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골'이 안겨주는 축구의 묘미... 포항의 선두 비결이기도 하다
입력 : 2024.04.25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타뉴스 | 박정욱 기자]
포항 정재희가 지난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2024 K리그1 원정경기에서 후반 48분 4-2 승리를 확인하는 팀의 네 번째 골을 넣은 뒤 포효하고 있다. 정재희는 올시즌 후반 추가시간에만 세 차례 극장골을 포함해 4골을 몰아넣었다. /사진=뉴시스
포항 정재희가 지난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2024 K리그1 원정경기에서 후반 48분 4-2 승리를 확인하는 팀의 네 번째 골을 넣은 뒤 포효하고 있다. 정재희는 올시즌 후반 추가시간에만 세 차례 극장골을 포함해 4골을 몰아넣었다. /사진=뉴시스
지난 17일 아랍에미리트(UAE)와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아시안컵 조별리그 B조 1차전에서 후반 추가시간 헤더 극장골을 터뜨린 한국 올림픽대표팀의 공격수 이영준. /사진=대한축구협회
지난 17일 아랍에미리트(UAE)와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아시안컵 조별리그 B조 1차전에서 후반 추가시간 헤더 극장골을 터뜨린 한국 올림픽대표팀의 공격수 이영준. /사진=대한축구협회
1.
축구에서 '극장골'은 그 어떤 득점보다 짜릿한 승부의 묘미를 안겨준다. 야구에서 9회말이나 연장전에서 터진 '끝내기 홈런'과 같다. 극장골 덕분에 승리를 안은 팀은 승점 3을 챙기면서 순위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고,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는 기쁨을 얻는다. 또 패배의 수렁에 빠질 위기에서 헤어나 무승부로 승점 1을 나눠가지거나 또 다른 희망을 키워나갈 수도 있다. 반대로 극장골을 허용해 다 잡은 승리를 놓치거나 패전을 안게 되면 그 슬픔과 상실감은 훨씬 커진다.

'극장골'은 '극장'과 '골'(득점)의 합성어다. 축구 경기에서 종료 직전이나 추가 시간에 터져나와 막판에 승부를 뒤집거나 극적인 승부를 연출하는 골을 이른다. 말 그대로 끝부분에서 결말이나 반전을 던져주는 연극이나 영화, 드라마처럼 극적으로 경기 막판에 터지는 골이다. 영어로는 'Last-minute goal'이나 'Last-gasp goal'이라고 한다.

2.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한국 올림픽 축구대표팀이 카타르에서 열리고 있는 2024 파리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을 겸한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아시안컵에서 3전 전승으로 조별리그 B조 1위를 차지해 8강 토너먼트에 진출한 것에도 '극장골'이 제대로 한몫을 했다.

한국은 지난 17일(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조별리그 B조 1차전에서 두 차례의 골이 오프사이드로 취소되는 등 고전하다가 후반 추가 시간 12분 가운데 4분을 흘려보낸 후반 49분 이태석(FC서울)의 오른쪽 코너킥에 이은 이영준(김천 상무)의 헤더 극장골로 1-0 승리를 안았다. 첫 경기에서 승리와 함께 승점 3을 챙기면서 2차전 중국, 3차전 일본과 대결에서 한층 여유를 얻게 됐고, 결과적으로 3연승으로 이어졌다. UAE전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무승부로 끝나 승점 1에 그쳤다면 중국과 2차전 승리로 일찌감치 8강 진출을 확정하는 일은 없었을 테고, 일본과 3차전에서 '로테이션'의 여유는커녕 아주 강한 압박감을 안고 싸워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을 것이다.

지난 22일 가진 일본과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아시안컵 조별리그 B조 마지막 3차전에서 김민우(맨 왼쪽, 19번)의 헤더 결승골에 기뻐하는 한국 올림픽 대표팀. /사진=뉴시스
지난 22일 가진 일본과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아시안컵 조별리그 B조 마지막 3차전에서 김민우(맨 왼쪽, 19번)의 헤더 결승골에 기뻐하는 한국 올림픽 대표팀. /사진=뉴시스
한국 올림픽대표팀은 지난 22일 일본과 조별리그 B조 3차전에서도 이태석의 코너킥에 이은 김민우(뒤셀도르프)의 헤더 결승골로 1-0으로 이겨 조 1위를 확정했다. 김민우의 헤더골은 후반 30분에 터져나왔다. 이 경우에는 '극장골'이라는 표현을 흔히 쓰지 않는다. 승리를 부른 '결승골'이 더 적확하다. 김민우의 헤더골 뒤에도 15분 이상의 시간이 남아 있어 상대도 충분한 반격의 기회를 노릴 수 있었다.

