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 오상진 기자= LG 트윈스 원클럽맨 ‘롸켓’ 이동현(41) 해설위원이 자신의 야구인생을 바꾼 김성근(83) 감독과 추억을 회상했다.
11일 공개된 유튜브 채널 ‘정근우의 야구인생’에 출연한 이동현은 2001년 김성근 감독과의 첫 만남을 돌아봤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 무서웠다. 당시 제주 오라 야구장에서 마무리 캠프를 하는데 스케줄표를 보니 아침 6시 30분에 내 이름이 적혀 있더라. 호텔에서 출발해 뛰어서 오라 야구장으로 가야 했다. 도착하자마자 피칭을 했다”며 “처음에는 큰 길로 가다가 어느 날부터 지름길로 갔는데 거기에 감독님이 자전거를 세워놓고 기다리고 계시더라. 덜 걸은 만큼 더 뛰게 시켰다”고 회상했다.
이동현은 이어 “눈발 날리는데 드럼통을 하나 들고 오시더니 거기에 불을 피우고 피칭을 시키신다. 100구든 200구든 무조건 정해진 위치에 공이 10%가 들어올 때 까지 던지게 시키셨다”며 “그때 감독님에게 하도 머리를 많이 맞아서 지금도 머리가 부어 있는 거다”며 웃었다.
2002년 데뷔 2년 차를 맞은 이동현은 78경기에 등판해 124⅔이닝을 던져 8승 3패 7세이브 6홀드 평균자책점 2.67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이동현은 “김성근 감독님이 2002년도에 마무리 투수로 점찍어주시면서 내 야구인생이 확 바뀌었다”며 “방송 인터뷰에서 매일 경기에 나가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김성근 감독님이 만든 작품이 계속 비춰졌으면 좋겠나는 생각을 했던 시기였다. 감독님을 어떤 선수가 욕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2002년 LG는 삼성 라이온즈와 한국시리즈 역대급 명승부를 펼친 끝에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LG와 이동현의 질주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듬해 김성근 감독이 경질되고 이동현은 선발로 기용되면서 팔꿈치 부상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결국 2004년 첫 팔꿈치 인대 접합(토미존) 수술을 받았고, 2005년 두 번째 일본에까지 넘어가 핀을 박는 수술까지 받았다. 하지만 일본에서 받은 수술이 문제가 생겼다. 이동현은 결국 2008년 미국에서 재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이동현은 “당시 LG 스포츠단 김영수 사장님이 ‘LG를 위해 투자하겠다’며 세 번째 수술을 하자고 했다. 군대 2년도 못기다리는데 5년을 기다려줬지 않냐. 그래서 나도 내 인대를 LG에 바치겠다고 말한 거다”라고 말했다.
결국 이동현은 2009년 마운드 복귀에 성공했고, 2010년 완벽하게 제 자리를 다시 찾았다. 2010년 이동현은 68경기에 등판 7승 3패 4세이브 15홀드 평균자책점 3.53을 기록했다. 이후 꾸준히 LG의 불펜이서 중심을 잡아줬으며, 2019년 은퇴할 때 까지 19년 동안 LG 원클럽맨 ‘롸켓맨’으로 불리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날 이동현은 5년의 재활에 힘이 돼 줬던 현재의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복귀 후 LG 팬들이 보여준 응원의 모습, 선수출신 해설위원으로서 팀에 고참 선수들이 필요한 이유 등 자신의 야구인생과 우리 야구에 대한 애정까지 솔직하게 들려줬다.
사진=유튜브 '정근우의 야구인생' 캡처, OSEN
11일 공개된 유튜브 채널 ‘정근우의 야구인생’에 출연한 이동현은 2001년 김성근 감독과의 첫 만남을 돌아봤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 무서웠다. 당시 제주 오라 야구장에서 마무리 캠프를 하는데 스케줄표를 보니 아침 6시 30분에 내 이름이 적혀 있더라. 호텔에서 출발해 뛰어서 오라 야구장으로 가야 했다. 도착하자마자 피칭을 했다”며 “처음에는 큰 길로 가다가 어느 날부터 지름길로 갔는데 거기에 감독님이 자전거를 세워놓고 기다리고 계시더라. 덜 걸은 만큼 더 뛰게 시켰다”고 회상했다.
이동현은 이어 “눈발 날리는데 드럼통을 하나 들고 오시더니 거기에 불을 피우고 피칭을 시키신다. 100구든 200구든 무조건 정해진 위치에 공이 10%가 들어올 때 까지 던지게 시키셨다”며 “그때 감독님에게 하도 머리를 많이 맞아서 지금도 머리가 부어 있는 거다”며 웃었다.
2002년 데뷔 2년 차를 맞은 이동현은 78경기에 등판해 124⅔이닝을 던져 8승 3패 7세이브 6홀드 평균자책점 2.67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이동현은 “김성근 감독님이 2002년도에 마무리 투수로 점찍어주시면서 내 야구인생이 확 바뀌었다”며 “방송 인터뷰에서 매일 경기에 나가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김성근 감독님이 만든 작품이 계속 비춰졌으면 좋겠나는 생각을 했던 시기였다. 감독님을 어떤 선수가 욕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2002년 LG는 삼성 라이온즈와 한국시리즈 역대급 명승부를 펼친 끝에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LG와 이동현의 질주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듬해 김성근 감독이 경질되고 이동현은 선발로 기용되면서 팔꿈치 부상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결국 2004년 첫 팔꿈치 인대 접합(토미존) 수술을 받았고, 2005년 두 번째 일본에까지 넘어가 핀을 박는 수술까지 받았다. 하지만 일본에서 받은 수술이 문제가 생겼다. 이동현은 결국 2008년 미국에서 재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이동현은 “당시 LG 스포츠단 김영수 사장님이 ‘LG를 위해 투자하겠다’며 세 번째 수술을 하자고 했다. 군대 2년도 못기다리는데 5년을 기다려줬지 않냐. 그래서 나도 내 인대를 LG에 바치겠다고 말한 거다”라고 말했다.
결국 이동현은 2009년 마운드 복귀에 성공했고, 2010년 완벽하게 제 자리를 다시 찾았다. 2010년 이동현은 68경기에 등판 7승 3패 4세이브 15홀드 평균자책점 3.53을 기록했다. 이후 꾸준히 LG의 불펜이서 중심을 잡아줬으며, 2019년 은퇴할 때 까지 19년 동안 LG 원클럽맨 ‘롸켓맨’으로 불리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날 이동현은 5년의 재활에 힘이 돼 줬던 현재의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복귀 후 LG 팬들이 보여준 응원의 모습, 선수출신 해설위원으로서 팀에 고참 선수들이 필요한 이유 등 자신의 야구인생과 우리 야구에 대한 애정까지 솔직하게 들려줬다.
사진=유튜브 '정근우의 야구인생' 캡처, O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