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 김동윤 기자=최근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이 각 팀의 다음 영구결번이 누구인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진 가운데 시애틀 매리너스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MLB.COM에서 시애틀의 소식을 전하는 그렉 존스 기자는 9일(한국 시간) 해당 주제를 다루면서 "3번째 영구결번으로는 랜디 존슨과 스즈키 이치로의 51번이 될 것이 틀림없다. 둘 중 한 사람을 선택할지 두 사람 함께 영구결번할지 정하는 문제만 남았을 뿐"이라고 전했다.
그의 말처럼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존슨과 입성할 이치로는 한 팀의 영구결번을 받을 선수로는 충분하다. 시애틀에서 대부분의 기록과 수상을 달성한 이치로는 확실했던 것에 반해, 존슨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최전성기를 보내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 탓에 시애틀에서도 영구결번을 받을 정도인지 의문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존재했다.
존스 기자 역시 애리조나에서 존슨이 달성한 업적에 대해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존슨은 시애틀에서 10년을 뛰었고, 애리조나(118승 62패)에서보다 시애틀(130승 74패)에서 더 많은 승리를 거뒀다"면서 "또한, 존슨은 시애틀에서 첫 사이영 상을 수상했으며, 시애틀에서의 10년 중 5년이나 올스타에 선정됐다. 시애틀 유니폼을 입고 노히터를 달성하기도 했다"고 얘기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시애틀의 51번 시절 존슨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존슨은 시애틀에서 딱 한 번 51번 유니폼을 입지 않았다
존슨은 1993년 마지막 홈경기에서 51번이 아닌 34번 유니폼을 입고 등판했다. 이유는 그해 은퇴를 선언한 놀란 라이언에 경의를 표하기 위함이었다. 존슨은 "라이언의 번호를 모자에 새기는 것을 고려했지만 아무도 볼 수 없다. 내가 라이언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뜻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고 이유를 밝혔다.
라이언은 존슨을 단순히 존경하는 선배가 아닌 에이스의 길로 인도해준 스승이었다. 1992년까지 구위는 좋았지만, 메이저리그 최다 볼넷왕이었던 존슨은 라이언을 만나 제구력을 가다듬은 뒤에야 비로소 에이스다운 경기력을 뽐낼 수 있었다.
존슨이 시애틀에서 보낸 기간은 10년. 역사에 남기에 그정도면 충분했다.
시애틀 시절 성적
274경기 130승 74패, 1838.1이닝 2162탈삼진, 평균자책점 3.42, fWAR 44.3
시애틀 시절 수상 실적
아메리칸 리그 사이영 상 1회(1995년), 아메리칸 리그 방어율 1위 1회, 아메리칸 리그 탈삼진 1위 4회, 올스타 5회
존슨이 시애틀을 떠난 지 22년이 됐지만 후배 펠릭스 에르난데스만이 그의 아성을 넘어섰다. 10년의 기록만으로 그는 여전히 시애틀 최다선발 출전 2위, 최다이닝 3위, 최다승 3위, 선발 평균자책점 공동 1위(다른 하나는 에르난데스), 최다 탈삼진 2위, 투수 WAR 2위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시애틀의 프랜차이즈 최초의 노히터(vs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1990년 6월 2일) 역시 존슨이었다.
존슨은 시애틀 프랜차이즈를 전성기로 이끈 에이스였다.
1977년 창단한 신생팀 시애틀은 만년 하위권을 전전하다 존슨이 생애 첫 사이영 상을 수상한 1995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이후 1997년 한 번 더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만 특히, 1995년의 상황은 극적이었다. 8월 초, 13경기 차까지 뒤처져 있던 시애틀은 마지막 경기에서 기적적으로 1위를 따라잡았다. 그리고 추가로 치러진 지구 1위 결정전에서 존슨은 선발로 등판해 9이닝 완투승을 거두며 팀을 첫 지구 우승으로 이끈다.
뉴욕 양키스와 만난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도 3차전 선발승, 이틀 뒤 5차전 구원승을 거두며, 꺼져가던 시애틀 프랜차이즈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처럼 존슨이 시애틀에서도 영구결번이 될 자격은 충분했음은 2012년 시애틀 구단이 구단 명예의 전당에 존슨의 이름을 올림으로써 확인시켜줬다.