3.
바이어 레버쿠젠은 2023~2024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구단 창단 120년 만에 사상 첫 우승의 기쁨을 안은 데 만족하지 않고 무패 우승과 함께 '미니 트레블(3관왕)'을 향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레버쿠젠은 분데스리가에서 25승 5무(승점 80)로 30경기째 무패 행진을 하며 사상 첫 '무패 우승'에 도전하고 있다. 또 결승에 오른 독일축구협회(DFB) 포칼(5승)은 물론 4강에 진출한 2023-2024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8승 2무)에서도 한 번도 패하지 않고 45경기째 무패(38승 7무)를 달리고 있다. 앞으로 분데스리가 남은 4경기와 유로파리그 3경기(준결승 2경기+결승 1경기), DFB포칼 결승전까지 모두 8경기에서 패전 없이 3관왕을 달성하면 유례없는 '무패 시즌'으로 대미를 장식할 수 있다.

레버쿠젠이 45경기째 무패를 이어가는 데도 '극장골'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19일 웨스트햄과 2023-2024 유럽축구연맹(UEA) 유로파리그 8강 원정 2차전에서 0-1로 뒤지던 후반 44분 극장골을 터뜨린 레버쿠젠의 제레미 프림퐁. 레버쿠젠은 이날 1-1 무승부로 경기를 마치면서 44경기 무패(38승 6무)의 유럽 5대 빅리그 최장 무패 신기록을 세웠다. /AFPBBNews=뉴스1
지난 19일 웨스트햄과 2023-2024 유럽축구연맹(UEA) 유로파리그 8강 원정 2차전에서 0-1로 뒤지던 후반 44분 극장골을 터뜨린 레버쿠젠의 제레미 프림퐁. 레버쿠젠은 이날 1-1 무승부로 경기를 마치면서 44경기 무패(38승 6무)의 유럽 5대 빅리그 최장 무패 신기록을 세웠다. /AFPBBNews=뉴스1
프림퐁(왼쪽에서 세번째)의 동점골에 기뻐하는 레버쿠젠 선수들. /AFPBBNews=뉴스1
프림퐁(왼쪽에서 세번째)의 동점골에 기뻐하는 레버쿠젠 선수들. /AFPBBNews=뉴스1
레버쿠젠은 지난 15일 베르더 브레멘과 분데스리가 29라운드 홈경기에서 5-0 대승을 거두고 구단 사상 첫 우승을 조기 확정한 뒤 지난 19일 가진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잉글랜드)와 유로파리그 8강 원정 2차전에서 0-1로 뒤지던 후반 44분 제레미 프림퐁의 '극장골'로 1-1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다. 레버쿠젠은 8강 1차전에서 2-0으로 이긴 것을 더해 합계 점수 3-1로 앞서 4강에 진출했고, 44경기 무패(38승 6무) 행진을 이어가 유럽 5대 빅리그 최장 무패 신기록도 작성했다. 이탈리아 명문클럽 유벤투스가 2011년 5월부터 2012년 5월까지 기록한 43경기 무패(27승 16무)를 뛰어넘었다.

이어 지난 22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분데스리가 30라운드 원정경기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0-1로 뒤져 패색이 짙던 후반 52분 수비수 요시프 스타니시치의 말 그대로 '극적인' 헤더 극장골이 터져나와 무패 기록을 45경기로 늘려갔다. 사비 알론소 레버쿠젠 감독은 두 경기 연속 극장골에 환호하며 그라운드를 껑충껑충 뛰어다녔다.

지난 22일 도르트문트와 독일 분데스리가 30라운드 원정경기에서 0-1로 뒤지던 후반 52분 극적인 동점골을 터트린 뒤 포효하는 레베쿠젠의 요시프 스타니시치(가운데). /AFP=뉴스1
지난 22일 도르트문트와 독일 분데스리가 30라운드 원정경기에서 0-1로 뒤지던 후반 52분 극적인 동점골을 터트린 뒤 포효하는 레베쿠젠의 요시프 스타니시치(가운데). /AFP=뉴스1
레버쿠젠은 분데스리가에서 슈투트가르트(4월 28일 오전 1시 30분 홈경기), 프랑크푸르트(5월 6일 오전 0시 30분 원정경기), 보훔(5월 13일 오전 2시 30분 원정경기), 아우크스부르크(5월 18일 오후 10시 30분 홈경기)와 31~34라운드 4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또 AS로마(이탈리아)와 유로파리그 준결승(5월 3일 오전 4시 원정 1차전, 5월 10일 오전 4시 홈 2차전)에서 승리하면 아탈란타(이탈리아)-마르세유(프랑스)의 준결승 승자와 오는 5월 23일 오전 4시 아일랜드 더블린 아레나에서 결승전을 치른다. 카이저슬라우테른과 DFB 포칼 결승전은 5월 26일 오전 3시 베를린 올림픽스타디움에서 레버쿠젠의 시즌 마지막 경기로 벌어진다.

