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잠실, 이후광 기자]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이승엽 감독은 왜 아무 관련도 인연도 없는 오재원이 저지른 죄에 고개를 숙였을까.
이승엽 감독은 지난 2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NC 다이노스와의 시즌 3번째 맞대결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나 야구계를 충격에 빠트린 오재원 파문과 관련해 "선배들이 잘못한 것"이라며 사과했다.
KBO(한국야구위원회)에 따르면 오재원의 전 소속팀이었던 두산은 소속 선수 8명이 과거 수면제를 대리 처방해 오재원에게 건넨 사실을 이달 초 KBO 클린베이스볼센터에 신고했다.
두산 관계자는 OSEN에 “오재원 사태가 터진 뒤 구단 자체적으로 1, 2군을 통틀어 대리 처방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파악한 내용을 절차에 따라 4월 초 KBO 클린베이스볼센터에 신고했고, 수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현재 구단이 할 수 있는 조치는 모두 마친 상태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해당 선수들은 현재 경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오재원은 현역으로 뛰던 2021년부터 후배들을 협박해 졸피뎀 성분의 수면유도제인 스틸녹스정 대리 처방을 강요했다. 자진 신고한 8명의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당시 오재원이 주로 성품이 순하고 아직 빛을 보지 못한 1.5~2군급 선수들만 골라 ‘불법 행위’를 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오재원은 수년간 후배들에게 대리처방을 강요하며 폭행과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자진 신고한 A선수는 “되게 무서운 선배였어요. 팀에서 입지가 높은 선배님이시고 코치님들도 함부로 못 하는 선수여서 괜히 밉보였다가 제 선수 생활에 타격이 올까 봐…”라고 밝혔다.
오재원은 지난 2022시즌을 끝으로 성대한 은퇴식과 함께 유니폼을 벗었고, 이승엽 감독은 2023시즌 두산 지휘봉을 잡았다. 과거 오재원을 주전 2루수로 기용하고, 캡틴으로 임명한 지도자는 김태형 롯데 자이언츠 감독이지만, 이 감독은 과거와 관계없이 두산을 대표해 해당 파문에 고개를 숙였다.
이 감독은 23일 취재진에 “야구계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서 안타깝다. 구단에게 들은 바로는 자진 신고했고 규정과 원칙에 따라 조치를 취한다고 하더라”라며 “아직 8명의 선수에 대해 일일이 듣지 못했지만 우리 선수들이 그 문제에 연루돼 있다는 게 안타깝다. 빨리 제자리로 돌아오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팀 분위기를 어떻게 수습했냐는 질문에는 “수석코치가 미팅을 했다”라며 “우리는 경기를 해야 한다. 벌어진 일은 벌어진 거고, 구단 나름대로 수습을 하실 것이다. 우리는 팬들이 경기장에 오시기 때문에 좋은 경기를 보여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쪽은 그쪽이고 이쪽은 이쪽이다. 경기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도록 해야 한다”라고 힘줘 말했다.
사령탑의 사과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감독 이전에 야구계 선배인 이 감독은 “모든 게 야구 선배들의 잘못이다. 선배가 잘못한 것이다. 후배들이 이런 일에 연루됐다는 게 나 역시 야구 선배이기 때문에 안타깝다”라며 “선배로서 후배들 볼 면목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다”라고 재차 고개를 숙였다.
오재원 대리처방 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건 2022년 10월 오재원의 은퇴식까지 열어준 두산이다. 자진 신고한 8명이 설령 1군 즉시전력감이 아닐지라도 경찰 조사가 끝날 때까지 1, 2군을 통틀어 정상 전력 가동이 어려워진 상황. 이들 가운데 1군 콜업을 준비 중인 유망주가 있을 수도 있고, 1군에서 주전 체력 안배를 돕는 백업이 포함됐을 수도 있다. 경찰 조사에 이어 신분이 피의자로 바뀐다면 엔트리 제외, 징계 등 후폭풍이 불가피하다.
두산 관계자는 “피의자 신분이 확인되면 곧바로 엔트리에서 해당 선수들을 제외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전했고, KBO는 향후 경찰의 수사를 지켜본 뒤 징계 등 대응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김연실 부장검사)는 지난달 17일 오재원을 마약류관리법 위반(향정), 특정범죄 가중처벌 위반(보복협박 등), 주민등록법·건강보험법 위반, 특수재물손괴,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오재원은 지난 2022년 11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총 11차례에 걸쳐 필로폰을 투약하고, 지난해 4월 지인의 아파트 복도 소화전에 필로폰 약 0.4g을 보관한 혐의를 받는다.
또 지난해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총 89차례에 걸쳐 지인 9명으로부터 향정신성의약품인 스틸녹스정 2242정을 수수하고, 지인 명의를 도용해 스틸녹스정 20정을 매수한 혐의도 있다.
이와 더불어 지인이 자신의 마약류 투약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려 하자 망치로 지인의 휴대전화를 부수고 협박하거나 멱살을 잡는 혐의도 적용됐다.
1985년생인 오재원은 야탑고-경희대를 나와 2003년 신인드래프트에서 두산 2차 9라운드 72순위로 프로에 입단했다. 지명 순위는 낮았지만 특유의 야구 센스와 악바리 근성을 앞세워 점차 존재감을 드러냈고, 2015년 김태형 감독 부임과 함께 팀 내 리더를 맡아 왕조 구축을 이끌었다.
오재원은 두산의 세 차례 우승(2015~2016, 2019)에 기여했는데 그 중 2015년과 2019년 우승 당시 주장으로 팀을 이끌며 ‘캡틴’의 리더십을 뽐냈던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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