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 ‘쓰나미도 피해 가는 위치 선정의 달인’
AC 밀란 공격수 필리포 인자기는 위치 선정의 달인이다. 골이 있는 곳엔 인자기가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자기는 뛰어난 신체 조건을 갖추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슈팅력이 좋은 편도 아니다. 주력과 드리블 역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인자기는 남다른 위치 선정을 자랑한다. 인자기는 골 맛을 아는 전형적인 골게터다. 통산 313골을 터뜨린 인자기는 이탈리아 축구사의 한 획을 그은 살아 있는 전설이다.
2012년 7월 25일 ‘위치 선정의 달인’ 인자기가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22년 간의 프로 생활을 접은 인자기는 지도자로 깜짝 변신할 예정이다. 25일(한국시간) AC 밀란은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인자기의 현역 은퇴 소식을 알렸다. 은퇴 후 인자기는 밀란 17세 이하 유소년팀 지휘봉을 잡을 예정이다.
▲프로 데뷔 그리고 아탈란타와 유벤투스
1973년생인 인자기는 1991년 고향팀 피아첸자에서 프로 데뷔했다. 이후 임대 생활을 전전했던 인자기는 1994/1995시즌 15골을 넣으며 팀의 세리에A 승격을 도왔다.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1995년 파르마로 이적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파르마 생활은 험난했다. 인자기는 팀 내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한 시즌 만에 아탈란타로 둥지를 옮겼다.
아탈란타행은 신의 한 수였다. 입단 첫 시즌 인자기는 24골을 터뜨리며 세리에A 득점왕을 차지했다.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는 이탈리아 최고의 명문 유벤투스로 이적. 세계적인 공격수로 발돋움했다. 당시 인자기는 지네딘 지단 그리고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와 찰떡궁합을 자랑하며 유벤투스의 세리에A 우승을 이끌었다. UEFA챔피언스리그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했다.
유벤투스에서 진가를 발휘한 인자기는 1998 프랑스 월드컵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월드컵 후에도 그는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며 유벤투스 간판 공격수로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다비 트레제게 이적 후 팀 내 입지가 좁아졌다. 주전 경쟁에서 밀린 인자기는 2001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AC밀란으로 전격 이적했다.
▲연이은 슬럼프 그리고 UEFA챔피언스리그 우승
AC 밀란 이적 후 인자기는 입단 첫 시즌 28경기에 나와 16골을 넣었다. 그리고 2002/2003시즌 30골을 터뜨리며 밀란의 UEFA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후 인자기는 연이은 부상에 발목이 잡혔다. 2003/2004시즌과 2004/2005시즌 모두 그라운드보다는 벤치를 지키는 일이 잦아졌다. 당시 인자기는 43경기에 나와 8골을 넣는 데 그쳤다. 킬러로서의 날카로움을 잃은 것이다.
2005/2006시즌 인자기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부상에서 돌아온 그는 31경기에서 17골을 터뜨리며 존재감을 알렸다. 활약상을 인정받은 인자기는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06 독일 월드컵에 출전했다. 월드컵에서 인자기는 슈퍼 서브로서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이탈리아 역시 통산 네 번째 월드컵 우승에 성공하며 축구 강국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굳혔다.
그리고 2006/2007시즌 인자기는 UEFA챔피언스리그에서 자신의 진가를 맘껏 발휘했다. 당시 밀란은 통산 7번째 UEFA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획득했다. 대회 주인공은 카카였다. 카카는 원맨쇼에 가까운 활약으로 안드리 셉첸코를 잃은 밀란 공격을 이끌었다. 그러나 인자기는 조연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해냈다. 리버풀과의 결승전에서는 두 골을 터뜨리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인자기는 노쇠화와 잦은 부상으로 제 기량을 펼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고비 때마다 득점포를 터뜨리며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빌 샹클리 전 리버풀 감독의 말을 입증했다. 2009년 3월에는 시에나와의 경기에서 개인 통산 300호 골을 기록했다. 이후에도 13골을 추가한 그는 개인 통산 313골을 넣으며 이탈리아 선수 중 5번째로 많은 골을 터뜨린 주인공이 됐다.
