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뉴스 |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한국 축구에 월드컵과 올림픽은 남의 나라 얘기였다. 월드컵 본선 진출은 1954년, 올림픽 본선 진출은 1964년이 마지막이었다.
그랬던 한국 축구는 1984년 LA 올림픽에 큰 기대를 걸었다. 1년 전인 1983년 출범한 프로축구 리그인 슈퍼리그(K리그 전신)를 통해 다져진 경기력을 선수들이 지역 예선전에서 유감없이 발휘할 것으로 전망했다. 더욱이 당시 올림픽 팀은 1983년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한국을 4강으로 이끈 박종환 감독(1936~2023)이 지휘하고 있어 올림픽 본선 진출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하지만 한국은 아시아 예선 4강전에서 사우디라이비아에 격전 끝에 4-5로 패했고 3·4위 결정전에서도 이라크에 0-1로 무릎을 꿇어 올림픽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 사우디, 이라크, 카타르가 LA 올림픽 축구 본선에 아시아 대표로 출전했다.
이 예선전은 아시아 축구의 판도가 중동으로 옮겨가는 신호탄이 됐다. 한국에서는 사우디와 경기에서 나온 심판의 편파판정에 대해 '오일 달러 축구'가 아시아를 지배하게 됐다는 말이 널리 퍼졌다. 하지만 올림픽 팀을 이끌었던 박종환 감독은 사우디전 이후 선수들의 휴식 차원에서 자유시간을 너무 많이 준 게 패인이었다고 아쉬움을 삼켰다.
이후 한국 축구는 안방에서 개최한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2021년 펼쳐진 2020 도쿄 올림픽까지 9회 연속으로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았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홍명보 감독의 지휘 아래 사상 처음으로 동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축구 팬들의 관심은 와일드 카드 선수로 누가 뽑힐지와 한국 팀의 올림픽 본선 성적에만 쓸렸다. 올림픽 본선 진출은 '떼 놓은 당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2024년 한국 축구는 40년 전 1984년으로 회귀했다. 황선홍(56) 감독이 이끄는 한국 23세 이하 대표팀이 26일(한국시간) 펼쳐진 AFC(아시아축구연맹) U-23 아시안컵 대회 8강전에서 복병 인도네시아에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10-11로 패했다.
한국은 경기 초반 인도네시아의 적극적인 플레이에 압도당하면서 선제골을 내줬고 전반 막판 동점골을 넣었지만 곧바로 실점해 전반전을 1-2로 마쳤다. 황선홍 감독은 후반전에 골잡이 이영준(21·김천상무)을 투입해 승부수를 띄웠지만 이영준이 퇴장 당하면서 어려운 경기를 펼쳐야 했다. 후반 막판 정상빈(22·미네소타유나이티드)의 극적인 동점골이 터졌지만 결국 승부차기에서 패했다.
한국 축구가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했던 40년 전으로 퇴보한 이유 가운데 대한축구협회의 안일한 접근법을 빼놓을 수 없다. 협회는 지난 1월 카타르 아시안컵 대표팀 내분 사태 이후 위르겐 클린스만(60) 감독을 경질하고 지난 3월 2026 북중미 월드컵 2차 예선 태국과 2연전의 임시 감독으로 올림픽 예선을 준비해야 하는 황선홍을 선임했다. 어쩌면 이 결정의 저류에는 올림픽 본선행을 당연시하고 예선전은 그저 본선으로 가기 위한 통과의례라는 생각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예기치 않게 '투 잡'을 뛰게 된 황 감독은 분위기가 뒤숭숭했던 대표팀을 되살려 놓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작 그의 본업인 23세 이하 팀에서는 올림픽 본선 진출을 이루지 못했다. 여기에는 몇몇 해외파 선수들의 차출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제대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해 올림픽 팀의 수비가 헐거워 진 면도 뼈아팠다. 특히 인도네시아와 경기에서 여러 차례 수비 진영에서 실수가 나와 상대에게 쉽게 득점을 허용한 점에서 그랬다.
인도네시아 팀은 한국인 감독 신태용(54)이 이끌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한국 축구를 잘 아는 신 감독은 체격조건이 좋아진 인도네시아 선수들로 하여금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도록 주문해 한국 선수들을 당황시켰다.