박태하 포항스틸러스 감독.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박태하 포항스틸러스 감독.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4.
포항 스틸러스는 박태하 감독 체제로 새로 맞은 2024시즌에 주력 선수의 유출에 따른 전력 약화의 우려를 떨쳐내고 단독 선두로 나서있다. 지난 3월 1일 올시즌 공식 개막전으로 치른 '디펜딩 챔피언' 울산 HD와 '동해안 더비'에서 전반 43분 아스프로의 다이렉트 퇴장에 따른 수적 열세를 안고 0-1로 패한 뒤로는 7경기에서 5승 2무로 무패 행진을 달리며 승점 17(5승 2무 1패)을 쌓아 2위 김천(승점 16, 5승 1무 2패)과 3위 울산(승점 14, 4승 2무 1패)에 앞서 있다.

포항의 선두 도약에도 '극장골'이 눈부셨다. 포항은 후반 45분 이후 추가 시간에만 무려 5골을 터뜨려 K리그 전체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었다. 팀 전체 13득점의 38.5%에 해당한다. 극장골도 그만큼 많이 쏟아졌다. 후반 추가 시간에 포항 다음으로 많은 골을 넣은 팀은 수원 FC(3골)다. 그 뒤로 전북 현대와 광주FC의 2골. FC서울과 대전 하나시티즌, 대구FC는 후반 추가 시간에 한 골도 기록하지 못했다.

포항은 지난달 17일 광주와 3라운 홈경기에서 0-0으로 팽팽하던 후반 48분 정재희의 극장골로 1-0으로 이겨 2연승을 달렸고, 지난달 30일 제주 유나이티드와 4라운드 원정경기에서도 0-0으로 맞선 후반 47분 정재희의 극장골에 이어 후반 51분 백성동의 추가골까지 터져 2-0 승리를 안아 3연승했다. 극장골에 극장골이 더해진 모양새였다. 지난 7일 대전과 6라운드 원정경기에서도 0-1로 뒤진 후반 36분 김인성의 동점골에 이어 후반 47분 정재희의 역전 극장골로 2-1 역전승을 수확했다.

지난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2024 K리그1 원정경기에서 후반 48분 팀의 네 번째 골을 넣은 포항 정재희가 포효하고 있다. 포항이 4-2로 역전승했다. /사진=뉴시스
지난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2024 K리그1 원정경기에서 후반 48분 팀의 네 번째 골을 넣은 포항 정재희가 포효하고 있다. 포항이 4-2로 역전승했다. /사진=뉴시스
지난 13일 서울과 7라운드 원정경기에서는 1-2로 뒤진 후반 27분 이호재의 동점골과 후반 31분 박찬용의 역전골에 이어 후반 48분 정재희의 또 한 번 추가 시간에 터진 '극장골' 아닌 쐐기골로 4-2 역전승을 완성했다. 후반 추가 시간에 세 차례의 극장골을 비롯해 혼자 4골을 폭발한 정재희는 '극장골의 사나이' 또는 '추가 시간의 사나이'로 불릴만 하다. 후반 추가 시간은 '(정)재희 타임'이다.

포항의 극장골 퍼레이드는 경기 막바지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는 강한 조직력과 빠른 공격 전환, 적절한 교체 선수의 활용 등 벤치의 전술 운용이 어우러진 결과다. 포항의 경기는 후반 추가 시간까지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골을 기다리는 관전의 재미를 팬들에게 선사한다. 포항에 새로 장착된 '박태하 축구'의 묘미이기도 하다.

2024시즌 첫 '이달의 감독상'을 수상한 박태하 포항스틸러스 감독.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2024시즌 첫 '이달의 감독상'을 수상한 박태하 포항스틸러스 감독.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박정욱 기자 star@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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