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은 독일의 거리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이다. 이 사람은 몇 년 전부터 똑같은 거리의 표지판을 닦고 있는데, 그 표지판에는 작가와 음악가들의 이름이 쓰여있었다. 어느 날 청소부는 '글뤼크'를 '글루크'로 거리의 표지판에 글자 한 부분이 지워진 것이 아니냐고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질문하는 것을 들었다. (독일어로 '글루크'는 아무 뜻이 없지만 글뤼크는 '행복'이라는 뜻이 있다고도 한 줄 슬쩍 붙여 놓았다.) 이 대화에서 자기가 닦고 있는 표지판 이름의 작가들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 작가들에 대해서 알려고 하기 시작했다.
청소부는 음악가들의 이름을 한 사람씩 벽에 써서 붙여놓고 그들에 대해 알기 위해 레코드판을 사서 듣기도 하고 연주회에 가기도 했다. 거리를 청소할 때는 그 음악가의 곡들을 외우며 휘파람으로 불었다고 한다. 그렇게 거리의 표지판에 나오는 음악가들을 다 알게 된 후에는 표지판의 작가들을 알기 위해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보기 시작했다.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할 때는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고 저녁에는 책 속의 이야기들에 잠겨 있기도 하면서 그렇게 작가를 알려고 했다. 그런 그는 자기가 알고 있는 그 작가들의 음악을 휘파람으로 부르기도 하고 시를 읊기도 하고 읽은 소설을 다시 중얼거리면서 사다리 위에서 표지판을 닦았다고 한다. 표지판을 닦으면서 자기 자신에게 음악과 문학에 대해 강연하는 것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게 되었고 드디어는 텔레비전 방송국에서까지, 그리고 대학에서 강연을 해달라고 부탁이 올 정도까지 되었다. 그런 그였지만 '나에게 강연을 하는 건 오로지 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랍니다.' 하면서 거절했다는 것이 주인공의 마지막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나는 내가 무언가를 내세우기 위해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했다는 사실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 무엇이 내가 바르게 살기 위해 또는 즐거워서라기보다는 어떤 의무감에서이지 않았을까? 주인공인 그 청소부 아저씨가 표지판의 작가에 대해 알려고 했다는 이야기는 나에게 '너는 왜 사는 거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니?'를 물어보는 것 같았다. 나는 과연 내가 하는 일을 행복한 마음으로 하고 있는가, 일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고 있는가를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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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꽤 오랜 시간이 또 무심히 지나갔었다. 그런 매일이, 그날이 그날 같던 날에 붙잡게 된 책이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웅진 지식하우스,2023)이었다. '메트'(met는 메트로폴리탄Metrop0litan Museum of Art의 애칭과도 같은 약칭이라고 번역자는 말했는데 여기에서는 책의 제목을 메트로 줄여서 부르겠다)는 뉴욕에 사는 한 청년이 암으로 투병하던 형이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겪으며, 그 처절함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이겨내는가 하는 것이다. 주인공 나는 '가장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가 책의 부제이듯이 그 스스로를 지금까지 추구하며 살았던 세계가 아닌 전혀 다른 직업을 택하며 10년을 살았다고 한다.
이 책에 호기심을 느낀 첫 번째는 행복한 청소부 제목과 순식간에 오버랩되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All the Beauty in the World)'인데 우리나라 번역 책에는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라고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제목을 붙였다면 아마 나는 안 보았을 것이다. 제목이 추상적이기도 하고 그저 그런 이야기 같아서 읽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예전에 '닭고기 스프'라는 번역 책이 있었는데, 재판을 찍을 때인가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로 제목을 바꾸었더니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미국에서 음식에 맛을 내기 위한 것이 닭고기 스프여서 미국 사람들에게는 친숙하게 들렸을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전혀 의미가 느껴지지 않는 말이지 않은가? 그런 것처럼 가장 멋진 공간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그 공간을 누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지킬 뿐인 '경비원'을, 함께 붙여서 만든 그 아이러니 한 제목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이 책이 나를 사로잡은 두 번째는, 모두 13장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의 두 번째 장이었다. 여기에 메트의 전시실 중 B구역에만 '210명의 예수가 산다'는 말에 눈이 번쩍 떠졌다. 이 구역을 지킬 때 관람객들이 '맙소사, 여기도 예수 그림이잖아'라고 불평하는 소리를 가장 많이 듣는 그가 그림들에서 예수가 몇 번 나오는지를 세어봤다고 한다. 그래서도 나는 이 책을 자세히 보게 되었다. 예수의 행적을 그림과 짤막한 글로 묶은 '예수님과 함께'라는 내 원고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난 내가 예수를 몇 명 그렸는지 헤아려 볼 생각도 안 했었는데, '메트에는 예수가 210명이 산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210명이 사는 그 미술관이 그 그림들이 너무 궁금해졌다. 어떻게 그렸는지 그 그림들을 한꺼번에 보고 싶어서 뉴욕에 가봐야 할 것 같다.
/사진제공=pixabay |
이 책을 본 세 번째 이유는 주인공이 '모리스 센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읽으며 자랐다는 이야기가 있어서였다. 이러한 것들은 어머니의 영향이었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내 남편이 일찍이 써놓은 원고가 '그림책 이야기'인데 그것은 전체가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모티브로 그림과 글과 책의 구조를 말하고 있다. 그 영향으로 나도 그림책 강의를 많이 했었다. 심플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은, 삶의 극복을 담은 그림책들을 나는 좋아한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읽으며 자랐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나를 빠져들게 만들었다.
메트의 마지막 부분에 안젤리코가 그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이야기로 자연스럽게 10년 경비원 생활의 마지막이며, 책의 마무리를 했다는 점 때문에 끝까지 열심히 볼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의 결론처럼 메트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나올 때 자기가 가지고 나오고 싶은 그림이 이 안젤리코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라고 했다. 그는 어린 시절, 그의 어머니가 미술관 구경하고 나올 때 가지고 가고 싶은 그림을 하나씩 고르게 했었던 것을 기억하며 이 그림을 선택했다고 한다.
나도 '수난을 당하고 있는 예수' 그림에 발치에서 어머니 마리아와 그 어머니를 위로하고 있는 마리아를 그려 넣었었다. 죽어가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을 느끼며 그렸었다. 그리고 이 극복하기 어려운, 초월하기도 어려운 이 상황을 나는 내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생각하곤 했다. 그런 내 생각과 이 작가 브링리와 또 화가 안젤리코의 생각이 이 그림에서 겹쳐지고 있어서 나는 또 이 책을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에 이 그림을 선택했다고 하는 것은 자기의 자리를 언제나처럼 지키며 살아가는 '행복한 청소부'처럼 아마 이 작가도 지나온 10년이라는 극복과 초월의 순간들을 말하는 것 같았다.
- 서승옥행정사법인 CST 부설 ICST의 전문위원
문화체육 전문 행정사법인 CST는
문화예술, 콘텐츠, 저작권, 체육, 관광, 종교, 문화재 관련 정부기관, 산하단체의 지원이나 협력이 필요한 전반 사항에 대해서 문서와 절차 등에 관한 행정관련 기술적인 지원을 포괄적으로 펼치고 있다.
채준 기자 cow75@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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