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기자] 지난 2022년 SSG 랜더스의 프로야구 최초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 확정된 순간, 투수 김광현(36)과 포수 이재원(36)이 나란히 양팔을 번쩍 들고 환호했다. 이재원이 마운드로 뛰어가면서 김광현을 부둥켜안고 기뻐했다.
최고의 순간을 함께했던 우승 배터리가 2년의 시간이 흘러 적으로 만났다. 지난 15일 대전 SSG-한화전. SSG 선발투수로 나선 김광현은 2회말 선두타자로 첫 타석에 들어선 한화 포수 이재원에게 인사를 건넸다. TV 중계 화면에 잡히지 않았지만 두 선수는 서로에게 인사를 하고 승부를 벌였다.
두 선수는 2006~2007년 나란히 1차 지명으로 SSG 전신 SK 와이번스에 입단했다. 같은 1988년생이지만 2월생인 이재원이 학교에 먼저 들어가 1년 선배다. 김광현은 빠르게 에이스로 성장했고, 이재원도 대타 요원으로 시작해 2014년부터 주전 포수로 자리잡았다. 2018년 한국시리즈 업셋 우승과 2022년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 모두 김광현-이재원 배터리가 투타 주역이었다.
하지만 2022년부터 하락세를 보인 이재원이 지난해 시즌 후 자진 방출로 팀을 떠나면서 김광현과 처음으로 상대팀 선수로 만났다. 같은 또래이자 배터리라는 특수 관계로 청춘을 함께 보내며 추억을 남겼기에 뭔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들었다.
승부는 승부. 결과는 이재원의 완승이었다. 2회 김광현의 체인지업을 받아쳐 좌전 안타를 치더니 4회에는 커브를 공략해 중전 안타로 연결했다. 2타수 2안타로 이재원에게 고전한 김광현이지만 5이닝 5피안타 3볼넷 6탈삼진 1실점으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경기 후 김광현은 “재원이형이 워낙 내 공을 많이 받았다 보니 익숙한 면이 있었을 것이다. 요즘 형이 잘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 좋다. 우리 팀에 있을 때 (야구가 안 돼)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며 나도 마음이 많이 아팠다. 지금 한화에 가서 잘하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편하다”며 이재원의 반등을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이재원도 “타석에 들어갔는데 광현이가 먼저 인사를 해줘서 고마웠다. 나도 고맙다고 인사했다”며 “경기는 경기이니까 서로 봐주는 것 없이 전력을 다했다. 광현이 볼을 많이 받았다 보니 잘 치고 못 치고를 떠나서 공이 오는 길을 안다. 아무래도 그런 부분에서 내가 유리했지만 광현이도 내 약점을 잘 아니까 서로 패를 까고 한 것이다”고 돌아봤다. 경기 후 이재원은 김광현에게 “여전히 볼 좋더라. 역시 왜 네가 에이스 투수인지 알겠다. 내가 운이 좋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지난 주말 3연전 내내 이재원은 원정팀 라커도 아무렇지 않게 드나들 정도로 SSG 선수들 사이에서 전혀 위화감이 없었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구단 프런트들도 웃으며 이재원을 반겼다. 이재원은 “SSG에서 나올 때 나쁘게 나온 게 아니다. 팀에 미안함을 아직도 갖고 있다”며 17년간 몸담은 전 소속팀에 여전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제는 한화 선수로 야구 인생 후반부를 장식한다. 프로 입단 후 한 번도 바꾸지 않았던 배트 무게를 880g에서 840g으로 낮추며 변화를 준 올 시즌 22경기 타율 3할3푼3리(45타수 15안타) 6타점 OPS .748로 타격이 살아난 이재원은 15일 경기에서 개인 통산 1100안타(역대 106번째) 기록도 세웠다.
그는 “부진하지 않고, 못하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했어야 할 기록인데 많이 늦어졌다”고 아쉬워하면서도 “개인적으로 특별히 하고 싶은 건 없다. 3안타를 쳐도 팀이 지면 웃을 수가 없다. 이기는 경기를 해야 한다. 팀이 한 경기라도 더 이기는 것만 생각하겠다”고 강조했다.
김경문 한화 감독은 지난 12일 잠실 두산전을 앞두고 이재원을 선발 포수로 쓰며 “우승도 해봤고, 야구를 잘했던 선수인데 서운하게 끝내면 안 된다”고 힘을 실어줬다. 이날부터 4경기에서 8안타를 몰아친 이재원은 “감독님이 고참 선수으로서 책임감을 가지라는 의미로 말씀해주신 거라고 생각한다. 감독님꼐서 지금 선수들에게 스킨십을 많이 해주고 계시지만 카리스마가 엄청나다. 그만큼 선수들이 더 열심히 집중하게 된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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