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포커스] 제주도민에게 '위로'를…K리그와는 함께 'WE로' 가는 제주
입력 : 2024.04.04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배웅기 기자= 비 내리는 4·3 희생자 추념일, 제주유나이티드(이하 제주)가 의미 있는 승리를 거뒀다.

제주는 지난 3일 서귀포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하나은행 K리그1 2024 5라운드 홈경기에서 2-0으로 승리했다. 전반 29분 신인 여홍규가 선제골을 터뜨렸고, 후반 추가시간 진성욱이 승부에 쐐기를 박는 통렬한 슛으로 골망을 갈랐다. 이로써 제주는 리그 2승째를 확보하며 6위에 안착했다.

이날 승리는 단순히 '승점 3점'이라는 의미에만 그치지 않았다. 마음 한편 아픔을 지니고 있는 제주도민을 위한 승리기도 했다. 경기 전 4·3 76주기 추모식이 진행됐고, 제주 선수들은 유니폼 가슴에 추모 상징인 동백꽃을 달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머플러, 키링, 페넌트 등으로 구성된 'Camellia Jeju(동백꽃 에디션)' 굿즈의 현장 판매도 진행됐다.


김학범 제주 감독 역시 경기 후 쉰 목소리로 "우리가 이겨야 제주도민에게 기쁨을 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도민들의 슬픔이 담긴 날에 승리를 선사하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제주는 제주도 연고의 유일 프로 구단으로, 제주 4·3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 4·3 유족회 아이들을 초대하고 '4월엔 동백꽃을 달아주세요' 릴레이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매년 의미 있는 행사를 기획해 유족들에게 위로를 전해왔다. 동백꽃은 1992년 강요배 화백의 4·3 연작 '동백꽃 지다'를 시작으로 희생자 추모의 상징이 됐다.


비가 쏟아지는 평일 저녁 3,426명의 적지 않은 관중이 동원됐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었다. 지리적 특성상 제주는 육지 구단에 비해 많은 관중을 유치하기 힘든 여건이다. 이에 제주 관계자는 관중이 오길 기다리는 것보다는 '직접 발로 뛰기'를 택했다. 바로 경기 시기에 맞추어 '수학여행 프로그램'을 계획한 것이다.

실제로 전북전에는 춘천 성수고등학교 수학여행단 233명이 찾아 열띤 응원을 펼쳤다. 예상치 못한 손님(?)의 방문도 있었다. 제주도 수학여행 중이던 전주 신흥고등학교 170명의 학생들이 연고지 팀 전북을 응원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제주월드컵경기장을 찾은 것이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제주 측은 단체 할인 등 혜택을 챙겨주지 못해 아쉬워했다는 후문이다.



미래 한국 축구를 빛낼 합천 가회중학교 축구부 선수단 22명도 이날 제주의 초청을 받아 경기를 즐겼다. 가회중 축구부는 오늘(4일) 서귀포시 강정동에 위치한 제주 클럽하우스를 방문해 투어도 진행할 예정이다. 제주 축구가 비단 제주도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전국구 여행 프로그램 중 하나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사람이든 상황이든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전국에서 찾아온 이 학생들이 제주 구단이 공유하고자 했던 가치를 느꼈다면, 지금의 추억을 발판 삼아 언젠가 연고지의 경기장을 찾게 될지 모른다. "내가 K리그를 제주도 수학여행 때 처음 봤는데 재밌더라"는 사소한 말 한마디가 가족, 친구, 지인에게 닿으면 큰 파급력이 될 수 있다. K리그와 상생까지 내다본 제주의 '빈틈없는 마케팅'이다.


이외에도 제주는 경기 당일 직관 인증 이벤트를 통해 야크마을 숙박권, 엉또 고깃집 식사권을 경품으로 제공하는 등 팬들을 위한 서비스를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한 경기, 한 경기를 진심으로 준비하는 제주의 신선한 아이디어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제주 관계자는 "비 오는 날 밤에도 도민들이 즐길 수 있는 하나의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어 기쁘다.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끊임없이 고민할 것"이라 전했다.

비교적 불리한 환경이라 해서 결코 정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정답을 기막히게 찾아내는 제주의 노력은 리그 내 경쟁팀뿐만 아니라 매 시즌 평균 관중 기록을 경신하며 흥행가도를 달리는 K리그 전체에도 선한 영향력 내지 흥행 시너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제주도민에게 위로를 건네고, K리그와는 함께 WE로 향하기 시작한 제주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주 유나이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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