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서 발병 잦은데 '5년 생존율 16.5%'…잡스 앗아간 '침묵의 암살자'
입력 : 2025.05.24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두 달 전 당뇨를 진단받은 환자가 있다. 약 복용을 시작하고 부쩍 속이 더부룩하다며 병원을 찾았다. 소화불량 증상과 함께 진해진 소변 색도 걱정이라 했다. 곧장 복부초음파 검사를 시행해보니 췌장 두부에 암이 생긴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췌장암으로 당뇨가 생기고 소화액 분비가 원활하게 되지 않아 소화장애가 온 것이다. 담즙도 잘 분비되지 않아 소변 색도 짙어졌다. 예상치 못하게 암 진단받게 된 그는 크게 낙담했다.



임상 진료 중 췌장암 가능성이 있다는 인식이 들면 크게 걱정하는 이들을 흔하게 본다. 췌장암이 대표적인 난치암 중 하나로 여겨져서다. 특별한 증상이 없어 발견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고, 발견해도 전이도 빠른데 치료 내성까지 잘 생긴다는 인식이 있다. 췌장암의 5년 생존율은 10%대에 불과하다.



췌장암은 어떤 암일까. 췌장암은 통상 선진국에서 잘 발생하는 암으로 알려져 있다. 이 암의 90% 이상이 외분비세포(췌관의 샘세포)에 생긴 샘암이다. 나머지 10%는 (신경)내분비종양이나 췌장낭종의 악성화 등으로 나타난다.



발병 시 큰 증상이 없는 데다가 다른 암과 달리 조기 검진이 쉽지 않다. 췌장암을 발견했을 때 상당히 진행돼 있을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환자 예후도 좋지 않은 편이다. 과거에 비해 항암제의 효과가 개선됐지만 다른 암에 비해 췌장암 항암제는 효과가 작으며 종류도 많지 않다. 이 때문에 췌장암 환자들의 5년 생존율은 16.5%에 그치며 국내 10대 암 중 가장 낮은 생존율을 보인다.



국내에서도 발병 순위를 보면 7위인 흔한 암이며, 암 사망 원인 중에선 4위를 차지한다. 여성 암 환자 사망률로는 3번째에 달한다. 전 세계적으로는 사망률이 7번째로 높은 암이지만 향후 그 순위가 점차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20년 이내에 2위로 사망률이 높은 암이 될 것이라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췌장암 발생에는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함께 관여한다. 유전적 요인 중 K-Ras(케이라스) 유전자 이상이 가장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며 90% 이상의 췌장암에서 발견된다. 환경적 요인으로는 흡연, 비만, 당뇨, 만성 췌장염, 가족성 췌장암, 나이, 음주, 식이, 화학물질 등이 영향을 준다. 이중 유전성 췌장염은 50배, 가족력은 4~32배, 만성 췌장염은 2~6배, 당뇨병은 2배, 흡연이 2~5배, 비만이 2배가량 암 발생률을 더 높인다.



췌장암을 예방하기 위해선 일상생활 중 위험 요인들을 피하는 것이 최선이다. 특히 금연이 중요하다. 흡연은 췌장암뿐만 아니라 모든 암의 위험 요인이 된다. 적정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고지방, 고칼로리 음식을 피하는 것도 필요하다. 식이섬유 섭취를 늘리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당뇨나 만성 췌장염이 있는 경우 꾸준한 관리를 통해 위험 요소를 낮추어야 한다.



췌장암 가족력이 있으면 조기 검진이 요구된다. 특히 직계 가족 중 50세 이전 췌장암 진단받은 이가 있거나 두 명 이상의 췌장암 진단을 받은 가족이 있으면 조기 검진이 더욱 중요하다. 만성 췌장염이나 당뇨가 있으면 일상생활 중 관리가 필요하다. 갑작스러운 폐쇄성 황달이나 체중 감소가 있는 경우, 위내시경상 이상소견이 없는 모호한 상복부 통증이나 설명이 되지 않는 등 통증,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췌장염, 새로 진단된 당뇨나 갑자기 잘 조절되지 않는 당뇨는 관련 전문의와 상담이 필요하다.



췌장암 진단은 혈액검사, 혈청 종양표지자검사, 초음파검사, 복부 전산화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내시경적 역행성 담췌관조영술(ERCP), 내시경 초음파 검사(EUS), 양성자방출단층촬영(PET), 복강경검사, 조직검사 등으로 이뤄진다. 혈액검사나 혈청 종양표지자검사로 췌장암을 진단할 순 없지만, 암이 꽤 진행했거나 담도 폐쇄 등의 증상이 있을 때는 췌장암을 의심해 볼 수 있다. 복부초음파는 간단하면서 비침습적인 검사로 췌장암 진단에 매우 유용하지만 췌장이란 장기가 후복강에 있어 환자의 상태나 검사자의 능력에 따라 정확도가 크게 좌우될 수 있다. 복부 CT는 가장 정확하게 췌장암을 진단할 수 있지만 비용, 방사선 노출 등을 고려하여 좀 더 꼭 필요한 경우에 시행하는 것이 좋다.



췌장암의 병기는 다른 암들과 다르게 원격 전이 여부만 중요한 게 아니라 주변 혈관과의 침범 여부가 중요하다. 따라서 병기를 1기인지 4기인지 등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절제가능형 △경계성 절제가능형 △국소진행형 △전이형 등으로 나눈다.



췌장암 치료는 암의 크기와 위치, 병기, 환자의 나이와 건강 상태 등을 두루 고려하여 수술과 항암 화학요법, 방사선치료 중 선택하거나 병합해 치료한다. 최근엔 항암치료 후 반응 평가 통해 수술을 시행하기도 한다. 폐쇄성 황달 등 증상 관련 조절을 위해 완화적 시술이나 치료하기도 한다.



췌장만 전문적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명확하게 췌장암 위험군을 선정하고 검사를 권고하는 게 쉽지 않다. 일반인들이 일부 증상만으로 췌장암을 스스로 걱정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췌장암을 유발할 수 있는 나쁜 습관부터 고쳐나가며 불편한 증상이 있으면 꼭 전문가와 상담을 받아보기를 권장한다.



머니투데이

외부 기고자 - 박재우 부천 서울조은내과의원 대표원장(전 분당서울대병원 진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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