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수원] 이은경 기자=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는 날, ‘국민 우익수’ 이진영(39)이 공식 은퇴식을 치렀다.
프로야구 KT 위즈는 28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홈경기에서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이진영의 은퇴식을 열었다. 빗줄기가 세차게 쏟아지는데도 경기 전 예정된 사인회에는 35번 KT 혹은 LG의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꽤 많이 모여 이진영을 응원했다.
이날 은퇴 기자회견에 나선 이진영은 내내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이진영은 1999년 쌍방울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SK(1999년~2008년), LG(2009~2015년)를 거쳐 2016년 KT로 이적했다. KT 소속이던 2018년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프로 통산 2160경기에 출전해 타율 0.305, 169홈런, 979타점을 기록했다.
이진영은 특히 국가대표로서 인상 깊은 활약을 보여줘 ‘국민 우익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우익수로서 결정적인 호수비를 보여주며 한국을 4강까지 이끌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멤버이기도 하다.
이진영은 현재 일본 프로야구 라쿠텐에서 코치 연수를 받고 있다. 국가대표팀에서는 전력분석원으로 활약 중이다. 다음은 이진영 은퇴 기자회견 일문일답.
은퇴 소감이 남다를 것 같은데.
이런 어려운 자리가 나한테는 낯설다. 20년 동안 정말 열심히 했는데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찾아올지는 생각 못 했던 것 같다. 날씨가 많이 안 좋아서 오늘 게임을 할지 안 할지는 모르지만... 많이 축하해주셨으면 좋겠다.
날씨를 보면서 초조하지 않았나.
계속 기상청 날씨를 보면서 왔다. 구단에서 은퇴식을 성대하게 마련해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데 날씨가 어떻게 될지(웃음). 하늘이 나를 도와줄지 잘 모르겠다.
팬사인회 때 팬들을 보니 느낌이 어땠는지.
선수 생활 마지막 팬사인회였는데 평상시 팬사인회와 좀 달랐다. 울컥한 마음도 있었고 우는 팬도 있어서 나도 울컥했다. 팬 분들께 고맙다.
20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내가 20년 동안 야구를 할 수 있을 거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하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대표팀에서의 영광들, SK 시절에 우승 순간들, LG 시절에 포스트시즌 갔던 기억들, 그리고 KT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배가 되는 것이었다. 창단한 지 얼마 안 됐지만 KT가 좋은 성적 내는 명문 구단이 되도록 도움을 주는 게 목표였다. 그런 게 나에게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내가 많은 일을 했구나 하는 자부심도 생기고, 20년이란 시간이 참 길었다.
오랜만에 유니폼을 입은 느낌은.
솔직히 어제 잠이 잘 안 왔다. 많은 생각이 들어서 잠을 설쳤는데, 막상 유니폼 입고 야구장 나오니까 너무 기분이 좋았고 어제의 근심 걱정이 다 잊혀지고 좋은 추억이 생기는 것 같아서 좋다.
현역 선수를 그만둔 후 시간이 흐른 뒤에 은퇴식을 하게 됐는데.
은퇴 같은 경우는 추측도 많고 오해도 많고 했지만, 제일 중요한 건 내가 선택했고 내가 결정한 것이다. 내가 어릴 때 선배들에게 그 시절에는 양보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선배들의 양보가 있었기 때문에 나도 어릴 때부터 게임에 나갈 수 있게 됐다. 이제 내가 후배들에게 양보를 해야 할 시간이 됐다고 해서 결정한 것이고 거기에 후회는 없다.
선수가 아닌 삶을 살아보니 어떻던가.
항상 바쁘게, 정해진 스케줄 대로만 살다가 자유를 누리는 기분? 제일 바뀐 건 가정에 충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게 제일 크게 바뀌었다. 애기들 학교 픽업도 하고, 가사 일도 하고. 집에서는 그런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연수를 가서 많은 걸 보고 듣고 배운 시간이 됐다.
돌아보니 아쉬웠던 순간이 있다면.
