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스페셜9 제휴] 프롤로그 작년. 야구 열풍이 뜨거웠다. 그 인기에 슬쩍 숟가락을 얹었다. <야구는 구라다>. 모 포털 사이트에 60회 정도 연재됐다. 멈춘 지 수개월. 걸음을 다시 시작한다. 품격은 기대 마시라. 거칠고, 생경한 글이다. 칼럼이라는 이름도 버겁다. 친구와 술자리 넋두리 쯤? 억측과 구라가 대부분이다. 그냥 즐기시라.( 필자의 변 (辨) )
국민 레포츠가 주는 교훈
온 몸이 비비 틀리는 지루한 귀성길. 드디어 반가운 분들을 마주 하셨으리라. 살가운 인사, 정겨운 대화는 잠깐. 혹시나 모포 깔아라, 기계 가져와라, 공장부터 돌리는 충실한 산업의 역군들이 되지는 않으셨는지.
<...구라다>는 아직도 미스터리한 데이터를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사위는 어째서 처월드에만 가면 백전백패가 될까. 99번 투수의 원정 경기 징크스에 맞먹는 질척거림이다. "어떻게 장인 어른께 피박을 씌워..." "장모님이 모처럼 흔드셨는데..." 허약한 멘탈의 결과는 참혹한 패전뿐이다.
전국 방방곡곡, 남녀 노소, 압도적인 동호인 규모를 자랑하는 국민 레포츠. 강호동 이수근의 <우리동네 예체능>에 강력 추천하는 종목이다. 우리의 삶이 녹아 있고, 인생의 희로애락, 위인전에서도 찾을 수 없는 깊은 가르침이 면면에 스며 있다. 그 중에도 챕터 1에 등장하는 진리다. '첫 끗발이 개 끗발이다.'
고매한 야구 얘기에, 그것도 지체 높은 메이저리그 얘기에 '끗발' 운운하는 저렴함. 참 <...구라다>스럽기는 하다. 지금이라도 19세 이하는 절독을 권한다.
데이터의 함정
우리의 귀염둥이 99번이 1회 징크스에 시달린단다. 지난 번 경기는 1회 2점 홈런 한방으로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너무나 아깝다. 99개를 기가 막히게 던졌는데, 단 1개의 실투 때문에 지다니. 사람들은 말한다. '1회병'이 또 도졌어. '도졌어'는 영어로 dodgers라고 쓴단다.
기록을 보자. 그의 올 시즌 28번 선발 등판 중에 1회에 점수를 준 경기가 10번, 안 준 경기가 18번이다. 비율은 35.7%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 올 시즌 28번의 1회 투구에서 28이닝 동안 홈런 7개 포함 32피안타 12볼넷으로 14실점했다. 1회에 평균 0.5점을 실점한 셈이다. 평균자책점(ERA)으로 따지면 5.14. 반면 나머지 이닝에서는 2.65 밖에 되지 않는다. 통계적으로 1회가 2배는 더 위험하다는 게 입증된다.
그러나 이 데이터에는 함정이 있다. 모든 감독이 내는 배팅 오더는 첫번째 공격에서 득점하기 가장 좋은 타순으로 짜여지기 때문이다. 즉 어떤 선발 투수에게도 1회는 가장 힘든 이닝이라는 점이다.
기록이 입증한다. 2013시즌 MLB 통계 중 1회에 가장 적은 실점을 한 팀은 시카고 컵스다. 0.36점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팀은 NL 중부지구 꼴찌다. <…구라다>가 첫 끗발 운운한 게 다 그런 이유다. 1회에만 점수 안주면 뭐하냐, 그 다음에 많이 줘서 지는데…
잘 나가는 다저스는 어떨까. 1회에만 평균 0.48점을 잃었다. 30개 팀 중 16번째다. 귀염둥이 류뚱의 1회 실점률은 앞서 봤다시피 0.5점. 팀 전체 평균과 큰 차이 없다. 따라서 그가 1회에 ‘유독’ 약하다는 명제는 참이 아니다. 즉 1회 징크스라는 말은 구라다.