▲지도자로 변신할 인자기
은퇴 후 인자기는 지도자로 깜짝 변신할 예정이다. 밀란 역시 구단 채널을 통해 ‘인자기가 17세 이하 유소년팀 사령탑으로 부임했다’고 알렸다. 인자기 역시 구단 채널을 통해 지도자로 변신한 소감을 밝혔다. 그는 “코치로서 젊은 선수들에게 내 열정과 소망을 바치고 싶다. 코치로서의 삶이 기대된다”며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 새로운 삶을 살게 돼 기대된다고 밝혔다.
은퇴 후 인자기는 곧바로 밀란 유소년팀을 이끌 계획이다. 지도자로서 시험대에 오른 그는 그라운드에서 터득한 남다른 위치 선정을 자신의 후배이자 제자들에게 전수할 방침이다. 선수로서 인자기는 이제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지도자로 변신한 그에게 거는 기대감은 어느 누구보다 남다르다. 신체 조건의 열세에도 골 감각 하나만으로 유럽 축구를 뒤흔든 ‘위치 선정의 달인’ 인자기이기 때문이다.
▲ FACT FILE: 필리포 인자기
-생년월일: 1973년 8월 9일
-국적: 이탈리아
-포지션: 공격수(최전방 포워드)
-키: 181cm
-클럽: 피아첸자(1991~1995) – 레페(1992~1993, 임대) – 베로나(1993~1994, 임대) – 파르마(1995~1996) – 아탈란타(1996~1997) – 유벤투스(1997~2001) - AC밀란(2001~2012)
-우승 경력: 이탈리아 세리에A 3회, 코파 이탈리아 1회, 수페르 코파 2회, UEFA챔피언스리그 2회, UEFA슈퍼컵 2회, UEFA 인터토토컵 1회, FIFA 클럽 월드컵 1회, FIFA 월드컵 1회
-주요 수상: 1997 세리에A 올해의 영플레이어상 1회, UEFA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최우수 선수상 1회, 이탈리아 세리에A 득점왕 1회
외신팀 박문수 에디터
AC 밀란 공격수 필리포 인자기는 위치 선정의 달인이다. 골이 있는 곳엔 인자기가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자기는 뛰어난 신체 조건을 갖추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슈팅력이 좋은 편도 아니다. 주력과 드리블 역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인자기는 남다른 위치 선정을 자랑한다. 인자기는 골 맛을 아는 전형적인 골게터다. 통산 313골을 터뜨린 인자기는 이탈리아 축구사의 한 획을 그은 살아 있는 전설이다.
2012년 7월 25일 ‘위치 선정의 달인’ 인자기가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22년 간의 프로 생활을 접은 인자기는 지도자로 깜짝 변신할 예정이다. 25일(한국시간) AC 밀란은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인자기의 현역 은퇴 소식을 알렸다. 은퇴 후 인자기는 밀란 17세 이하 유소년팀 지휘봉을 잡을 예정이다.
▲프로 데뷔 그리고 아탈란타와 유벤투스
1973년생인 인자기는 1991년 고향팀 피아첸자에서 프로 데뷔했다. 이후 임대 생활을 전전했던 인자기는 1994/1995시즌 15골을 넣으며 팀의 세리에A 승격을 도왔다.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1995년 파르마로 이적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파르마 생활은 험난했다. 인자기는 팀 내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한 시즌 만에 아탈란타로 둥지를 옮겼다.
아탈란타행은 신의 한 수였다. 입단 첫 시즌 인자기는 24골을 터뜨리며 세리에A 득점왕을 차지했다.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는 이탈리아 최고의 명문 유벤투스로 이적. 세계적인 공격수로 발돋움했다. 당시 인자기는 지네딘 지단 그리고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와 찰떡궁합을 자랑하며 유벤투스의 세리에A 우승을 이끌었다. UEFA챔피언스리그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했다.
유벤투스에서 진가를 발휘한 인자기는 1998 프랑스 월드컵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월드컵 후에도 그는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며 유벤투스 간판 공격수로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다비 트레제게 이적 후 팀 내 입지가 좁아졌다. 주전 경쟁에서 밀린 인자기는 2001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AC밀란으로 전격 이적했다.
