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바젤의 '코리안' 박주호-박광룡에 대한 오해와 진실
입력 : 2012.03.13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김동환 기자= 스위스 바젤FC에서 함께 생활하는 두 명의 '코리안' 박주호와 박광룡의 관계가 화제다. 바젤은 올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북한의 박광룡은 지난 해 6월에 바젤에 입단했고, 5일 후 한국의 박주호가 입단했다. 영세 중립국인 스위스에서 남북 축구선수들의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미국의 스포츠 전문매체 ESPN은 최근 두 선수의 '코리아 유나이티드 FC(Korea United FC)'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북한 정부가 바젤 구단측에 박광룡과 박주호가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을 금지했다는 이야기, 함께 팀 버스에서 음악을 듣는 다는 등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지난 해 9월, 스포탈코리아는 국내 언론으로는 유일하게 박주호와 박광룡을 모두 인터뷰했다. 당시 인터뷰를 재구성해 이들의 관계를 다시 한 번 돌아봤다.

박주호에게 박광룡은 '영어를 잘 하는 동생'
박주호에게 박광룡은 좋은 동료다. 처음 바젤이 입단했을 당시 박주호에게 '북한 선수' 박광룡에 대한 특별함은 없었다. 박주호는 "오히려 먼 나라에서 한국말을 쓸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항상 팀에서 밥도 같이 먹고, 모든 것을 함께한다. (박)광룡이는 나이도 어려서 정말 친한 동생같다. 항상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다"며 친근함을 에둘러 표현했다.

한 팀에서 생활하는 만큼 그라운드 안팎에서 함께 할 기회도 많다. 원정 경기에 나서면 항상 같이 호텔 방에서 시간을 보낸다. 단 둘이서 보내는 기회는 많지 않지만, 팀 동료들간의 우애가 좋아 모두 같이 축구게임도 하고, 밥도 같이 먹는다.

물론 박주호에게 조심스러움은 있다. 아무도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알고 있는 것이다. 박주호는 "남북의 벽은 없다. 하지만 조심스러움은 있다. 서로 말은 하지 않지만, 당연히 지켜야 할 선을 서로 알고 있다. 말을 안해도 서로 인지하고 있다"며 쉽게 꺼내지 못하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꺼냈다.

다행이 둘은 팀 내에서 상당히 친하다. 박주호는 "바젤에 와서 처음으로 프리 시즌 경기를 소화하는데, 첫 어시스트를 박광룡에게 해줬다. 이후 급격히 친해졌다"며 "(박)광룡이가 영어를 잘 한다. 나보다 6개월 앞서 스위스에 진출했는데, 영어를 잘 한다. 내가 말을 못하고 있으면 달려와 도와준다. 간혹 광룡이가 통역도 해 줄 정도다"며 '동생' 칭찬을 이었다.

'절친'으로 갈 법도 하지만 역시 장벽이 있다. 박주호는 "단 둘이 밥을 먹은 적은 없다. (박)광룡이는 스위스인 에이전트와 함께 살고, 나는 따로 사는데 집으로 초대한 적은 없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서로 지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슬프게 볼 수도 있지만, 어쩌겠는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며 박광룡에 대한 이야기를 마쳤다.



박광룡과의 아쉬운 전화 인터뷰
스포탈코리아는 지난 해 국내 언론으로는 유일하게 박광룡과 접촉했다. 당시 바젤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를 치르기 위해 맨체스터의 한 호텔에서 머물고 있었다.

당시 기자는 박광룡과 접촉하기 위해 일 주일 이상 바젤에 요청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하지만 박광룡이 머물던 호텔 프런트에 "투숙객 박광룡씨와 통화하고 싶다"고 하자 아무렇지 않게 전화 연결을 해 줬다. 방 번호를 알려주는 것은 규정상 되지 않는 일이지만, 통화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벨이 두 번 울리고 반갑지만 조금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헬로"라는 말에 "여보세요"라고 기자가 응수하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
"누구십네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박광룡의 목소리에서 진한 경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남조선'의 기자라고 밝히자 "고저... 지금 너무 피곤해서 이야기를 할 수 없습네다. 미안합네다"라며 회피했다. 묻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지만 통화가 길게 이어지지 못할 것을 알았기에 당시 박광룡에게 한국의 박주호와 함께 뛰는 심정, 박지성과 맞붙는 심정을 물었다.

속내를 드러내기 쉽지 않은, 그 상황에 대한 이유 조차 물어볼 수 없는 상황에서 박광룡은 짧은 대답을 내놓았다.
"고저... 축구 아니겠습네까?"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박광룡에게 유럽 무대에서 한국 선수들과 맞뭍는 심정은 특별하지 않았다. 그랬다.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맞붙고 싶어하는 맨유의 대결이 특별하거나, '같은 민족' 박지성과 만나기에 오묘한 감정을 느낄 법도 했지만, 박광룡의 입은 절제되었다. 그리고 그는 "미안합네다. 곤란합네다"며 급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어쩌면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반 세기 전 만들어진 분단의 벽은 한 없이 높았다.



동료가 본 '박 브라더스'

남과 북의 축구선수. 박주호와 박광룡을 바라보는 3자의 시선은 어떨까? 이들의 기묘한 동거를 바라보는 눈이 호기심으로 가득한 것은 우리들 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분단 현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바젤의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 2010년부터 바젤에서 생활한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미드필더 야포 질레스 야피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 해 스포탈코리아와 만난 질레스 야피는 '바젤의 양박'에 대해 "두 선수가 처음 바젤에 입단했을때 많은 선수들이 생소함을 느꼈다"며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왠지 모를 걱정의 시선도 있었지만 기우였다.

질레스 야피는 "지금은 모두가 하나가 되었다"며 "박주호와 박광룡 모두 동료들과 함께 잘 어울리고 있다. 훈련 중에 대화도 많이 하고 서로 돕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남북의 분단이라는 현실 때문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을까 궁금했다. 질레스 야피의 눈에는 "두 명의 박(朴) 사이에 어떠한 경계도 보이지 않는다. 팀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서로 돕고 있다"라고 말한다. 둥근 축구공 위에서는 남과 북을 가르는 장벽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던 셈이다.

사진=(위로부터) 박주호 / 박광룡이 머물던 호텔 / 팀 동료 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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