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기자]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는 지난달 29일 시즌 최종전을 맞아 대전 홈구장에서 투수 정우람의 은퇴식을 성대하게 열었다. 21년 프로 커리어를 마무리한 정우람은 한화생명이글스파크를 가득 메운 관중들과 후배 선수들의 뜨거운 박수와 환호 속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작별을 고했다.
이 자리에는 최고령 외야수 김강민(42)도 있었다. 정우람의 은퇴를 축하하며 선수단 및 구단 직원들과도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나눈 김강민은 3일 뒤 현역 은퇴를 알렸다. 시즌 말미부터 구단에 먼저 은퇴 의사를 전하며 결심을 굳힌 김강민으로선 정우람의 은퇴식을 보며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43년 KBO리그 역사에서 은퇴식으로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던 선수는 가장 최근 정우람까지 총 107명이다. 김강민도 충분히 성대한 은퇴식을 가질 만한 선수다.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SK, SSG에서 무려 23년의 긴 시간을 뛰면서 5번의 한국시리즈 우승(2007·2008·2010·2018·2022)을 함께한 왕조 멤버였다. 특히 2018년 플레이오프 5차전 9회말 동점 솔로 홈런, 2022년 한국시리즈 5차전 9회말 역전 끝내기 스리런 홈런으로 위기의 팀을 구하며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SSG에서 은퇴했다면 남 부럽지 않을 은퇴식이 확실했지만 지난해 11월 열린 2차 드래프트가 그의 야구 인생 마지막을 바꿔놓았다. SSG가 35인 보호선수명단에 김강민을 제외하면서 은퇴 예정 및 논의 표시를 하지 않았고, 한화가 4라운드 전체 22순위로 깜짝 지명한 것이다. SSG에서 그대로 은퇴할 수도 있었지만 김강민은 선수로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준 한화에서 현역 연장을 결정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한화에서의 선수 생활은 길지 않았다. 올해 햄스트링 부상을 반복했고, 상대 투수 공에 머리를 맞는 헤드샷 후유증까지 겪었다. 41경기 타율 2할2푼4리(76타수 17안타) 1홈런 7타점에 그치면서 김강민은 은퇴를 결심했다. 23년을 몸담았던 정든 팀을 떠났지만 이적 1년 만에 유니폼을 벗었다.
하지만 이대로 은퇴식 없이 떠날 선수가 아니라는 데는 모두가 공감한다. 24년간 통산 1960경기를 뛰며 타율 2할7푼3리(5440타수 1487안타) 139홈런 681타점 810득점 209도루를 올린 김강민은 기록 이상의 가치가 있는 선수였다. 빠른 발과 강한 어깨로 ‘짐승’이라 불린 외야 수비력, 찬스에 강한 클러치 능력으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SK, SSG로 이어지는 인천 야구 역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선수다. 23년 청춘을 바치며 5번의 우승을 한 인천에서 김강민의 은퇴식을 하는 게 가장 그림이 좋다. 한화 소속으로 마무리했지만 23년의 세월을 무시할 수 없다. 지난 3월26일 김강민이 한화 선수로 인천SSG랜더스필드를 찾아 상대 타석에 들어서자 SSG 팬들이 크게 환영했다. 양 팀에서 한 선수의 응원가를 다 같이 불르는 장관이 연출됐다. 김강민을 향한 인천 팬심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2021년부터 KBO는 은퇴 선수 특별 엔트리 제도를 도입했다. 은퇴 선수의 은퇴식을 위해 엔트리 등록이 필요한 경우 정원을 초과해 엔트리에 등록할 수 있게 허용했다. 메이저리그 1일 계약처럼 김강민도 마지막을 SSG 선수로 마칠 수 있다. 2018년 KT에서 커리어를 마무리했던 외국인 투수 더스틴 니퍼트는 지난달 14일 전성기를 보낸 두산의 주최로 잠실구장에서 은퇴식을 가졌다. 특별 엔트리를 통해 두산 선수로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었다.
김강민도 이런 식으로 인천에서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SSG로서도 김강민의 은퇴식을 열어준다면 지난겨울 하루아침에 프랜차이즈 스타를 잃고 허탈했던 팬심을 달랠 수 있다. 김재현 SSG 단장도 SK 시절 김강민과 함께 선수로 뛰었던 인연이 있다.
다만 또 다른 변수가 생길 수 있다. 만약 김강민이 한화에서 코치를 한다면 SSG 주최로 은퇴식을 준비하기엔 애매한 구석이 있다. 향후 김강민의 거취에 따라 은퇴식 주최가 결정되고, 조율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은퇴 발표가 난 지 며칠 안 됐고,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만에 하나 SSG에서 은퇴식을 열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한화에서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 없이 떠날 선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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