▲연이은 슬럼프 그리고 UEFA챔피언스리그 우승
AC 밀란 이적 후 인자기는 입단 첫 시즌 28경기에 나와 16골을 넣었다. 그리고 2002/2003시즌 30골을 터뜨리며 밀란의 UEFA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후 인자기는 연이은 부상에 발목이 잡혔다. 2003/2004시즌과 2004/2005시즌 모두 그라운드보다는 벤치를 지키는 일이 잦아졌다. 당시 인자기는 43경기에 나와 8골을 넣는 데 그쳤다. 킬러로서의 날카로움을 잃은 것이다.
2005/2006시즌 인자기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부상에서 돌아온 그는 31경기에서 17골을 터뜨리며 존재감을 알렸다. 활약상을 인정받은 인자기는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06 독일 월드컵에 출전했다. 월드컵에서 인자기는 슈퍼 서브로서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이탈리아 역시 통산 네 번째 월드컵 우승에 성공하며 축구 강국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굳혔다.
그리고 2006/2007시즌 인자기는 UEFA챔피언스리그에서 자신의 진가를 맘껏 발휘했다. 당시 밀란은 통산 7번째 UEFA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획득했다. 대회 주인공은 카카였다. 카카는 원맨쇼에 가까운 활약으로 안드리 셉첸코를 잃은 밀란 공격을 이끌었다. 그러나 인자기는 조연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해냈다. 리버풀과의 결승전에서는 두 골을 터뜨리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인자기는 노쇠화와 잦은 부상으로 제 기량을 펼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고비 때마다 득점포를 터뜨리며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빌 샹클리 전 리버풀 감독의 말을 입증했다. 2009년 3월에는 시에나와의 경기에서 개인 통산 300호 골을 기록했다. 이후에도 13골을 추가한 그는 개인 통산 313골을 넣으며 이탈리아 선수 중 5번째로 많은 골을 터뜨린 주인공이 됐다.
▲지도자로 변신할 인자기
은퇴 후 인자기는 지도자로 깜짝 변신할 예정이다. 밀란 역시 구단 채널을 통해 ‘인자기가 17세 이하 유소년팀 사령탑으로 부임했다’고 알렸다. 인자기 역시 구단 채널을 통해 지도자로 변신한 소감을 밝혔다. 그는 “코치로서 젊은 선수들에게 내 열정과 소망을 바치고 싶다. 코치로서의 삶이 기대된다”며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 새로운 삶을 살게 돼 기대된다고 밝혔다.
은퇴 후 인자기는 곧바로 밀란 유소년팀을 이끌 계획이다. 지도자로서 시험대에 오른 그는 그라운드에서 터득한 남다른 위치 선정을 자신의 후배이자 제자들에게 전수할 방침이다. 선수로서 인자기는 이제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지도자로 변신한 그에게 거는 기대감은 어느 누구보다 남다르다. 신체 조건의 열세에도 골 감각 하나만으로 유럽 축구를 뒤흔든 ‘위치 선정의 달인’ 인자기이기 때문이다.
▲ FACT FILE: 필리포 인자기
-생년월일: 1973년 8월 9일
-국적: 이탈리아
-포지션: 공격수(최전방 포워드)
-키: 181cm
-클럽: 피아첸자(1991~1995) – 레페(1992~1993, 임대) – 베로나(1993~1994, 임대) – 파르마(1995~1996) – 아탈란타(1996~1997) – 유벤투스(1997~2001) - AC밀란(2001~2012)
-우승 경력: 이탈리아 세리에A 3회, 코파 이탈리아 1회, 수페르 코파 2회, UEFA챔피언스리그 2회, UEFA슈퍼컵 2회, UEFA 인터토토컵 1회, FIFA 클럽 월드컵 1회, FIFA 월드컵 1회
-주요 수상: 1997 세리에A 올해의 영플레이어상 1회, UEFA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최우수 선수상 1회, 이탈리아 세리에A 득점왕 1회
외신팀 박문수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