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승, 그리고 20년' 한화서 900승 대업, ''1승이 쉬울 때도 있지만'' 김경문 감독도 여전히 승리가 어렵다 [잠실 현장]
입력 : 2024.06.12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타뉴스 | 잠실=안호근 기자]
김경문 한화 이글스 감독이 11일 두산 베어스전 승리로 통산 900승을 달성한 뒤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화답하고 있다.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김경문 한화 이글스 감독이 11일 두산 베어스전 승리로 통산 900승을 달성한 뒤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화답하고 있다.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맡겨준 한화, 처음 감독을 했던 두산, 선수들, 팬들,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 많다."

2004년 4월 5일. 두산 베어스의 지휘봉을 잡고 치른 두 번째 경기에서 감독 커리어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무려 20년이 훌쩍 지난 2024년 6월 11일. 통산 900번째 승리(776패 31무)를 장식했다.

대한민국에서 단 6명만 달성한 900승 대업을 이뤄낸 김경문(66) 한화 이글스 감독은 이 순간까지 달려올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한화는 11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방문경기에서 6-1 대승을 거뒀다.

지난 4일 한화 지휘봉을 잡고 KT 위즈 원정 시리즈에서 3연승을 달린 뒤 홈으로 이동해 NC 다이노스를 상대로 1무 2패에 그쳤던 김 감독은 자신이 선수 생활 내내 몸 담았고 감독으로서 8시즌을 이끌었던 두산을 상대로 의미 깊은 승리를 챙겼다.

1982년 출범해 40년이 넘는 KBO 역사에서 900승을 달성한 건 김 감독이 6번째다. 1위는 김응용 전 감독으로 1554승(1288패 68무)이고 2위는 김성근 전 감독(1388승 1203패 60무), 3위는 김인식 전 감독(978승 1033패 45무)으로 한화 감독을 역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경문 감독(가운데)이 승리 후 박종태 구단 대표이사(오른쪽), 손혁 단장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김경문 감독(가운데)이 승리 후 박종태 구단 대표이사(오른쪽), 손혁 단장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4위는 김재박(936승 830패 46무), 5위는 강병철(914승 1015패 33무) 전 감독인데 시즌 절반 이상을 남겨두고 있어 올 시즌 내로 4위로 올라설 것이 확실시된다.

이날 경기는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경기를 앞두고 경기장에 도착한 김경문 감독은 곧바로 옛 제자이자 적장으로 만나게 된 이승엽(48) 두산 감독을 찾았다. 이 감독은 반갑게 인사하며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했는데 김 감독 또한 함께 허리를 숙이며 '제자'가 아닌 동료 감독으로서 예우를 다했다.

이승엽 감독에게도 김 감독은 은인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사령탑을 맡았던 김 감독은 당시 '국민타자' 호칭을 얻었던 이승엽을 전폭적으로 신뢰했다. 7경기에서 1할대 타율에 허덕였지만 김 감독은 '무한신뢰'를 나타냈고 결국 이승엽 감독은 일본과 준결승전 결승 홈런으로 후배들의 공식 병역 브로커가 됐고 쿠바와 결승에서도 홈런을 날리며 9전 전승 금메달 신화에 주연으로 등극했다.

경기 전 만난 이 감독은 "항상 감사드린다. (감독 맞대결을) 항상 상상은 하고 있었다. 감독님은 언제든지 복귀를 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대팀으로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는데 현실이 됐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김 감독도 "이승엽 감독을 보니까 옛날 생각이 더 나고 너무 반가웠다"며 "물론 승부의 세계에서 경기를 펼쳐야 하지만 이 순간은 잊히지 않는 장면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전했다.

김경문 한화 이글스 감독(오른쪽)과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이 경기 전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김경문 한화 이글스 감독(오른쪽)과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이 경기 전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이어 "두산에 대해서 감사한 건 잊지 않고 있다"면서도 "한화 팬들께 (홈에서) 승리를 못 드리고 왔다. 야구는 첫 경기가 굉장히 중요하다. 두산도 좋지만 우리 선발이 나름대로 괜찮으니까 찬스가 오면 그 경기를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필승 의지를 밝혔다.

대체 외국인 선수로 영입돼 2번째 등판에 나선 바리아가 일등공신이었다. 당초 김 감독은 "김 감독은 바리아에 대해 "80~90구를 던질 계획인데 마운드에서 그 선수가 사인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2번째 경기에 불과하고 오는 16일까지 SSG 랜더스전까지 주 2회 등판이 예정돼 있기에 많은 투구를 할 수 없었기에 얼마나 효율적인 투구를 하느냐가 중요했다.

기대이상이었다. 6이닝 동안 79구만 던지며 3피안타 1볼넷 1실점으로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까지 작성했다. 6이닝 동안 4차례나 삼자범퇴를 기록했다. 탈삼진이 2개에 불과했고 구종은 사실상 속구와 슬라이더 투피치였지만 매우 인상적인 경제적 투구로 두산 타선을 잠재웠다.

