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식민 지배 사죄했던’ 日고교, 고시엔 개막식서 ‘감동 선서’
입력 : 2024.08.08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개막 선서 장면.   유튜브 うどん県チャンネル 캡처

[OSEN=백종인 객원기자] 일본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여름 고시엔 대회(전국 고교야구 선수권대회)가 7일 개막했다. 올해 106회를 맞은 이 대회는 지역 예선을 거친 49개 고등학교가 앞으로 17일간 토너먼트 방식으로 우승팀을 가리게 된다.

이날 개막식의 화제는 선서 장면이었다. 선수단 대표로 뽑힌 와카야마 치벤학원의 주장 쓰지 아사히(3학년)가 마이크 앞에서 약 3분간 선전을 다짐하는 장면이 전국으로 TV 중계됐다.

“우리들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여기 고시엔에서 일본 최고가 되는 것입니다”라고 시작하는 선서는 뒷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쓰지 군은 “’노력한다고 (모두가) 보상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 보상받을 일이 (아예) 없게 된다’는 말에 가르침을 받고 여기에 설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말을 가슴에 품고 끝까지 싸워 나가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선서가 끝난 뒤 ‘노력한다고…’라는 가르침의 주체가 스즈키 이치로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각종 댓글과 SNS에서는 많은 공감이 이어졌다.

‘역시 이치로 상이다. 그 정신이 젊은 선수들에게 계승되는 것 같아 흐뭇할 뿐이다.’

‘자신은 인덕이 없다며 프로 지도자 길을 마다하는 이치로가 매번 어린 선수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을 보며 느낀 점이 많다.’

‘멋진 선서였다. 고교생들이 큰 가르침을 얻은 것 같다.’ 같은 의견들이었다.

유튜브 National High School Baseball Championship 캡처

이치로와 이 학교의 인연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45세로 고민이 많던 시기다. ‘50세까지는 남겠다’며 현역 연장에 대한 의지가 강했지만, 주변 상황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개인 훈련은 계속됐다. 선수 때 뛰던 고베(오릭스) 인근 시설에서 한참 땀을 흘릴 때였다. 바로 옆 그라운드의 함성에 관심이 간다. 한창 진행 중인 고시엔 대회 지역예선이었다.

얼핏 넘겨다본다. 전광판 스코어가 12-0이다. 맥 빠진 게임이다. 콜드게임이 뻔하다. 그런데 열기는 보통이 아니다. ‘왜들 저러나.’ 의아한 눈길이 머문 곳은 외야 한쪽을 가득 메운 응원단석이다.

수백명의 재학생과 밴드, 치어리더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다. 목이 터져라 외친다. 손바닥이 아프지만 박수를 멈추지 않는다. 열정을 다해 그라운드의 선수들을 응원한다. 처음에는 이기고 있는 학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탈락을, 그것도 치욕적인 콜드게임을 눈 앞에 둔 곳이었다. 바로 (이번 선서식의) 와카야마 치벤학원이었다.

큰 감명을 받은 이치로는 팀 하나를 만든다. 자신의 매니저, 트레이너, 통역 등 주변 지인들로 멤버를 결성했다. 야구와 친한 사람도 있고, 문외한도 있다. 팀 이름은 고베 치벤이라고 정했다. 와카야마 치벤을 오마주한 이름이다. 다만, 혼동을 주는 것은 결례다. 팀 명은 가급적 영어(CHIBEN)로만 표기한다.

데뷔전 상대는 당연히 감동을 준 곳이다. 와카야마 치벤의 교직원 팀과 일전을 겨뤘다. 이치로가 투수로 나서 9이닝을 완투했다. 14-0의 스코어였다. 봐주는 것 따위는 없다.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정신이다.

이후 고베 CHIBEN의 경기는 대형 이벤트가 됐다. 매년 11월이면 여자 고교 선발과 게임을 펼친다. 장소는 무려 도쿄돔이다. 이를 공중파 TV가 생중계한다. 최근에는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유격수로 합류했다. 물론 투수는 이치로가 붙박이다. 팔이 아파도, 손가락이 마비돼도, 종아리 근육통이 올라와도. 언제나 9회까지 홀로 책임진다.

TBS TV 유튜브 채널 캡처

치벤(智辯) 학원은 간사이 지역의 명문 사학 재단이다. 와카야마를 비롯해 나라 등지에서 8개 초중고교를 운영한다. 설립자는 후지타 테루키요라는 인물이다. 독특한 교육 이념으로 잘 알려졌다.

“소학교(초등학교) 5학년 때 선생님이 처음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가르침을 주셨다. 우리 일본의 원류이며, 형님과도 같은 훌륭한 나라라고 알려주셨다. 그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올바른 역사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이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재학생들의 수학여행 장소를 경주로 정했다. 1975년에 시작해 코로나가 창궐하기 직전(2019년)까지 계속됐다. 한일 관계 위기, 북한의 미사일, 학부모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았다. 무려 45년간이나 한 해도 쉬지 않았다.

이런 학교에 전설의 가르침이 더해졌다. 이치로는 은퇴 이후 강사로 활동(?) 중이다. 전국을 떠돌며 학생들을 가르친다. 불쑥불쑥 나타나 타격과 수비, 주로 등을 알려준다. 물론 그 이상, ‘철학 강의’도 필수다.

자신에게 감명을 준 와카야마 치벤이 빠질 수 없다. 틈틈이 들러 야구부원들을 격려한다. 그때 남긴 얘기가 이번 선서를 통해 전해졌다. “노력한다고 (모두가) 보상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 보상받을 일은 (아예) 없게 된다”는 것이다.

(올해는 치벤 학원에서 2팀이 본선에 진출했다. 와카야마 치벤과 나라 치벤이다. 와카야마는 3년전 우승팀이기도 하다.)

한국으로 수학여행을 온 일본 지벤학원 학생들이 경주 엑스포공원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경주엑스포공원]

/ goorada@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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