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2014 지킨 이만수 지켜준 송일수
입력 : 2017.08.07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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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 2014년의 프로야구는 시즌 끝까지 최종순위를 예측할 수 없었던 박진감 넘치는 시즌이었다. 페넌트레이스 1위 삼성 라이온즈와 2위 넥센 히어로즈의 승차는 0.5경기, 4위 LG 트윈스와 5위 SK 와이번스의 승차는 1경기였다. 때마침 불어온 타고투저의 광풍까지 겹쳐 2014년은 그 어느때보다도 후끈한 시즌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시즌 막판 가장 화제가 된 것은 '가을야구의 막차를 탈 팀이 어디인가'였다. 6월 23일 기준 1경기 차로 각각 7, 8위에 있던 SK와 LG는 4달 가까이 지난 10월 15일에는 1.5경기차로 5위와 4위에 자리잡았다. 그 시점에서 SK는 두 경기, LG는 한 경기만을 남겨두었다. 16일 경기에서 SK가 지면 LG의 4강 확정, SK가 이기면 최종전에서 결정이 되는 상황이었다.

10월 16일 SK의 상대는 두산 베어스였다. 두산은 이미 4강 탈락이 확정되었기 때문에 주전들을 대거 벤치에 앉혔다. 대신 시즌 중 출장이 적었던 고영민, 최주환, 오장훈 같은 백업선수들이 주전으로 나섰다. 그런데 그 백업선수들이 SK 에이스 김광현을 상대로 4회 1아웃에 무려 5점을 뽑아냈다. 어디서 많이 본 광경이다. 양 팀의 사령탑인 SK 이만수 감독과 두산 송일수 감독도 생생히 기억날 상황이었다.




1984 - 지켜야 하는 이만수, 지켜줘야 하는 송일수



1985년 통합우승을 거두고 김영덕 감독을 헹가래해주는 삼성 선수단. 사진 가운데 이만수와 송일수가 보인다.(사진=삼성 라이온즈 제공)


달력을 잠시 1984년 9월 22일로 넘겨보자. 당시 삼성은 잃을 게 많은 팀이었다. 전기리그 우승팀에게 무슨 소리인가 싶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우선 한국시리즈의 파트너 문제였다. 삼성 김영덕 감독은 전기리그와 후기리그 우승팀끼리 맞붙는 당시 한국시리즈에서 전 소속팀인 OB 베어스를 만나지 않고 싶어 했다. 그래서 비교적 쉬운 상대였던 당시 후기리그 1위 롯데 자이언츠가 우승할 수 있도록 밀어주기로 결정한다.

또한 타이틀 문제가 있었다. 9월 초반만 해도 여유롭게 타율 1위를 달리던 이만수는 한국시리즈를 대비하여 띄엄띄엄 출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롯데의 홍문종이 무서운 기세로 추격하더니 9월 22일에 이르러서 두 선수의 타율 차이는 1리로 좁혀졌다(이만수 0.340, 홍문종 0.339).

이 상황에서 삼성이 내린 결론은 바로 '롯데에게 져주고, 이만수 타격왕 만들어주기'였다. 롯데와 한국시리즈에서 맞붙는다 해도 최동원 하나만 잡는다면 우승은 어렵지 않다는 계산이었다. 그 결과 9월 22일 경기 전 구덕구장 전광판에 적힌 삼성의 라인업에는 포지션 번호 '2' 옆에 있어야 할 이만수의 이름이 없었다. 대신 적힌 이름은 '송일수'. '타격왕을 지켜야 하는 이만수와 지켜주는 송일수'의 구도가 된 것이다. 이만수 외에도 많은 주전들이 롯데의 후기리그 우승을 만들어주기 위해 벤치를 지켰고 그나마 나온 주전 선수들도 초반에 일찍 교체되었다.
 


1984년 9월 22일의 라인업과 그 해 한국시리즈 6차전 라인업의 비교. 삼성은 롯데를 밀어주기 위해 주전들을 대거 제외했다.


그날의 경기는 KBO 리그 역사상 가장 추악한 경기 중 하나였다. 전국에 방송되는 경기에서 삼성의 고의 실책, 어설픈 주루사가 이어졌고 홍문종은 방망이 한번 내보지 못한 채 고의4구로 나가야만 했다. '눈치 없이' 첫 타석에서 안타를 친 송일수는 바로 손상대로 교체되었다. 이튿날도 마찬가지였고 결국 타격왕은 이만수, 후기리그 우승은 롯데의 것이 되었다.

삼성이 바라던 시나리오는 거기까지였다. 최동원이 시즌을 거치며 지칠 대로 지쳤다고 해도 신계에서 인간계 최상이 됐을 뿐이었다. 84년 한국시리즈는 삼성과 최동원의 대결로 귀결됐다. 이 대결에서 3승 4패로 석패한 삼성은 '기록도 영원하고 비난도 영원한'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9월 22일, 그 날의 경기를 이만수와 송일수 두 선수 모두 잊지 않았을 것이다.




