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 20분 잘 가세요' 박태하 감독도 쭈뼛한 포항 팬들의 무한 믿음...결과는 해피엔딩[오!쎈 포항]
입력 : 2024.07.01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OSEN=포항, 고성환 기자] 포항스틸러스 팬들이 승리를 확신하는 데 필요한 시간. 단 20분이면 충분했다. 

포항스틸러스는 30일 오후 6시 포항스틸야드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1 2024 20라운드에서 울산HD를 2-1로 제압했다.

이로써 포항은 10승 7무 3패(승점 37)로 3위 자리를 지켰다. 이제 2위 울산(승점 38)과는 단 1점 차. 선두권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울산은 포항을 잡아내면서 김천(승점 39)을 끌어내리고 다시 1위에 오르겠다는 각오였지만, 원정에서 고개를 떨궜다.

K리그1을 대표하는 창과 방패의 맞대결이기도 했다. 이날 전까지(19라운드 기준) 포항은 18실점으로 리그 최다 실점, 울산은 37득점으로 리그 최다 득점을 자랑했다. 이번에는 포항이 자랑하는 '짠물 수비'가 울산의 공세를 잘 막아내며 승자가 됐다.

이날 포항은 4-4-2 포메이션으로 시작했다. 이호재-허용준, 홍윤상-오베르단-한찬희-김인성, 완델손-전민광-이동희-신광훈, 황인재가 선발로 나섰다.

울산은 3-5-2 포메이션으로 맞섰다. 주민규-강윤구, 김민우-이규성-아타루-고승범-윤일록, 김기희-임종은-강민우, 조현우가 먼저 출전했다.

포항이 경기 시작 2분 만에 선제골을 터트리며 기선을 제압했다. 김인성이 뒤에서 넘어온 패스를 받아 우측면을 파고든 뒤 박스 쪽으로 낮은 크로스를 올렸다. 이를 홍윤상이 달려들며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하며 골망을 갈랐다.

포항이 빠르게 추가골까지 만들었다. 전반 18분 주심이 온필드 리뷰 끝에 포항의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김기희가 부자연스럽게 팔을 뻗으면서 핸드볼 반칙을 저질렀다는 것. 키커로 나선 이호재가 깔끔하게 조현우를 속이고 골망을 가르며 2-0을 만들었다.

그러자 관중석을 가득 메운 포항 팬들은 스틸야드를 용광로로 만들었다. 퍼붓는 장대비에도 굴하지 않고 붉은 깃발을 흔들고 환호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심지어는 전반 20분 만에 울산의 대표 응원가 '잘 가세요'를 열창하기까지 했다.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잘 가세요~ 잘 가세요~'를 외치는 포항 팬들은 이미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울산은 역시 울산이었다. 울산은 빠르게 만회골을 뽑아내며 포항 팬들을 긴장케 했다. 전반 25분 고승범이 환상적인 오른발 프리킥으로 골망을 가르며 한 골 차로 따라붙었다. 중요한 순간 나온 고승범의 울산 데뷔골이었다.

기세를 탄 울산이 무섭게 포항 골문을 두드렸다. 전반 막판 주민규와 김민우, 아타루가 연달아 슈팅을 터트렸다. 황인재의 멋진 선방쇼가 아니었다면 울산이 승부를 뒤집어도 이상하지 않은 흐름이었다. 

양 팀은 후반에도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다. 울산이 소유권을 쥐고 동점골을 노리면 포항이 단단한 수비로 버텨낸 뒤 역습으로 울산의 뒷공간을 노렸다. 경기 막판까지 날카로운 슈팅이 터져 나왔지만, 더 이상 골은 없었다. 경기는 그대로 포항의 한 골 차 승리로 끝났다.

포항으로서는 완벽한 해피 엔딩. 포항이 스틸야드에서 울산을 잡아낸 건 무려 659일 만이다. 오랜만에 안방에서 울산을 잡아낸 포항 팬들은 그제야 마음 놓고 다시 한번 '잘 가세요'를 열창했다. 

하지만 한 점 차 승리였던 만큼 마지막까지 가슴을 졸이는 접전이 계속됐다. 일각에서는 포항 팬들이 전반부터 부른 '잘 가세요'가 너무나 빨랐다는 얘기도 오갔다.

실제 포항 선수들과 박태하 감독의 생각은 어땠을까. 먼저 사령탑 박태하 감독은 "솔직히 위험한...머리가 쭈뼛 섰다"라며 "그런 노래는 안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경기를 뛰는 선수들도 신경이 쓰인다. 경기력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라고 진심을 털어놨다. 물론 종료 휘슬이 불리고 난 뒤에 울려펴진 '잘 가세요'에 대해선 "서로 간의 재미있는 스토리를 만드는 부분이다. 나도 듣기 좋아한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선수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결승골의 주인공 이호재는 "난 선수이기 때문에 팬들이 빨리 부르시면 그냥 확실하게 이기면 된다는 생각이었다"라며 자신감 넘치는 대답을 내놨다. 벤치에서 지켜봤던 어정원 역시 "선수들끼리도 약간 좀 이른 감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걸 지키려면 열심히 이겨야겠다. 무조건 이겨야겠다"라며 동기부여로 삼았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포항 팬들의 두 박자 이상 빠른 '잘 가세요'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finekosh@osen.co.kr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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