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천, 이후광 기자] 오재원의 협박에 못 이겨 수면제를 대리 처방한 두산 베어스 선수 8명이 마무리캠프에서 마침내 미소를 되찾았다.
6일 이천 베어스파크에서 진행된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마무리훈련에 반가운 얼굴이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 ‘마약사범’ 오재원의 협박을 못 이기고 수면제를 대리 처방해 법적 처분을 받은 8명이었다.
KBO(한국야구위원회)는 지난 4일 상벌위원회를 개최하고 두산 김민혁(외야수), 김인태(외야수), 박계범(내야수), 박지훈(내야수), 안승한(포수), 이승진(투수), 장승현(투수), 제환유(투수) 등 8명에 대해 심의했다. 이들은 소속팀 선배였던 오재원의 강압에 의해 병원에서 항정신성 약물을 대리 처방 받아 전달했다.
KBO 상벌위원회는 8명 선수 전원에 KBO 규약 제151조 ‘품위손상행위’에 근거해 사회봉사 80시간 제재를 결정했다. KBO 상벌위원회는 “선수들이 선배 선수의 강압과 협박에 의한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점, 구단의 조치로 시즌 대부분의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점,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자수한 점 등을 고려해, 이와 같이 제재를 결정했다”라고 출전정지 징계 없이 사회복상 제재만 내린 이유를 설명했다.
오재원은 현역 시절이었던 2021년 5월부터 올해 3월까지 야구선수 등 14명으로부터 총 86회에 걸쳐 의료용 마약류인 수면제의 일종 스틸녹스와 자낙스 2365정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14명 가운데 두산 소속 현역 선수는 8명에 달했다.
오재원은 두산 후배들을 협박해 졸피뎀 성분의 수면유도제인 스틸녹스정 대리 처방을 강요했다. 주로 성품이 순하고 아직 빛을 보지 못한 1.5~2군급 선수들만 골라 ‘불법 행위’를 시켰다.
오재원은 수년간 후배들에게 대리처방을 강요하며 폭행과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후배들에게 모바일 메신저로 끊임없이 대리 처방을 강요하면서 “(수면제를 받아오지 않으면) 칼로 찌르겠다”, “팔을 지져 버리겠다” 등 협박 메시지를 보냈다. 위계질서가 강한 야구계 특성 상 힘없는 후배들은 ‘우승 캡틴’이었던 오재원의 협박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 8명은 검찰 조사로 인해 2024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신스틸러’ 김인태, ‘양의지 백업 1순위’ 장승현, 안승한 ‘내야 유틸리티맨’ 박계범, ‘우타 거포’ 김민혁 등 1군급 선수들이 순식간에 ‘전력 외’로 분류됐다. 이들은 1군은 물론이고, 퓨처스리그 무대에도 서지 못하면서 이천 베어스파크에서 개인 훈련을 하는 데 그쳤다. 오재원의 악성 심부름을 강제로 했다는 이유로 미래를 모른 채 허송세월을 보냈다.
시간이 흘러 이들을 향한 법적 처분은 모두 마무리가 됐다. 비교적 심부름이 잦았던 1명이 벌금 300만 원 약식명령을 받은 가운데 3명은 보호관찰소 선도 조건부 기소유예, 4명은 교육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6일 이천에서 만난 두산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1일 마약퇴치운동본부 등에서 교육을 받은 뒤 4일 KBO 상벌위에 참석하느라 마무리캠프 첫 턴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8인 중 안승한이 은퇴를 선언한 가운데 7명이 이날 비로소 한 곳에 모여 정상적으로 훈련 스케줄을 소화했다. 프런트 수업이 확정된 안승한 또한 이천에 합류해 선수들의 훈련을 도왔다.
이승엽 감독은 “8명 모두 팀에 정말 필요한 전력이었다. 그들이 거의 100경기 이상 빠지면서 팀 전력이 많이 손실된 게 사실이었다”라며 “이제 이 선수들이 돌아왔고, 사회봉사 80시간만 이수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 이들이 내년 시즌 팀에 좋은 효과를 내줬으면 좋겠다. 모든 게 끝났으니 걱정은 훌훌 털어버리고 올해 하지 못했던 야구를 마음껏 했으면 좋겠다”라고 8인의 복귀를 진심으로 반겼다.
훈련에 앞서 8명을 만나 나눈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이 감독은 “내가 그 입장이 돼보지 않았지만, 누구한테 말도 못하고 얼마나 힘들었겠나. 보는 우리도 힘들었는데 본인들은 더 힘들었을 것이다. 가정이 있고 처자식이 있는 선수들도 있었다”라며 “이제 조금 더 잘해야하며, 그 동안 고생 많았다는 이야기를 해줬다”라고 밝혔다.
다만 이들이 올해를 날렸다고 해서 캠프 경쟁에서 특혜를 주는 건 없다. 이 감독은 “기회는 평등하다. 그들이 1년 고생했다고 기회를 더 주는 건 없다”라고 선을 그으며 “그 선수들이 100경기 이상 뛰지 못했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선수들 스스로 100경기 미출전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줄이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backligh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