징크스를 만든 것은 우리의 환상
1회 징크스? 따지고 보면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다. 징크스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99번을 너무 아끼기 때문이다. 예전 박찬호 때도 그렇지 않았는가. 1회 징크스, 왼손타자 징크스, 득점 지원 징크스, 쿠어스필드 징크스….우리의 간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그렇게 표현됐다.
우리끼리 하는 얘기로 끝나면 되는 데 문제는 그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에게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99번이 얼마 전에는 1회부터 93마일을 던졌다. 마치 전력 투구하는 마무리 투수 같았다. 경기 후 "솔직히 잘 몰랐는데 자꾸 1회 얘기들을 많이 하시니까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오늘은 더 열심히 던졌다"고 했다.
선발 투수는 경기 상황에 따라 적절히 힘을 안배해야 한다. 1,2회는 잘 막았는데 5,6회 가서 무너지면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게다가 그는 오랜 기간 몸에 익힌 루틴이 있을 터. 혹시라도 경기 전 몸 푸는 공의 개수를 늘린다든지 하면서 변화를 줬다가는 진짜 징크스의 제물이 될 지도 모른다.
첫 뻑은 돈도 받는다
처월드에서 쌍코피 터지며 깨달음을 얻는다. 처음에 좀 잃더라도 흥분하지 마시라. 타짜는 후반에 강한 법이다. 냉정하게 판을 읽고 흐름을 주도하면 역전의 기회는 반드시 도래한다. 첫 뻑이 효자뻑일 때도 있고, 첫 판 피박이 각성 효과를 불러주기도 하니까 말이다.
어느 베테랑 투수의 고백이다. "대개 사흘 전에 선발 통보를 받으면 전투 의욕이 불탄다. '이번에는 1점도 안주고 완봉으로 이겨 버릴거야.' 그런데 다음 날만 되면 '5회는 넘겨야지' 정도로 마음이 약해진다. 그러다가 당일이 되면 '어휴, 1회는 어떻게 버텨야 할텐데...'라는 걱정으로 무수한 경기를 치렀다." 그러면서 그는 100승을 넘겼다.
1회는 누구에게나 힘들다. 99번만 유독 힘들어 한다는 것은 구라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그게 아니다. 그가 힘든 1회를 넘기고도 결국에는 자기 책임을 다했다는 점이다. 거기에 징크스라는 너울을 씌워서는 안된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사진 = 게티이미지
국민 레포츠가 주는 교훈
온 몸이 비비 틀리는 지루한 귀성길. 드디어 반가운 분들을 마주 하셨으리라. 살가운 인사, 정겨운 대화는 잠깐. 혹시나 모포 깔아라, 기계 가져와라, 공장부터 돌리는 충실한 산업의 역군들이 되지는 않으셨는지.
<...구라다>는 아직도 미스터리한 데이터를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사위는 어째서 처월드에만 가면 백전백패가 될까. 99번 투수의 원정 경기 징크스에 맞먹는 질척거림이다. "어떻게 장인 어른께 피박을 씌워..." "장모님이 모처럼 흔드셨는데..." 허약한 멘탈의 결과는 참혹한 패전뿐이다.
전국 방방곡곡, 남녀 노소, 압도적인 동호인 규모를 자랑하는 국민 레포츠. 강호동 이수근의 <우리동네 예체능>에 강력 추천하는 종목이다. 우리의 삶이 녹아 있고, 인생의 희로애락, 위인전에서도 찾을 수 없는 깊은 가르침이 면면에 스며 있다. 그 중에도 챕터 1에 등장하는 진리다. '첫 끗발이 개 끗발이다.'
고매한 야구 얘기에, 그것도 지체 높은 메이저리그 얘기에 '끗발' 운운하는 저렴함. 참 <...구라다>스럽기는 하다. 지금이라도 19세 이하는 절독을 권한다.
데이터의 함정
우리의 귀염둥이 99번이 1회 징크스에 시달린단다. 지난 번 경기는 1회 2점 홈런 한방으로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너무나 아깝다. 99개를 기가 막히게 던졌는데, 단 1개의 실투 때문에 지다니. 사람들은 말한다. '1회병'이 또 도졌어. '도졌어'는 영어로 dodgers라고 쓴단다.