타선의 집중력도 돋보였다. 3회 이도윤이 볼넷, 이원석이 안타를 때려낸 뒤 희생번트와 희생플라이로 손쉽게 선취점을 뽑았고 4회엔 노시환과 채은성, 최재훈이 3개의 2루타를 뽑아내며 2점을 더 달아났다. 6회엔 흔들리는 곽빈에게 3연속 안타를 날렸고 투수 교체 이후에도 볼넷 2개와 안타 하나로 3점을 더 추가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한승혁과 박상원, 김범수까지 1이닝씩 릴레이 무실점 호투를 펼쳤다. 내용과 결과 모두 흠 잡을 데가 없었다.

선발 투수 하이메 바리아가 위기를 실점 없이 막아내고 포효하고 있다.
선발 투수 하이메 바리아가 위기를 실점 없이 막아내고 포효하고 있다.
경기 후 취재진과 갖는 인터뷰의 주인공도 이날은 수훈 선수가 아닌 김경문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많이 부담스러워했다. 지난 3경기가 경기 내용도 만족스럽지 않았다"며 "내심 첫 경기를 잘 풀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900승) 기록보다도 첫 경기에서 승리를 하게 돼 선수들에게도, 팬들께도 고맙다"고 소감을 밝혔다.

감독으로서 첫 승을 달성한 뒤 무려 20년이 걸려 작성한 대업이다. 현직에서 20년을 지켰다는 것 또한 그의 뛰어난 지도력을 방증한다. 당시 두산의 포수였던 강인권(NC), 홍원기(키움 히어로즈)를 비롯해 KIA 타이거즈 이강철(KT)은 어느덧 김 감독과 동료 사령탑이 됐고 KIA 타자 심재학은 KIA의 단장이 됐다. 강산이 두 차례나 변한 만큼 많은 게 바뀌었다.

당시를 떠올린 김 감독은 "라인업까지는 생각이 안 난다. 데뷔전엔 진 것 같은데 2번째 경기에서 KIA를 이겼다"고 회상하며 "구단에서 불러줘 다시 현장에 올 수 있었다. 900승에 대해 생각을 못하고 있을 때 한화에서 저를 믿고 부름을 주셨기에 이룰 수 있었던 승리다. 너무 고맙다"며 "두산과 대결을 하고 있는데 제가 두산에서 처음 감독을 했다. 두산에서도 저를 믿어줬기에 이런 게 발판이 돼 지금까지 감독을 할 수 있었다. 선수들에게도 고맙다. 스태프들도 그렇고 그 뒤에는 팬들도 있다.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 많다. 저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20년 동안 감독을 하며 900번의 승리를 거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승리를 떠올리기도 힘들었다. 김 감독은 "사실 지금은 생각이 안 난다. 그런데 홈에서 2연패하고 그 다음날 비기는데 그 경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1승만 생각이 났다"며 "1승이 어떨 때 보면 쉽게 될 때도 있지만 굉장히 귀중하다고 배울 때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경문 감독(가운데)이 승리 후 이재원 등 선수단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김경문 감독(가운데)이 승리 후 이재원 등 선수단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선수들도 많이 신경 썼던 900승이다. 김 감독은 "사실 저는 900승에 큰 생각이 없었는데 선수들이 많이 신경 쓰고 있더라"며 "부담감을 내려주고 싶었는데 상대가 쉽게 공략할 만한 선수들이 아님에도 오히려 선수들이 집중해서 잘 쳐줬다"고 고마워했다.

지나치게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관심보다 선수들이 더 주목받기를 바랐다. 타선의 핵심 요나단 페라자가 없는 상황에서 거둔 값진 승리. 김 감독은 "중요한 용병이 빠진 가운데 선수들이 열심히 해서 이긴 것이라서 감독으로서 더 우리 선수들이 더 자랑스럽고 기쁘다"며 "우리 선수들 칭찬을 많이 해달라. 고참들이 먼저 솔선수범해서 좋은 팀으로 가고 있다. 우리 선수들과 스태프들 많이 칭찬 해달라"고 당부했다.

승리를 이끈 바리아에 대해선 "(호투가) 승리의 발판이 됐다. 선발이 상대한테 처음 던지면서 6회까지 던져주니까 우리는 너무 고마울 뿐"이라며 "본인이 6회까지만 던진다는 걸 결정하고 경기를 마쳤다. 굉장히 고맙다. (시리즈) 첫 경기부터 밀리면 상대가 타격이 좋아서 불안한데 이렇게 이길 수 있어 마음이 좀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여전히 기록은 진행형이다. 올 시즌 내 최다승 4위로 올라서는 것이 기정사실화되고 있고 계약 기간 3년을 채운다면 김인식 감독 또한 넘어 1000승 달성도 무난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김 감독은 숫자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했다. 그는 "감독은 오래하고 또 시간이 흐르면 승리는 자연적으로 많이 따라오는 것이다. 절대 혼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면서도 "이제 빨리 잊고 내일 류현진 선수가 던지니까 경기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승리 후 취재진에 둘러싸여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경문 감독.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승리 후 취재진에 둘러싸여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경문 감독.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잠실=안호근 기자 oranc317@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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