같은 번호를 공유했던 이치로 역시 이미 데뷔 시즌이던 2001년에 존슨에 대한 경의를 나타냈다. 당시 이치로는 "존슨은 위대한 투수다. 그런 선수가 나보다 앞서 시애틀의 51번을 달고 뛰었기 때문에 나도 늘 이 등번호의 품위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뛰었다. 존슨으로부터 좋은 등번호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당당하게 51번을 입고 뛸 수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MLB.COM에서 시애틀의 소식을 전하는 그렉 존스 기자는 9일(한국 시간) 해당 주제를 다루면서 "3번째 영구결번으로는 랜디 존슨과 스즈키 이치로의 51번이 될 것이 틀림없다. 둘 중 한 사람을 선택할지 두 사람 함께 영구결번할지 정하는 문제만 남았을 뿐"이라고 전했다.
그의 말처럼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존슨과 입성할 이치로는 한 팀의 영구결번을 받을 선수로는 충분하다. 시애틀에서 대부분의 기록과 수상을 달성한 이치로는 확실했던 것에 반해, 존슨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최전성기를 보내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 탓에 시애틀에서도 영구결번을 받을 정도인지 의문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존재했다.
존스 기자 역시 애리조나에서 존슨이 달성한 업적에 대해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존슨은 시애틀에서 10년을 뛰었고, 애리조나(118승 62패)에서보다 시애틀(130승 74패)에서 더 많은 승리를 거뒀다"면서 "또한, 존슨은 시애틀에서 첫 사이영 상을 수상했으며, 시애틀에서의 10년 중 5년이나 올스타에 선정됐다. 시애틀 유니폼을 입고 노히터를 달성하기도 했다"고 얘기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시애틀의 51번 시절 존슨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존슨은 시애틀에서 딱 한 번 51번 유니폼을 입지 않았다
존슨은 1993년 마지막 홈경기에서 51번이 아닌 34번 유니폼을 입고 등판했다. 이유는 그해 은퇴를 선언한 놀란 라이언에 경의를 표하기 위함이었다. 존슨은 "라이언의 번호를 모자에 새기는 것을 고려했지만 아무도 볼 수 없다. 내가 라이언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뜻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고 이유를 밝혔다.
라이언은 존슨을 단순히 존경하는 선배가 아닌 에이스의 길로 인도해준 스승이었다. 1992년까지 구위는 좋았지만, 메이저리그 최다 볼넷왕이었던 존슨은 라이언을 만나 제구력을 가다듬은 뒤에야 비로소 에이스다운 경기력을 뽐낼 수 있었다.
존슨이 시애틀에서 보낸 기간은 10년. 역사에 남기에 그정도면 충분했다.
시애틀 시절 성적
274경기 130승 74패, 1838.1이닝 2162탈삼진, 평균자책점 3.42, fWAR 44.3
시애틀 시절 수상 실적
아메리칸 리그 사이영 상 1회(1995년), 아메리칸 리그 방어율 1위 1회, 아메리칸 리그 탈삼진 1위 4회, 올스타 5회
존슨이 시애틀을 떠난 지 22년이 됐지만 후배 펠릭스 에르난데스만이 그의 아성을 넘어섰다. 10년의 기록만으로 그는 여전히 시애틀 최다선발 출전 2위, 최다이닝 3위, 최다승 3위, 선발 평균자책점 공동 1위(다른 하나는 에르난데스), 최다 탈삼진 2위, 투수 WAR 2위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시애틀의 프랜차이즈 최초의 노히터(vs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1990년 6월 2일) 역시 존슨이었다.
존슨은 시애틀 프랜차이즈를 전성기로 이끈 에이스였다.
1977년 창단한 신생팀 시애틀은 만년 하위권을 전전하다 존슨이 생애 첫 사이영 상을 수상한 1995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이후 1997년 한 번 더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만 특히, 1995년의 상황은 극적이었다. 8월 초, 13경기 차까지 뒤처져 있던 시애틀은 마지막 경기에서 기적적으로 1위를 따라잡았다. 그리고 추가로 치러진 지구 1위 결정전에서 존슨은 선발로 등판해 9이닝 완투승을 거두며 팀을 첫 지구 우승으로 이끈다.
뉴욕 양키스와 만난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도 3차전 선발승, 이틀 뒤 5차전 구원승을 거두며, 꺼져가던 시애틀 프랜차이즈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처럼 존슨이 시애틀에서도 영구결번이 될 자격은 충분했음은 2012년 시애틀 구단이 구단 명예의 전당에 존슨의 이름을 올림으로써 확인시켜줬다.
같은 번호를 공유했던 이치로 역시 이미 데뷔 시즌이던 2001년에 존슨에 대한 경의를 나타냈다. 당시 이치로는 "존슨은 위대한 투수다. 그런 선수가 나보다 앞서 시애틀의 51번을 달고 뛰었기 때문에 나도 늘 이 등번호의 품위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뛰었다. 존슨으로부터 좋은 등번호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당당하게 51번을 입고 뛸 수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