기록을 보자. 그의 올 시즌 28번 선발 등판 중에 1회에 점수를 준 경기가 10번, 안 준 경기가 18번이다. 비율은 35.7%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 올 시즌 28번의 1회 투구에서 28이닝 동안 홈런 7개 포함 32피안타 12볼넷으로 14실점했다. 1회에 평균 0.5점을 실점한 셈이다. 평균자책점(ERA)으로 따지면 5.14. 반면 나머지 이닝에서는 2.65 밖에 되지 않는다. 통계적으로 1회가 2배는 더 위험하다는 게 입증된다.
그러나 이 데이터에는 함정이 있다. 모든 감독이 내는 배팅 오더는 첫번째 공격에서 득점하기 가장 좋은 타순으로 짜여지기 때문이다. 즉 어떤 선발 투수에게도 1회는 가장 힘든 이닝이라는 점이다.
기록이 입증한다. 2013시즌 MLB 통계 중 1회에 가장 적은 실점을 한 팀은 시카고 컵스다. 0.36점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팀은 NL 중부지구 꼴찌다. <…구라다>가 첫 끗발 운운한 게 다 그런 이유다. 1회에만 점수 안주면 뭐하냐, 그 다음에 많이 줘서 지는데…
잘 나가는 다저스는 어떨까. 1회에만 평균 0.48점을 잃었다. 30개 팀 중 16번째다. 귀염둥이 류뚱의 1회 실점률은 앞서 봤다시피 0.5점. 팀 전체 평균과 큰 차이 없다. 따라서 그가 1회에 ‘유독’ 약하다는 명제는 참이 아니다. 즉 1회 징크스라는 말은 구라다.
징크스를 만든 것은 우리의 환상
1회 징크스? 따지고 보면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다. 징크스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99번을 너무 아끼기 때문이다. 예전 박찬호 때도 그렇지 않았는가. 1회 징크스, 왼손타자 징크스, 득점 지원 징크스, 쿠어스필드 징크스….우리의 간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그렇게 표현됐다.
우리끼리 하는 얘기로 끝나면 되는 데 문제는 그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에게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99번이 얼마 전에는 1회부터 93마일을 던졌다. 마치 전력 투구하는 마무리 투수 같았다. 경기 후 "솔직히 잘 몰랐는데 자꾸 1회 얘기들을 많이 하시니까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오늘은 더 열심히 던졌다"고 했다.
선발 투수는 경기 상황에 따라 적절히 힘을 안배해야 한다. 1,2회는 잘 막았는데 5,6회 가서 무너지면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게다가 그는 오랜 기간 몸에 익힌 루틴이 있을 터. 혹시라도 경기 전 몸 푸는 공의 개수를 늘린다든지 하면서 변화를 줬다가는 진짜 징크스의 제물이 될 지도 모른다.
첫 뻑은 돈도 받는다
처월드에서 쌍코피 터지며 깨달음을 얻는다. 처음에 좀 잃더라도 흥분하지 마시라. 타짜는 후반에 강한 법이다. 냉정하게 판을 읽고 흐름을 주도하면 역전의 기회는 반드시 도래한다. 첫 뻑이 효자뻑일 때도 있고, 첫 판 피박이 각성 효과를 불러주기도 하니까 말이다.
어느 베테랑 투수의 고백이다. "대개 사흘 전에 선발 통보를 받으면 전투 의욕이 불탄다. '이번에는 1점도 안주고 완봉으로 이겨 버릴거야.' 그런데 다음 날만 되면 '5회는 넘겨야지' 정도로 마음이 약해진다. 그러다가 당일이 되면 '어휴, 1회는 어떻게 버텨야 할텐데...'라는 걱정으로 무수한 경기를 치렀다." 그러면서 그는 100승을 넘겼다.
1회는 누구에게나 힘들다. 99번만 유독 힘들어 한다는 것은 구라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그게 아니다. 그가 힘든 1회를 넘기고도 결국에는 자기 책임을 다했다는 점이다. 거기에 징크스라는 너울을 씌워서는 안된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사진 = 게티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