(웃음)그런 시간은 없었던 것 같다. 정말 좋았던 것만 생각하지 안 좋은 걸 오랫동안 기억하는 성격이 못 된다.
어떤 선수로 기억되기를 원하나.
딱히 내가 내세울 성적이…2000안타? 20년 동안 야구를 했으니까 그건 해내고 싶었다. 군산 시골 촌놈이 이름 기억될 수 있게 그런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웃음). 좋은 성적보다는 대표팀이나 팀 내에서 찬스에 정말 강했던, 좋은 흐름에서 뭔가를 해 줄수 있는 기(氣)가 좋은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선수들을 도와주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각나는 은사가 있다면 누구인가?
학교 다닐 때부터 많은 감독님들을 만났다. 그 분들이 안 계셨다면 여기에 있을 수 없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건 김성근 감독님이다. 정말 훈련을 많이 시켜서 체력이 좋아지게 됐고 강인한 선수가 될 수 있었다. 조범현 감독님, 김재박 감독님도 모두 나를 좋아해주셨다. 기억에 남지 않는 분이 없다.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은?
당연히 국민 우익수라는 별명이 제일 마음에 드는데, LG에 가서 안 좋았던 건 입담 선생…(웃음). 하지만 그것도 팬들이 관심 있게 보셨기 때문에 나를 주의 깊게 보시고 지어주신 거니까 생긴 것 아닌가. 은퇴하고 나서는 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좀 좋지는 않았지만…머리가 커서 나온 그런 별명들 같은 것(웃음). 관심 있게 지켜봐 주셔서 별명들이 다 탄생했던 것 같다.
대표팀 전력분석을 하고 있다. 한일전에서의 특별한 노하우가 있다면?
일본전은 실력 외의 부분이 있다. 한국 선수들에게는 또 다른 힘이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일본전에서 그런 힘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데, 나도 무슨 힘인지 모르겠다. 아시아권에서는 한국 야구가 무조건 1등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 의식이 첫 번째다. 많은 경험을 했던, 나를 포함해서 감독님이나 좋은 경험 갖고 있는 분들이 많다. 나는 선수들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잘 해야 한다. 그게 내 임무다.
사진=KT WIZ, 뉴시스
프로야구 KT 위즈는 28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홈경기에서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이진영의 은퇴식을 열었다. 빗줄기가 세차게 쏟아지는데도 경기 전 예정된 사인회에는 35번 KT 혹은 LG의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꽤 많이 모여 이진영을 응원했다.
이날 은퇴 기자회견에 나선 이진영은 내내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이진영은 1999년 쌍방울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SK(1999년~2008년), LG(2009~2015년)를 거쳐 2016년 KT로 이적했다. KT 소속이던 2018년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이진영은 특히 국가대표로서 인상 깊은 활약을 보여줘 ‘국민 우익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우익수로서 결정적인 호수비를 보여주며 한국을 4강까지 이끌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멤버이기도 하다.
이진영은 현재 일본 프로야구 라쿠텐에서 코치 연수를 받고 있다. 국가대표팀에서는 전력분석원으로 활약 중이다. 다음은 이진영 은퇴 기자회견 일문일답.
은퇴 소감이 남다를 것 같은데.
이런 어려운 자리가 나한테는 낯설다. 20년 동안 정말 열심히 했는데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찾아올지는 생각 못 했던 것 같다. 날씨가 많이 안 좋아서 오늘 게임을 할지 안 할지는 모르지만... 많이 축하해주셨으면 좋겠다.
날씨를 보면서 초조하지 않았나.
계속 기상청 날씨를 보면서 왔다. 구단에서 은퇴식을 성대하게 마련해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데 날씨가 어떻게 될지(웃음). 하늘이 나를 도와줄지 잘 모르겠다.
팬사인회 때 팬들을 보니 느낌이 어땠는지.
선수 생활 마지막 팬사인회였는데 평상시 팬사인회와 좀 달랐다. 울컥한 마음도 있었고 우는 팬도 있어서 나도 울컥했다. 팬 분들께 고맙다.
