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부산, 조형래 기자]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는 올 시즌 내내 부상과 씨름하고 있다. 완전체가 될만 하면 계속 선수들이 빠진다. 최근에는 주장 전준우가 종아리 부상에서 돌아왔지만 주전 2루수로 자리 잡아가고 있던 고승민이 1루에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다가 왼손 엄지를 삐끗했다. 전반기 아웃이다.
고승민은 최근 팀에서 가장 생산력이 높은 타자였다. 6월 타율 3할3푼7리(101타수 30안타) 4홈런 21타점 OPS .924의 성적을 남기고 있었다. 2루에서도 안정적으로 정착하면서 핵심 선수로 거듭나고 있었다. 이런 선수의 공백을 채우는 게 쉽지는 않아 보였다.
그러나 건강한 팀으로 거듭나고 있는 롯데는 특정 선수의 공백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고승민의 공백 우려를 최항의 활약으로 단숨에 채웠다. 이 최항 역시 최근 불방망이를 휘두르고 있었고 고승민이 엔트리에서 말소된 27일 사직 KIA전, 3안타 활약을 펼치며 11-2 대승을 이끌었다.이날 경기 뿐만 아니라 최항은 주중 KIA와의 3연전에서 톡톡히 활약 했다. 특급 조커로서 매 타석 자신의 존재감을 뽐냈다. ‘6.25 대첩’을 쓸 뻔 했던 25일 경기, 1-14에서 12-14까지 맹추격을 한 롯데. 7회말 선두타자 손성빈의 대타로 등장해서 우전 안타를 치고 나가며 기회를 만들었고 15-14 역전의 시발점 역할을 했다. 15-15 무승부로 끝이 났지만 최항은 경기 기류를 바꾸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튿날인 26일도 마찬가지. 역시 2-4로 끌려가던 7회말, 이번에도 손성빈의 대타로 선두타자가 된 최항은 우전안타로 출루하며 5-4 역전의 발판을 놓았다. 8회말 타석에서도 1사 후 내야안타로 기회를 만들었고 대주자 김동혁으로 교체됐다. 김동혁은 2루 도루와 상대 폭투로 3루까지 간 뒤 황성빈의 희생플라이로 홈을 밟았다. 역전과 쐐기점의 시발점 역할을 했다. 27일 경기는 매 타석이 알찼다. 고승민의 부상으로 7번 2루수로 선발 출장한 최항은 3회 선두타자로 등장해 우전안타를 치고 나갔다. 득점은 올리지 못했지만 기회를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1-1로 맞선 4회말 2사 3루 기회에서 중전 적시타를 때려내 2-1로 역전을 일궜다. 이날 경기의 결승타였다. 5회말에도 최항은 6-1로 앞선 2사 3루에서 우중간 적시 3루타까지 뽑아내 쐐기 타점까지 뽑아냈다. 3연전 동안 이 타석까지 6연타석 안타로 대서사의 ‘신스틸러’가 됐다.
최항은 지난해 11월 열린 2차 드래프트에서 SSG의 보호선수 35인 명단에서 제외됐고 3라운드에서 롯데의 선택을 받았다. 내야 뎁스 확충을 위한 자원으로 여겨졌다. 김태형 감독은 최항을 눈여겨 보면서 1군 엔트리에 계속 뒀다. 대타나 대수비로서 역할을 해 나갔고 다시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최항은 최근 타격감에 대해 “타격감이 엄청 좋거나 타구의 질이 좋다는 느낌은 아니었는데, 이제야 투수랑 제대로 싸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결과를 떠나서 느낌이 좋아졌다”라며 “일단 결과보다는 타구의 질이 좋아야 내가 이 승부를 잘했냐 못했냐를 판단할 수 있다. 이게 중요하다. 이 느낌이 오래 가야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다”고 설명했다.오히려 마음을 비웠던 게 더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그는 “하루하루 리셋을 하면서 준비했다. KIA와의 시리즈에 들어갈 때, 이제 더 내려갈 곳은 없겠다는 생각을 해서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모두 보여주자, 오기로 내 것을 해보자’고 했는데 그러면서 힘이 빠지고 잘 됐던 것 같다”라고 밝혔다.
역대 최다 홈런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홈런왕’ SSG 최정과 최항은 7살 터울이지만 12년 간 한솥밥을 먹으며 우애를 과시하기도 했다. 지금은 떨어져 있지만 최정은 여전히 동생의 상황을 살피고 있고 또 비대면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최항은 “형이 최근에 제 영상을 봤는지, 조언을 해주더라. 그래서 그 부분을 신경도 많이 썼는데 하다 보니까 감독님과 코치님께서 해주셨던 말들도 비슷하게 섞여 있었다. 형이 힘이 많이 들어간다고 해서 힘 빼는 방법을 알려주고 했는데, 김주찬 코치님과 임훈 코치님도 비슷한 얘기를 해주셔서 그게 문제였나 싶었다. 그 부분을 신경쓰고 준비했더니 괜찮아지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잘 해주고 있던 고승민의 공백을 채워야 하는 상황에서 최항은 “제가 (고)승민에게 조언도 많이 해주고 응원도 해줬다. 후배지만 또 배울 점도 많았다”라면서 “항상 같이 좋아지고 있었는데 안타깝게 부상으로 빠졌다. 그래서 자리를 좀 더 잘 채워야겠다는 그런 마음도 있었다”고 강조했다.
김태형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가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기회를 주려고 한다. 1군에서 빠진 기간도 5월 중순 열흘 밖에 되지 않는다. “감독님께서 기회를 주시는 만큼 어떤 선수인지 어필을 해야한다. 그 부분을 항상 준비하고 이제 결과로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라고 전했다.
부산생활도 어느덧 6개월 가량 접어든다. 그는 “이제야 부산 사나이가 된 것 같다”라고 웃었다. 당장 고승민의 공백을 채워야 하는 선수지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그는 “지금 우리 팀이 누군가가 물꼬를 트면 어떻게든 계속 이어가나가는 힘이 생긴 것 같다. 개개인이 자기 할 것을 정말 많이 신경쓰면서 열심히 하려고 한다”라면서 “나의 앞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멀리 보지 않으려고 한다. 선발 오더에 제 이름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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