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오언, 영광과 좌절의 순간들
입력 : 2013.03.20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정지훈 기자 = 1998년 6월 30일, 생테티앙 경기장.

이곳에서는 전 세계 축구팬들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아르헨티나-잉글랜드의 1998 프랑스월드컵 8강전이 열리고 있었다. 두 나라는 남미 대륙 최남단 포클랜드 섬 영유권을 놓고 지난 1982년에 전쟁까지 치렀을 정도로 앙숙인 데다 축구에서도 한치 양보 없는 라이벌 관계를 형성해왔다.

자연히 경기 시작 전부터 그라운드 안팎으로 엄청난 열기에 휩싸였고, 킥오프 이후에는 예상대로 뜨거운 경기가 펼쳐졌다.

이날 팬들은 얼굴에 솜털이 보송보송하고 여자아이처럼 예쁘게 생긴 잉글랜드의 한 젊은 선수에게 주목했다. 그의 이름은 마이클 오언.

그는 1-1로 팽팽히 맞서던 전반 16분, 질풍 같은 단독 드리블로 아르헨티나 수비수 3명을 제친 후 몸을 틀며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날렸다. 공은 미사일처럼 날아가 아르헨 GK 카를로스 로아의 손을 외면하며 그대로 골네트에 꽂혔다.

이 경기는 PK 접전 끝에 아르헨티나가 승리했지만 오언은 이 1골로 세계 무대에서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다.

그리고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는 리버풀과 2002 한일월드컵에서 영광의 순간을, 레알 마드리드와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시련을 보냈다. 잦은 무릎 부상으로 '유리몸'이라는 좋지 못한 별명까지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타 중 1명으로 자리매김했다. 잘 생긴 그의 외모와 왠지 자꾸 불운이 겹치는 선수 행보가 묘하게 오버랩 되면서 연민의 정이 들어서였을까.

그 마이클 오언이 영욕이 점철된 16년 축구 인생을 마무리한다. 그는 지난 19일(한국 시간)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에 때맞춰 영국(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모두 포함) 언론들은 그의 '영광과 좌절'이라는 제목으로 기사와 동영상을 게재했다. 영국 ‘더선’에 따르면 98 프랑스 월드컵 때 오언이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터뜨린 역전골은 그의 축구 인생 최고의 장면이라고 꼽았다.

오언의 전성기는 리버풀 시절이었다. 2001/2002시즌 리그 24경기(20 선발, 4교체)에 출전해 19골, FA컵 2경기 2골, 챔피언스리그 8경기 5골을 기록하며 그라운드를 지배했다.

최고의 활약을 펼친 오언은 당시 스페인의 골잡이 라울 곤살레스(당시 레알 마드리드)와 독일의 수문장 올리버 칸(당시 바이에른 뮌헨)을 제치고 시즌 도중 2001년 골든볼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어 발롱도르를 수상하는 영광도 얻었다.

이런 활약에 오언은 2004년 여름 '꿈의 구단'인 레알 마드리로 이적했다. 이적 첫 해인 2004/2005 시즌, 그는 16골을 넣으며 '갈락티코(은하수)'의 하나가 된 것처럼 보였다. 아마 그는 본인의 축구 커리어 상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는 듯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오언에게 시련이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레알에서 기회를 받지 못했고 2005년 여름 뉴캐슬로 이적해 재기를 노렸다. 하지만 12월 31일 토트넘과의 리그 경기에서 무릎을 다쳐 7개월 간 결장했다. 이 부상은 그의 커리어 내내 커다른 암초로 작용했다.

침체돼 있던 그에게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명장' 퍼거슨(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부름이다. 2009년 여름 올드 트래포드에 입성한 그는 9월 22일 맨체스터 시티와의 리그 경기 후반 추가시간에 극적인 역전골을 터트리며 맨체스터 더비 극장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새로 영입된 치차리토의 가세로 출전 시간이 줄어들었고, 맨유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다. 결국, 그는 2012년 5월 17일 스토크 시티로 팀을 옮겼다. 세계 유수의 빅클럽에서 마이너 클럽으로 간 것이다.

그러나 오언은 스토크로 옮겨서도 이런저런 부상에 시달리며 전성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2013년 1월 19일 스완지 시티와의 리그 경기에서 자신의 통산 150번째 골을 넣으며 화려한 막을 내렸다.

올 시즌이 끝나면 잉글랜드 스타 오언의 플레이는 더 이상 볼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화려한 플레이, 천사같은 미소, 경기장 안팎에서 보여준 성실한 태도는 팬들의 기억 속에 영원할 것이다.

사진=ⓒBPI/스포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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