20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내가 20년 동안 야구를 할 수 있을 거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하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대표팀에서의 영광들, SK 시절에 우승 순간들, LG 시절에 포스트시즌 갔던 기억들, 그리고 KT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배가 되는 것이었다. 창단한 지 얼마 안 됐지만 KT가 좋은 성적 내는 명문 구단이 되도록 도움을 주는 게 목표였다. 그런 게 나에게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내가 많은 일을 했구나 하는 자부심도 생기고, 20년이란 시간이 참 길었다.
오랜만에 유니폼을 입은 느낌은.
솔직히 어제 잠이 잘 안 왔다. 많은 생각이 들어서 잠을 설쳤는데, 막상 유니폼 입고 야구장 나오니까 너무 기분이 좋았고 어제의 근심 걱정이 다 잊혀지고 좋은 추억이 생기는 것 같아서 좋다.
현역 선수를 그만둔 후 시간이 흐른 뒤에 은퇴식을 하게 됐는데.
은퇴 같은 경우는 추측도 많고 오해도 많고 했지만, 제일 중요한 건 내가 선택했고 내가 결정한 것이다. 내가 어릴 때 선배들에게 그 시절에는 양보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선배들의 양보가 있었기 때문에 나도 어릴 때부터 게임에 나갈 수 있게 됐다. 이제 내가 후배들에게 양보를 해야 할 시간이 됐다고 해서 결정한 것이고 거기에 후회는 없다.
선수가 아닌 삶을 살아보니 어떻던가.
항상 바쁘게, 정해진 스케줄 대로만 살다가 자유를 누리는 기분? 제일 바뀐 건 가정에 충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게 제일 크게 바뀌었다. 애기들 학교 픽업도 하고, 가사 일도 하고. 집에서는 그런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연수를 가서 많은 걸 보고 듣고 배운 시간이 됐다.
돌아보니 아쉬웠던 순간이 있다면.
(웃음)그런 시간은 없었던 것 같다. 정말 좋았던 것만 생각하지 안 좋은 걸 오랫동안 기억하는 성격이 못 된다.
어떤 선수로 기억되기를 원하나.
딱히 내가 내세울 성적이…2000안타? 20년 동안 야구를 했으니까 그건 해내고 싶었다. 군산 시골 촌놈이 이름 기억될 수 있게 그런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웃음). 좋은 성적보다는 대표팀이나 팀 내에서 찬스에 정말 강했던, 좋은 흐름에서 뭔가를 해 줄수 있는 기(氣)가 좋은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선수들을 도와주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각나는 은사가 있다면 누구인가?
학교 다닐 때부터 많은 감독님들을 만났다. 그 분들이 안 계셨다면 여기에 있을 수 없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건 김성근 감독님이다. 정말 훈련을 많이 시켜서 체력이 좋아지게 됐고 강인한 선수가 될 수 있었다. 조범현 감독님, 김재박 감독님도 모두 나를 좋아해주셨다. 기억에 남지 않는 분이 없다.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은?
당연히 국민 우익수라는 별명이 제일 마음에 드는데, LG에 가서 안 좋았던 건 입담 선생…(웃음). 하지만 그것도 팬들이 관심 있게 보셨기 때문에 나를 주의 깊게 보시고 지어주신 거니까 생긴 것 아닌가. 은퇴하고 나서는 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좀 좋지는 않았지만…머리가 커서 나온 그런 별명들 같은 것(웃음). 관심 있게 지켜봐 주셔서 별명들이 다 탄생했던 것 같다.
대표팀 전력분석을 하고 있다. 한일전에서의 특별한 노하우가 있다면?
일본전은 실력 외의 부분이 있다. 한국 선수들에게는 또 다른 힘이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일본전에서 그런 힘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데, 나도 무슨 힘인지 모르겠다. 아시아권에서는 한국 야구가 무조건 1등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 의식이 첫 번째다. 많은 경험을 했던, 나를 포함해서 감독님이나 좋은 경험 갖고 있는 분들이 많다. 나는 선수들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잘 해야 한다. 그게 내 임무다.
사진=KT WIZ,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