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기자] 야구의 본고자 미국 메이저리그보다 KBO리그가 먼저 시도한다. 세계 최초로 로봇 심판을 1군 경기에 정식 도입하기로 최종 확정했다.
KBO(총재 허구연)는 11일 2024년 제1차 이사회를 열고 올 시즌 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 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 적용을 최종 확정했다고 밝혔다.
ABS 외에도 피치 클락, 베이스 크기 확대 등 주요 제도의 중요도와 시급성을 고려해 순차적 도입 및 적용 시기를 확정했다. 또한 비 FA선수 다년 계약 관련 규정 등을 개정했다.
ABS는 투구 추적 프로그램으로 스트라이크, 볼 판정을 한다. 이어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볼 판정을 전달받은 주심이 판정을 외치는 시스템이다. 미국에선 2019년 독립리그 애틀랜틱리그에서 처음 시작했고, 마이너리그도 싱글A와 애리조나 가을리그에서 시범 운영됐다. 지난해 트리플A 전 구장이 ABS 시스템으로 진행됐지만 당초 예정한 2024년 메이저리그 도입을 미뤘다.
마이너리그에서도 100% ABS로 진행하는 경기가 있지만 팀당 3회씩 챌린지하는 방식으로도 같이 운영되고 있다. 아직 ABS 시스템에 100% 검증과 확신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메이저리그 도입을 미루고 있는 상황에서 KBO리그가 먼저 시작한다.
지난해 3월 취임한 허구연 KBO 총재는 롭 만프레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를 만나 ABS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고, KBO리그 검토를 적극 추진했다. 갈수록 현장에서 심판의 볼 판정을 두고 선수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았고, 심판과 선수 사이의 불신 및 갈등이 깊어졌다. 크고 작은 볼 판정을 없애는 원천적인 방법은 결국 ABS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공정성을 높이는 데 목적을 뒀다.
허구연 총재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한 뒤 ABS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당시 허 총재는 “우리가 세계 최초로 도입하는 ABS는 볼 판정에 편차를 없애 양 팀 모두 똑같은 판정을 받도록 하는 데 주목적이 있다. 홈플레이트 도입부부터 마지막까지 다 통과해야 스트라이크가 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팬들의 가장 큰 원성이 심판의 스트라이크존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시도해보려 한다”고 밝혔다.
KBO는 2020년부터 4년간 퓨처스리그에서 ABS 시스템을 가동하며 1군 도입을 준비했다. 시스템 고도화를 통해 볼 판정의 정교함과 일관성 유지를 확인했다. 판정 결과가 심판에게 전달되는 시간을 단축하는 게 과제였는데 이 부분도 보완됐다. 모든 투수, 타자가 동일한 조건에서 일관된 볼 판정을 적용받을 수 있어 심판과 선수 사이에 불필요한 볼 판정 논란을 차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심판들도 심리적인 부담을 덜고 다른 판정에 보다 집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100% 기계적 오류가 없을지 검증되지 않았고, 심판과 선수들 모두 시즌 초반 적응을 위한 시행착오는 각오해야 한다.
로봇 심판과 함께 올해 바로 1군 경기에 적용될 예정이었던 피치 클락은 시험 운영을 먼저 거친다. 지난해 메이저리그는 무주자시 15초, 유주자시 20초 이내로 투수가 공을 던져야 하며 주자 견제 횟수가 2회로 제한된 피치 클락이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 경기당 평균 시간이 전년도 3시간4분에서 2시간40분으로 24분이나 줄었다. 지난 1985년(2시간40분) 이후 가장 짧은 경기 시간으로 3시간30분 이상 걸린 것도 9경기에 불과했다. 2021년에만 해도 3시간30분 이상이 역대 최다 390경기에 달했는데 2년 만에 혁신적인 수준으로 경기가 빨라졌다.
스피드업에 사활을 걸어야 할 KBO도 피치 클락을 준비했지만 현장에서 "준비 시간을 달라"는 요청이 이어졌다. 감독자회의 때 모아진 의견이 단장들의 모임인 실행위원회로 전해졌고, 이사회에서도 피치 클락을 유예하기로 했다. 일단 퓨처스리그에선 전반기부터 바로 적용하지만 1군은 전반기 시범 운영을 거쳐 후반기부터 적용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KBO는 "실제 경기에서 선수들이 피치 클락에 적용에 대해 충분한 적응 시간을 부여해 제도를 도입할 경우 혼란을 최소화하고 매끄러운 경기 진행을 위한 조치"라며 "이에 따라 2월 중 각 구장에 관련 장비 설치를 완료하고, 계시원 교육을 통해 차근히 준비해나갈 방침이다"고 밝혔다.
피치 클락과 함께 연장전 승부치기, 3타자 의무 상대 규정은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특히 3타자 상대를 두고 현장에선 투수들의 수준을 고려할 때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모아졌다. KBO는 "2022년부터 퓨처스리그에서 시행 중인 연장전 승부치기 또한 1군 도입은 현장 의견 등을 종합해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올 시즌 급격한 제도 변화에 따라 각 제도의 시급성을 고려해 이와 같이 결정했다"며 "투수 3타자 상대 제도는 우선적으로 퓨처스리그에만 적용 후 시범 운영 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KBO리그 도입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반면 베이스 크기 확대와 수비 시프트 제한은 올해부터 바로 이뤄진다.