2014 – 올라가야 하는 이만수, 쉬고 싶은 송일수
 
다시 2014년 10월 16일로 돌아가보자. 시즌 세번째 선발등판이었던 이현승은 4회까지 SK 타선을 꽁꽁 틀어막았다. 비록 5회에 1점을 내주기는 했으나 이미 4점차였기 때문에 두산의 대세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이현승 개인으로서는 1,272일만에 선발승의 영광을 안기 직전이었다. 투구수가 79개로 여유 있었지만 송일수 감독은 이현승을 5이닝까지만 소화하게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송일수 감독은 구설수에 오르는 선수기용을 하게 된다. 5회말 안타를 치고 나간 3번타자 김현수는 대주자 이성곤으로 교체되었고 4번 홍성흔도 대타 김재환으로 교체되었다. 훗날 골든글러브까지 차지하는 김재환이지만 이 당시에는 백업포수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그러면서 3-4-5번 클린업트리오가 이성곤-김재환-오장훈으로 구성되었다. "주전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서"라는 송일수 감독의 설명은 일견 타당해 보였다.



당시 5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던 이현승은 끝내 선발승을 얻지 못했다.(사진=OSEN)


그러나 이후의 투수교체는 많은 사람들의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현승에 이어 마운드를 이어받은 선수들은 임태훈-정대현-노경은이었다. 임태훈은 시즌 5경기 등판에 그쳤고, 정대현은 WHIP(이닝당 출루허용률)이 2에 육박하는 상황이었다. 노경은은 그때까지 등판한 28경기 중 25경기에서 실점을 허용한 선수였다. 당연히 이기고자 하는 기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결국 두산은 4점의 리드를 지키지 못한 채 10회초에 7대5 역전을 허용했다.

10회말 두산의 공격은 3번타자부터 시작이었다. 원래대로라면 김현수와 홍성흔이 나올 타순이다. 이들 대신 타석에 들어선 이성곤과 김재환은 안타를 뽑아내며 무사 만루를 만들기는 했다. 그러나 이 선수들이 하위타순 선수들의 대타로 나왔다면 한 점도 못 뽑고 경기를 내주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주전들의 때이른 교체가 아쉬움으로 남았던 이유다. 결국 경기는 7대5 SK의 승리로 끝났고 SK는 4강 진출의 기회를 다시 얻게 되었다.

이날 경기에 야구팬들의 비난은 쏟아졌다. "내년을 보고 신예들에게 기회를 줬다"는 송일수 감독의 해명인터뷰는 야구팬을 이해시킬 수 없었다. 급기야 잠실 라이벌인 LG의 4강행을 막기 위해 경기를 포기한 것이라는 음모론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 의도는 다를지언정 경기는 1984년의 '져주기 게임'과 비슷하게 흘러갔다. 양 팀의 사령탑이 그 당시 져주기 게임의 당사자였기 때문에 더욱 묘한 상황이 되었다.



 
'만들어진 판'은 야구판에선 아무 의미가 없다



이만수 감독은 팀을 가을야구로 보내지 못했고 결국 팀을 떠나게 되었다.(사진=OSEN)


1984년과 2014년의 두 사건은 공통점이 많다. 우선 시즌 막판까지 순위가 정해지지 않았고 한 팀은 순위가 이미 확정된 상황, 나머지 한 팀은 승리가 절박한 상황이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이만수와 송일수가 관련되어 있으며 이만수가 무언가를 얻는 상황에 송일수가 도움을 줬다는 점도 비슷하다. 또 많은 팬들의 비난을 받았다는 것도 두 사건을 이어주는 공통점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두 사건은 '만들어진 판'의 말로를 잘 보여줬다. 한국시리즈 파트너를 인위적으로 골랐던 1984년의 삼성은 결국 준우승에 그쳤다. 어부지리로 승리를 챙긴 2014년의 SK 역시 가을야구의 꿈을 접어야 했다. 다음날 LG가 패배하긴 했지만 SK 역시 승리를 따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음 시즌을 위해 주전들을 빼버린 송일수 감독은 감독실에서 자신의 짐을 빼야만 했다.


사람들은 '드라마'에 감동한다. 극적인 상황에 눈물 흘린다. 그러나 '다큐멘터리'일 때 몰입도는 더 높아진다. 야구는 일종의 다큐멘터리다. 응원팀이 아무리 좋은 성적을 거둔다고 해도 인위성이 개입된다면 팬들부터 비난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야구로 기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야구가 '만들어진' 드라마일 수는 없지 않겠는가.


야구공작소
양정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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