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우승에 맺힌 한을 씻어 낼 수 있을까? 밟을 수 있을 듯하다가도 신기루처럼 눈앞에서 사라지곤 하는 정상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구애를 외면하고 돌아서는 임인 양, 인연의 손길을 내밀기를 거부하고 떠나가는 우승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이 맥락에서, 해리 케인(30·잉글랜드)은 독일에서 펼쳐지고 있는 UEFA(유럽축구연맹) 유로 2024가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다. 등정에 마지막 한 걸음만을 남겨 두고 있어, 그동안 쌓인 숙원을 풀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케인은 분명히 세계적 골잡이다. 세계 으뜸의 리그로 평가받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에서도 세 차례씩(2015-2016, 2016-2017, 2020-2021시즌)이나 득점왕에 올랐다. 2023-2024시즌, 우승의 열망을 이루기 위해 옮겨 가 치른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도 최다골(36)을 터뜨리며 Kicker 토어예거카노네(Kicker Torjägerkanone)를 쟁취했다. 아울러 유러피언 골든 슈도 품에 안았다.
그러나 팀 측면으로 눈길을 돌리면, 케인은 불운하다. 아직 단 한 번도 정상을 밟지 못했다. 2010년 7월 토트넘 홋스퍼와 프로 계약을 한 이래 EPL은 고사하고 각종 컵대회에서조차 우승과 연(緣)을 맺지 못했다. ‘토트넘 황제’ 자리도 마다하며 우승의 한을 풀려고 새로 둥지를 튼 분데스리가 최강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꿈을 이루지 못했다. 국가대표로서도 우승의 벽은 높고 험하긴 마찬가지였다. 2015년 첫 발탁된 ‘삼사자 군단(The Three Lions: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별칭)’에서도 10년이 다 되도록 마지막 한 점을 찍지 못했다.
이제 호기를 맞았다. 2전3기의 야망을 구현할 수 있을 듯 보인다. 자신의 세 번째 유로 무대인 2024 독일 대회에서, 한 걸음만 더 잘 내디디면 그토록 염원했던 패권의 웅지를 펼칠 수 있다. 14일(이하 현지 일자), 우리나라 시각으로 15일 새벽 4시에 킥오프될, 우승의 향방이 판가름될 결승 스페인전을 앞두고 케인이 전의를 불태우는 까닭이다.
상승세를 타고 있는 점도 케인의 열망을 부추긴다. 16강 결선에 접어든 뒤 오히려 용솟음치는 기세를 내뿜는 케인이다. 유로 기록사의 한쪽을 장식했음이 이를 입증한다. 녹아웃 스테이지 통산 최다 득점에서, 새 지평을 열며 으뜸을 뽐냈다. 케인이 간절히 원하는 우승컵인 앙리 들로네 트로피를 거머쥘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객관적 지표다.
지난 10일 네덜란드와 치른 유로 2024 준결승전에서, 케인은 기류를 바꾸는 한 골을 터뜨리며 역전승(2-1)의 디딤돌을 놓았다. 전반 18분에 터진 페널티킥 동점골엔, 단순한 한 골을 뛰어넘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도 역대 유로 녹아웃 스테이지 득점 기록을 갈아 치우는 뜻깊은 골이었다.
역대 유로 결선 마당에서, 케인은 모두 6골을 뽑아내며 유로 녹아웃 스테이지 최다 득점 기록을 새로 썼다. 11개국에서 분산 개최된 2020 대회에서 4골과 이번 독일 대회에서 2골을 엮어 작성한 영광의 신기록(표 참조)이다. 종전 기록을 능가하며 한 걸음 더 나갔다. 이번 대회 16강 결선이 시작되기 전만 하더라도 기록(5골) 보유자는 앙투안 그리즈만(33·프랑스)이었다. 그리즈만은 홈그라운드에서 벌어진 2016 유로 녹아웃 스테이지에서만 5골을 잡아냈다. 케인은 16강 슬로바키아전(6월 30일·2-1승) 연장 전반 1분 결승골로 그리즈만과 어깨를 나란히 하더니, 4강 네덜란드전에서 그리즈만을 넘어서며 새 지경을 밟았다. 처음 데뷔한 2016 프랑스 대회에선, 상대 골문을 열지 못하고 물러선 바 있다.
아울러, 이 한 골은 케인에게 또 하나의 영광을 안겼다. 세계 최고의 두 메이저 무대인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과 유로를 묶은 녹아웃 스테이지 최다 득점 기록에서도 유럽 선수 가운데 맨 위로 올라섰다. 모두 9골로 일군 개가다. 이번 골 이전까지, 케인은 게르트 뮐러(독일), 미로슬라프 클로제(독일), 앙투안 그리즈만, 킬리안 음바페(프랑스) 등과 8골로 함께 기록을 지니고 있었다. 역대 월드컵 녹아웃 스테이지에서, 케인은 2018 러시아 대회 16강 콜롬비아전(1-1·승부차기 4-3 승) 한 골, 2022 카타르 대회 16강 세네갈전(3-0 승)과 8강 프랑스전(1-2 패) 각 한 골 등 모두 3골을 넣었다.
또한 이번 대회 네덜란드전 골에 힘입어, 케인은 삼사자 군단에서도 우뚝 섰다. 두 메이저 대회에서, 15골 고지를 밟은 최초의 잉글랜드 대표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월드컵에서 8골과 유로에서 7골을 각기 낚았다. 2018 월드컵에선, 득점왕에 오르기까지 한 케인이다. 유로 7골 가운데 6골을 녹아웃 스테이지에서 뽑아낸 점에서도, 케인이 대회 후반부 큰 승부처를 맞아 한결 눈부신 골 솜씨를 펼쳐 보였음을 엿볼 수 있다.
이 밖에, 케인은 월드컵과 유로에서 각 7골 이상씩을 넣은 두 번째 유럽 선수가 됐다. 이 기록을 맨 처음 달성한 골잡이는 아니나 다를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9·포르투갈)였다.
유로 마당에서, 아직 케인은 스페인과 단 한 번도 맞붙지 않았다. 유달리 단판 승부에서 괴력을 내뿜는 케인이 유로 최다(4회) 우승에 도전하는 ‘무적 함대’ 스페인을 맞아 자웅을 다툴 최후의 결전에서 어떤 활약을 펼칠지 궁금하다. 케인이 소망하는 첫 등정의 꿈을 이룰 때, 잉글랜드도 유로 첫 패권의 신기원을 연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