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대전, 이상학 기자]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주전 포수 최재훈(36)은 마치 자석처럼 몸에 공이 붙는다. 타석에서 상대 투수의 공에 맞고, 수비 중 파울 타구에도 유난히 자주 맞는다. 몸 곳곳이 멍투성이지만 최재훈은 금세 훌훌 털고 일어선다. 가끔은 몸에 맞는 볼로 1루에 나갈 때 통증에도 불구하고 출루한다는 생각에 웃음이 새어나와 동료들이 “기분 좋냐”고 놀리기도 한다.
지난 주말 대전 키움전에도 그랬다. 11일 경기에선 2회 김휘집의 파울 타구에 가슴 쪽을 맞는 아찔한 상황이 나왔다. 극심한 통증이 있었지만 훌훌 털고 9회 끝까지 풀로 안방을 지켰다. 12일 경기에는 4회 무사 1,2루에서 상대 투수 윤석원의 초구 몸쪽 직구에 왼쪽 허벅지를 맞고 쓰러졌지만 빠르게 1루로 걸어나갔다. 올 시즌 8번째 사구로 두산 허경민(9개)에 이어 이 부문 2위.
지난 2008년 두산에서 1군 데뷔한 최재훈은 14시즌 통산 1145경기를 뛰며 사구 141개를 기록 중이다. 이 부문 역대 통산 13위. 한화로 트레이드돼 주전으로 자리잡은 2017년부터 최근 8년간 사구 117개로 SSG 최정(150개) 다음으로 많이 맞았다. 2022~2023년에는 각각 21개, 23개로 최정을 제치고 1위였다.
몸에 맞는 게 아무리 공짜 출루라고 해도 엄청난 통증을 수반하기 때문에 맞고 싶은 타자는 없다. 하지만 최재훈은 “맞아서라도 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하다 보니 공을 안 피하게 된다”고 말하곤 한다. 아찔한 사구가 수없이 있었지만 큰 부상 없이 2017년부터 7년 연속 100경기 이상 출장한 것은 큰 복이다. 그 사이 공수에 걸쳐 한화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고 포수로 누적 기록을 쌓았다.
아무리 맞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최재훈은 스스로 “난 오뚝이다. 맨날 맞고 일어난다”고 말한다. 경험이 부족한 젊은 투수들에게도 이런 ‘오뚝이 정신’을 늘 강조한다.
지난 3월31일 대전 KT전 황준서에 이어 12일 대전 키움전 조동욱까지 한 해 2명의 고졸 신인 데뷔전 선발승 기록을 포수로 연이어 함께한 최재훈은 “어린 투수들에게 항상 이야기하는 게 오뚝이가 되라는 말이다. 넘어졌다 일어나고 다시 넘어지고 일서어야 성장한다. 안 넘어지려고 하면 나중에 넘어졌을 때 못 일어선다. 어린 투수들은 타자들에게 맞고 점수도 줘봐야 나중에 더 크게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 한화가 처한 상황에서도 이런 오뚝이 정신을 필요로 한다. 개막 10경기 8승2패로 폭풍 질주했으나 4월 이후 급격한 하락세를 거듭한 한화는 한때 1위였던 순위가 9위로 뚝 떨어졌다. 투타에서 악재가 끊이지 않았고, 경기력이 말도 안 되게 무너졌지만 아직 시즌은 104경기 더 남아있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야 할 시점이고, 키움을 상대로 2승1패를 하면서 42일, 12시리즈 만에 모처럼 위닝시리즈를 거둔 게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최재훈은 “우리 선수들이 경기가 잘 안 되다 보니 조급해하고 있다. 나쁜 볼에 막 스윙하고, 카운트에 몰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빨리빨리 승부하기도 한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야 한다. 마음을 편하게 (욕심을) 내려놓고 야구를 즐기면서 했으면 좋겠다. 이기고 지는 건 하늘이 정해주는 것이니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야구를 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한화는 어느 때보다 기복이 심한 시즌을 보내고 있지만 최재훈 개인적으로는 페이스가 꾸준히 좋다. 올 시즌 26경기 타율 2할9푼7리(64타수 19안타) 6타점. 볼넷 10개, 몸에 맞는 볼 8개를 더해 출루율은 4할3푼5리에 달한다. 타격 훈련 중 왼쪽 옆구리 통증을 느껴 지난달 21일부터 30일까지 열흘간 자리를 비워 규정타석에는 들지 못했지만 80타석 이상 타자 85명 중 출루율 6위로 포수 중에선 1위다. “몸에 맞아서라도 살아나가겠다”고 말하는 출루형 포수답게 사구의 비중이 크지만 특유의 배트를 짧게 쥐고 컨택에 집중하면서 3할에 가까운 타율을 치고 있다. 12일 키움전도 볼넷과 사구에 이어 7회 쐐기 1타점 2루타까지, 3출루 경기로 한화의 8-3 승리를 이끌었다.
매년 시동이 늦게 걸려 ‘슬로 스타터’로 불렸지만 올해는 시작부터 감이 좋다. 그는 “페이스가 빨리 올라와서 나도 의아하고 놀랐다”며 “매 타석마다 집중하고 있다. (옆구리가) 아파서 잠시 빠진 뒤로 타격감이 떨어졌지만 코치님들이 관리해주신 덕분에 다시 공이 잘 보이고 있다. 부상으로 빠진 동안 팀 성적이 안 좋아서 마음이 아팠다. 다시 올라와서 어떻게든 잘하고 싶었다. 이번 위닝시리즈를 계기로 팀이 연승을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