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대전, 이상학 기자]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주장’ 채은성(34)이 친정팀 LG 트윈스를 울리며 역전승을 견인했다. LG 수비를 역이용한 절묘한 페이크 번트 앤 슬래시로 결정적인 안타를 만들어냈다.
채은성은 14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치러진 2024 신한 SOL Bank KBO리그 LG와의 홈경기에 5번 타자 1루수로 선발 출장, 시즌 17호 홈런 포함 4타수 2안타 1타점으로 활약하며 한화의 9-5 역전승을 이끌었다. 8회말에만 6득점 빅이닝을 몰아친 한화는 최근 3연패를 끊고 분위기 반전 계기를 마련했다.
1~2회초 한화는 연이은 수비 실책으로 4실점하며 LG에 경기 흐름을 내줬다. 하지만 2회말 첫 타석부터 채은성의 방망이가 날카롭게 돌았다. LG 외국인 투수 엘리에이저 에르난데스의 초구 한가운데 몰린 시속 149km 직구를 놓치지 않고 받아쳐 좌측 담장을 넘겼다. 비러기 130m, 시즌 17호 홈런. 0-4로 초반부터 밀리던 상황에서 반격을 알린 추격포였다.
이어 4회말에는 에르난데스의 슬라이더에 헛스윙 삼진을 당했고, 6회 1사 1루에선 몸쪽 직구를 잘 받아쳐 강습 타구를 만들었지만 3루수 정면으로 향했다. 5-4-3 병살타가 되면서 아쉬움을 삼켰지만 8회말 마지막 타석에서 동점의 발판이 된 절묘한 안타로 분위기를 바꿨다.
8회말 선두타자 문현빈의 볼넷과 김태연의 우중간 1타점 2루타가 터지며 4-5로 따라붙은 한화. 노시환의 볼넷으로 이어진 무사 1,2루 찬스에서 채은성은 배트를 반으로 잡고 번트 동작을 취했다. 김경문 감독 부임 후 무사 1,2루에서 채은성의 페이크 번트 앤 슬래시가 눈에 띄게 증가했는데 이날도 채은성이 타석에 들어서자 사인이 나왔다. LG 내야도 전진 수비로 대비했다.
LG 투수 김영준의 초구 슬라이더가 몸쪽으로 들어오자 채은성은 예상대로 강공 전환을 했다. 배트를 짧게 쥐고 의식적으로 밀어친 타구가 1~2루 사이를 지나 우측으로 빠졌다. 1~2루 주자를 한 베이스씩 진루시킨 안타. 이 과정에서 2루를 지나 3루로 가던 1루 주자 노시환과 3루에서 멈춘 2루 주자 김태연이 겹쳤다. 자칫 주루사로 흐름이 끊길 수 있었지만 LG 수비가 이 틈을 놓친 사이 김태연이 재빠르게 다시 홈으로 방향을 틀어 득점을 올렸다. 5-5 동점이 되는 득점으로 채은성이 징검다리를 놓았다.
계속된 무사 1,3루에서 김영준의 폭투로 3루 주자 노시환이 홈을 파고들어 한화가 6-5 역전에 성공했다. 2루로 진루한 채은성은 이원석의 중견수 왼쪽에 떨어지는 안타 때 3루를 지나 홈까지 쇄도했다. 온몸을 날린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귀중한 추가 득점을 올렸다. 이어 장진혁의 우측 1타점 2루타, 이도윤의 1타점 좌전 적시타까지 나온 한화가 6득점 빅이닝을 만들며 9-5 역전승을 거뒀다.
경기 후 채은성은 “선수들이 다 같이 포기하지 않고 상황을 만들려고 했다. 그런 마음들이 하나씩 모여 이길 수 있었다. 경기 초반 실책이 나오면서 분위기가 안 좋긴 했지만 점수 차이가 크지 않았다. 1점씩 따라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역전승을 거둔 소감을 말했다.
8회말 페이크 번트 앤 슬래시로 만든 안타가 결정적이었다. 김경문 감독 부임 후 채은성이 유독 잘하는데 주로 좌측으로 잡아당겨서 만든 안타가 많았다. 이날은 반대로 우측으로 안타가 나왔는데 의식적으로 노린 것이었다. LG 유격수 오지환과 3루수 구본혁의 수비 범위가 넓기 때문에 역으로 허를 찔렀다.
채은성은 "나도 LG에 있어봐서 알지만 유격수, 3루수 쪽 수비가 워낙 좋다. 원래 슬래시를 할 때는 강하게 감아쳐야 하는데 요즘 워낙 많이 하다 보니 초구부터 상대가 직구를 잘 안 준다. 오늘도 변화구가 와서 쳤는데 (3루수, 유격수 반대인) 우측으로 치고 싶었고, 운 좋게 결과가 나왔다"며 "LG 선수들과는 서로 스타일이나 성향이 어떤지 잘 안다. 서로 어떻게 할지 연구하면서 경기하다 보면 재미있다"고 말했다.
2009년 LG에 육성선수로 입단한 채은성은 2014년 1군 데뷔 후 2022년까지 9시즌을 뛰었다. 한화로 FA 이적한 뒤 지난해 LG전 16경기 타율 1할8푼(61타수 11안타) 2홈런 4타점 OPS .549로 약했지만 올해 11경기 타율 4할(40타수 16안타) 4홈런 13타점 OPS 1.303으로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 한화도 객관적 전력 열세를 딛고 올해 LG에 상대 전적 6승5패로 근소 우위를 점하고 있다.
전반기에는 손가락, 허리 부상 악재 속에 64경기 타율 2할3푼2리(237타수 55안타) 6홈런 38타점 OPS .652로 부진했던 채은성은 후반기 27경기 타율 3할3푼6리(107타수 36안타) 11홈런 34타점 OPS 1.127로 완전히 살아났다. 후반기 홈런은 강민호(삼성)와 함게 공동 1위이고, 타점은 단독 1위에 올라있다. 여기에 장타율 2위, OPS 3위로 리그 정상급 활약을 펼치면서 한화 타선을 이끌고 있다. 채은성의 부활 속에 9위 한화는 5위 SSG에 4.5경기 차이로 따라붙으며 실낱같은 가을야구 희망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채은성은 "주장을 하면서 팀 성적도 좋지 않아 여러 가지로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주장직을 내려놓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누군가에 그 힘든 것을 떠넘기가 싫었다. 어차피 내가 맡기로 했으면 못하더라도 끝까지 책임감을 갖고 하고 싶다"며 "중요할 때 너무 못했다. 팀이 올라가야 할 때 잘했어야 했다. 그래도 아직 시즌이 끝난 게 아니니 끝까지 해봐야 한다. 지금 우리 목표는 5강이다"고 힘줘 말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