이처럼 한국 축구의 충격적인 올림픽 예선 탈락에는 '신태용 매직'이 일정 부분 작용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올림픽 예선을 너무 쉽게 생각한 대한축구협회의 안일한 행정에 있었다. 40년 전 한국 축구의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를 '오일 달러 축구'의 위력에서만 찾을 수 없었던 것처럼 2024년 파리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의 주요인을 '신태용 매직'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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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홈 감독. /사진=뉴시스 |
한국 U-23 대표팀 선수들이 26일(한국시간) 인도네시아와 8강전 패배에 아쉬워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그랬던 한국 축구는 1984년 LA 올림픽에 큰 기대를 걸었다. 1년 전인 1983년 출범한 프로축구 리그인 슈퍼리그(K리그 전신)를 통해 다져진 경기력을 선수들이 지역 예선전에서 유감없이 발휘할 것으로 전망했다. 더욱이 당시 올림픽 팀은 1983년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한국을 4강으로 이끈 박종환 감독(1936~2023)이 지휘하고 있어 올림픽 본선 진출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하지만 한국은 아시아 예선 4강전에서 사우디라이비아에 격전 끝에 4-5로 패했고 3·4위 결정전에서도 이라크에 0-1로 무릎을 꿇어 올림픽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 사우디, 이라크, 카타르가 LA 올림픽 축구 본선에 아시아 대표로 출전했다.
이 예선전은 아시아 축구의 판도가 중동으로 옮겨가는 신호탄이 됐다. 한국에서는 사우디와 경기에서 나온 심판의 편파판정에 대해 '오일 달러 축구'가 아시아를 지배하게 됐다는 말이 널리 퍼졌다. 하지만 올림픽 팀을 이끌었던 박종환 감독은 사우디전 이후 선수들의 휴식 차원에서 자유시간을 너무 많이 준 게 패인이었다고 아쉬움을 삼켰다.
이후 한국 축구는 안방에서 개최한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2021년 펼쳐진 2020 도쿄 올림픽까지 9회 연속으로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았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홍명보 감독의 지휘 아래 사상 처음으로 동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축구 팬들의 관심은 와일드 카드 선수로 누가 뽑힐지와 한국 팀의 올림픽 본선 성적에만 쓸렸다. 올림픽 본선 진출은 '떼 놓은 당상'이었기 때문이다.
이영준(왼쪽)이 26일(한국시간) 인도네시아전에서 퇴장 당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한국은 경기 초반 인도네시아의 적극적인 플레이에 압도당하면서 선제골을 내줬고 전반 막판 동점골을 넣었지만 곧바로 실점해 전반전을 1-2로 마쳤다. 황선홍 감독은 후반전에 골잡이 이영준(21·김천상무)을 투입해 승부수를 띄웠지만 이영준이 퇴장 당하면서 어려운 경기를 펼쳐야 했다. 후반 막판 정상빈(22·미네소타유나이티드)의 극적인 동점골이 터졌지만 결국 승부차기에서 패했다.
한국 축구가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했던 40년 전으로 퇴보한 이유 가운데 대한축구협회의 안일한 접근법을 빼놓을 수 없다. 협회는 지난 1월 카타르 아시안컵 대표팀 내분 사태 이후 위르겐 클린스만(60) 감독을 경질하고 지난 3월 2026 북중미 월드컵 2차 예선 태국과 2연전의 임시 감독으로 올림픽 예선을 준비해야 하는 황선홍을 선임했다. 어쩌면 이 결정의 저류에는 올림픽 본선행을 당연시하고 예선전은 그저 본선으로 가기 위한 통과의례라는 생각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예기치 않게 '투 잡'을 뛰게 된 황 감독은 분위기가 뒤숭숭했던 대표팀을 되살려 놓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작 그의 본업인 23세 이하 팀에서는 올림픽 본선 진출을 이루지 못했다. 여기에는 몇몇 해외파 선수들의 차출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제대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해 올림픽 팀의 수비가 헐거워 진 면도 뼈아팠다. 특히 인도네시아와 경기에서 여러 차례 수비 진영에서 실수가 나와 상대에게 쉽게 득점을 허용한 점에서 그랬다.
신태용 인도네시아 감독. /사진=뉴시스 |
이처럼 한국 축구의 충격적인 올림픽 예선 탈락에는 '신태용 매직'이 일정 부분 작용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올림픽 예선을 너무 쉽게 생각한 대한축구협회의 안일한 행정에 있었다. 40년 전 한국 축구의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를 '오일 달러 축구'의 위력에서만 찾을 수 없었던 것처럼 2024년 파리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의 주요인을 '신태용 매직'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이종성 교수. |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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