메이저리그는 지난해 홈플레이트를 제외한 1,2,3루 베이스 크기를 정사각형 15인치(38.1cm)에서 18인치(45.7cm)로 확대했다. 베이스간 거리도 1~2루와 2~3루 사이는 4.5인치(11.4cm) 짧아지면서 도루를 하기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그 결과 경기당 평균 도루 시도(1.4개→1.8개), 도루 성공(1.0개→1.4개), 도루 성공률(75.4%→80.2%) 모두 전년보다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2022년 30도루 이상 선수가 6명에 불과했는데 지난해 18명으로 3배가 늘었다.
KBO는 "베이스 크기 확대는 KBO리그 및 퓨처스리그 모두 전반기부터 도입하기로 하고, 2월 중 각 구장에 신규 베이스 설치 완료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선수의 부상 발생 감소, 도루 시도 증대에 따른 보다 박진감 넘치는 플레이를 선보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수비 시프트 제한도 전반기부터 KBO리그와 퓨처스리그에 적용해 보다 공격적인 플레이를 유도하고, 수비 능력 강화를 이끌어낼 것이다"고 기대했다.
메이저리그는 지난해부터 수비 시프트에 제한을 뒀다. 수비 팀에선 내야수 4명 모두 흙으로 된 내야에 있어야 하며 2루 기준으로 양편에 2명씩 자리해야 한다. 세이버메트릭스가 발달하면서 메이저리그 수비 시프트가 날이 갈수록 정교해졌다. 1~2루 사이에 3명, 외야에 4명이 서는 등 포지션 파괴 시프트로 인해 타자들이 크게 불리해졌다. 수비 시프트로 크게 낮아진 인플레이 비율을 높여 다양한 상황을 발생시키고, 시프트에 의존하지 않는 내야수들의 개인 수비 능력 향상에 목적이 있다.
지난해 메이저리그는 인플레이된 타구의 타율을 뜻하는 BABIP(.290→.297), 리그 전체 타율(.243→.248), 경기당 평균 득점(8.6점→9.2점) 모두 상승했다. 특히 시프트에 불리했던 좌타자들의 타율(.239→.249)이 눈에 띄게 올랐다. KBO도 메이저리그 흐름을 따라 수비 시프트 제한을 결정했다.
또한 KBO는 비FA 다년 계약 선수의 명확한 신분 규정에 대한 규정도 신설했다. 원소속팀과 다년 계약을 한 선수는 계약 기간 중 FA 자격을 취득할 수 없도록 하고, 계약이 당해 년도에 종료될 예정인 선수에 한해 FA 자격을 승인하도록 개정했다. 구단은 비FA 선수와 다년 계약 체결시 언제든지 계약 승인 신청을 할 수 있고, 발표 다음 날까지 KBO에 계약서를 제출, KBO는 제출 받은 다음 날 계약 사실을 공시하도록 했다. 기한 내 계약서를 제출하지 않는 경우 규약 제 176조[징계]를 준용, 계약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로 간주해 상벌위원회에서 제재 심의를 하기로 했다.
LG 유격수 오지환으로 인해 생긴 규정이다. 지난해 1월 LG와 6년 124억원 다년 계약에 합의한 오지환은 시즌 후 FA 자격을 신청하면서 논란이 됐다. LG는 1월에 오지환과 2024년부터 적용되는 다년 계약에 합의했지만 KBO에 계약서를 전달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KBO 승인과 공시 과정을 밟지 않아 FA 자격을 유지했다. LG는 2차 드래프트에서 1명의 선수라도 더 보호하기 위해 오지환의 FA 신청을 유도했다. LG가 규약을 어긴 것은 아니지만 꼼수 논란이 일었고, KBO는 제도적으로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허점을 보완했다.
아울러 KBO는 메리트 지급 가능 항목에 한국시리즈 MVP를 추가했다. 현 규약에서 정해 놓은 범위에서 벗어나는 메리트 지급을 제한하는 규정도 추가, 구단이 아닌 감독의 판공비나 개인 사비로 선수에게 보너스를 지급하는 것을 금지하기로 했다. 다만 한국시리즈 MVP에 대한 구단의 별도 시상은 시즌 전 KBO에 운영계획서를 제출한 후 승인이 있을 경우 가능하도록 개정안에 반영했다.
이번 개정안도 지난해 LG가 발단이 됐다. 염경엽 LG 감독이 지난해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한국시리즈 MVP를 제외하고 그 다음 잘한 선수를 내가 뽑아 1000만원 상금을 내 돈으로 주겠다"는 공약을 내걸어 화제가 됐다. 선수단 동기 부여와 격려 차원이었고, 염 감독은 우승 후 박동원과 유영찬에게 각각 1000만원씩, 총 2000만원을 상금으로 지급했다.
훈훈하게 마무리됐지만 메리트 규정에 어긋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고, KBO는 한국시리즈 MVP에 한해서만 보너스를 주며 이마저 시즌 전 운영계획서를 제출하고 승인을 받도록 규정을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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