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후광 기자] ‘마약사범’ 오재원 협박에 못 이겨 수면제를 대리 처방한 두산 베어스 소속 선수 8명이 내년 시즌 개막전부터 그라운드에 복귀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KBO(한국야구위원회)는 지난 4일 상벌위원회를 개최하고 프로야구 두산 김민혁(외야수), 김인태(외야수), 박계범(내야수), 박지훈(내야수), 안승한(포수), 이승진(투수), 장승현(투수), 제환유(투수) 등 8명에 대해 심의했다. 이들은 소속팀 선배였던 오재원의 강압에 의해 병원에서 항정신성 약물을 대리 처방 받아 전달했다.
KBO 상벌위원회는 8명 선수 전원에 KBO 규약 제151조 ‘품위손상행위’에 근거해 사회봉사 80시간 제재를 결정했다. KBO 상벌위원회는 “선수들이 선배 선수의 강압과 협박에 의한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점, 구단의 조치로 시즌 대부분의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점,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자수한 점 등을 고려해, 이와 같이 제재를 결정했다”라고 출전정지 징계 없이 사회복상 제재만 내린 이유를 설명했다.
오재원은 현역 시절이었던 2021년 5월부터 올해 3월까지 야구선수 등 14명으로부터 총 86회에 걸쳐 의료용 마약류인 수면제의 일종 스틸녹스와 자낙스 2365정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14명 가운데 두산 소속 현역 선수는 8명에 달했다.
두산은 오재원 사태가 터진 뒤 구단 1, 2군을 통틀어 대리 처방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8명이 과거 수면제를 대리 처방해 오재원에게 건넨 사실이 밝혀졌고, 두산은 4월 초 KBO 클린베이스볼센터에 이를 신고했다.
오재원은 두산 후배들을 협박해 졸피뎀 성분의 수면유도제인 스틸녹스정 대리 처방을 강요했다. 8명의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주로 성품이 순박하고 아직 빛을 보지 못한 1.5~2군급 선수들만 골라 ‘불법 행위’를 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오재원은 수년간 후배들에게 대리처방을 강요하며 폭행과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후배들에게 모바일 메신저로 끊임없이 대리 처방을 강요하면서 “(수면제를 받아오지 않으면) 칼로 찌르겠다”, “팔을 지져 버리겠다” 등 협박 메시지를 보냈다. 위계질서가 강한 야구계 특성 상 힘없는 후배들은 ‘우승 캡틴’이었던 오재원의 협박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자진 신고한 두산 A선수는 “(오재원이) 되게 무서운 선배였어요. 팀에서 입지가 높은 선배님이시고, 코치님들도 함부로 못 하는 선수여서 괜히 밉보였다가 제 선수 생활에 타격이 올까봐…”라고 솔직한 속내를 밝히기도 했다.
이 8명은 검찰 조사로 인해 2024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신스틸러’ 김인태, ‘양의지 백업 1순위’ 장승현, 안승한 ‘내야 유틸리티맨’ 박계범, ‘우타 거포’ 김민혁 등 1군급 선수들이 순식간에 ‘전력 외’로 분류됐다. 이들은 1군은 물론이고, 퓨처스리그 무대에도 서지 못하면서 이천 베어스파크에서 개인 훈련을 하는 데 그쳤다. 오재원의 악성 심부름을 강제로 했다는 이유로 미래를 모른 채 허송세월을 보냈다.
시간이 흘러 이들을 향한 법적 처분은 모두 마무리가 됐다. 비교적 심부름이 잦았던 1명이 벌금 300만 원 약식명령을 받은 가운데 3명은 보호관찰소 선도 조건부 기소유예, 4명은 교육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두산 구단은 검찰 수사결과가 발표된 10월 15일 KBO 클린베이스볼센터에 전달받은 내용을 신고한 뒤 16일 사건 처분과 관련한 공식 문서를 제출했다. 8인 가운데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선수들은 마약보호관찰소, 마약퇴치운동본부 등에서 재발 방지 교육을 이수했다. 그런 상황에서 KBO 징계가 사회봉사에 그치면서 선수들이 2025시즌 개막전부터 그라운드에 복귀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아쉽게도 8인 가운데 안승한은 은퇴를 결정하고 구단 프런트로 제2의 커리어를 열기로 했다. 그리고 나머지 7명은 지난 1일 이천 마무리캠프에 합류해 마음고생을 훌훌 털어내고 내년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두산 이승엽호는 대타 혹은 승부처 해결사가 필요한 순간 김인태, 김민혁이 절실했고, 내야진에 구멍이 생겼을 때 박계범의 이름이 그리웠으며, 양의지가 지쳤을 때는 장승현, 안승한의 공백이 아쉬웠다. 다행히 이들이 억울함과 누명을 벗으면서 2025시즌 더 나은 전력을 기대해볼 수 있게 됐다.
안승한을 제외한 7명은 두산이 내년 시즌 4위 그 이상에 오르기 위해 반드시 1군에 꼭 필요한 선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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