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대전, 이상학 기자] 프로야구 LG 트윈스는 지난달 20일 ‘우승 공신’ 케이시 켈리(35)를 방출하는 결단을 내렸다. 6년을 함께한 구단 최장수 외국인 선수와 작별을 고하며 데려온 선수는 베네수엘라 출신 우완 투수 엘리에이저 에르난데스(29). 메이저리그 6시즌 통산 99경기(49선발·303⅓이닝) 10승22패 평균자책점 5.10을 기록한 경력자로 올해도 9경기 던진 현역 빅리거였다.
LG가 정규시즌 1위 역전 우승, 나아가 한국시리즈까지 보고 내린 결단이었다. 다른 선수도 아니고 켈리의 후임자로 온 에르난데스라 부담이 만만치 않았지만 데뷔 2경기 연속 호투하며 LG에 비로소 진짜 1선발 등장을 알렸다.
데뷔전이었던 지난 8일 잠실 두산전에서 5이닝 2피안타(1피홈런) 1볼넷 7탈삼진 1실점으로 승리를 거둔 에르난데스는 14일 대전 한화전도 6이닝 6피안타(1피홈런) 무사사구 9탈삼진 2실점으로 퀄리티 스타트했다. 불펜 난조로 선발승이 날아가며 LG가 5-9로 역전패했지만 에르난데스의 호투는 위안거리였다.
1회말부터 내야 땅볼 2개에 김태연을 바깥쪽 스위퍼로 헛스윙 삼진 처리하며 삼자범퇴로 시작했다. 2회말에는 채은성에게 초구 한가운데 직구를 공략당해 솔로 홈런을 맞았지만 나머지 3타자를 아웃시키며 공 10개로 이닝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홈런 한 방을 맞아도 자기 템포를 잃지 않고 투구를 이어갔다.
3~4회에도 안타하나만 맞았을 뿐 삼진 4개를 잡으며 한화 타선을 압도했다. 좌타자 요나단 페라자에겐 바깥쪽 낙차 큰 커브로, 우타자 노시환과 채은성 상대로는 연이어 바깥쪽 스위퍼로 헛스윙 삼진을 이끌어냈다. 바깥쪽으로 휘고, 낙폭이 있는 변화구에 한화 타자들이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다.
5회말에는 김인환, 이도윤, 페라자에게 안타 3개를 맞고 1점을 추가로 내줬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계속된 2사 1,2루 위기에서 문현빈을 바깥쪽 하이 패스트볼로 헛스윙 삼진 돌려세웠다. 6회말에도 무사 1루에서 노시환을 바깥쪽 스위퍼로 헛스윙 삼진 잡은 뒤 채은성에게 몸쪽 직구를 던졌다. 강습 타구였지만 3루수 문보경이 잘 포구한 뒤 5-4-3 병살타로 연결하며 이닝 종료, 퀄리티 스타트에 성공했다.
경기 전 염경엽 LG 감독은 에르난데스의 투구수를 95구 언저리로 잡았는데 6이닝을 93구로 적절하게 끝냈다. 스트라이크 66구로 비율이 71.0%에 달할 만큼 제구가 안정적으로 이뤄졌다. 좌우 사이드를 폭넓게 활용했다. 트랙맨 기준 최고 시속 152km, 평균 149km 직구(39개) 중심으로 스위퍼(16개), 커터(11개), 커브(8개), 투심(7개), 슬라이더, 체인지업(이상 6개) 등 무려 7가지 구종을 자유자재로 원하는 곳에 던졌다.
2경기에서 11이닝 동안 8피안타 1볼넷 16탈삼진 3실점으로 평균자책점 2.45 WHIP 0.82. 홈런 2개를 맞긴 했지만 전부 솔로포로 대미지가 크진 않았다. 빠른 템포로 공격적인 투구를 펼치며 안정된 제구를 자랑했다. 아직 2경기밖에 던지지 않았지만 16탈삼진 1볼넷으로 가공할 만한 ‘볼삼비’를 보여주고 있다.
이날 에르난데스 상대로 첫 타석에 홈런을 치고 난 뒤 삼진과 병살타를 기록한 한화 채은성은 “처음 보는 투수라 생소함이 가장 큰 무기였다. 좋은 투수 같다. 컨트롤이 좋아서 몸쪽, 바깥쪽 다 잘 던지더라”고 평가했다. 김태연도 “공에 힘도 있고, 변화구도 괜찮았다. 투구 템포가 빠르니까 타이밍을 잡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LG는 지난해 29년 만에 통합 우승을 했지만 강력한 1선발 에이스가 없었다. 전반기 1선발로 활약했던 아담 플럿코가 후반기 왼쪽 골반뼈를 다친 뒤 복귀를 차일피일 미루며 애를 태우다가 시즌을 마치지 못하고 팀을 떠났다. 켈리가 한국시리즈에서 기적적으로 반등에 성공하며 1선발 역할을 해줬지만 시즌 내내 확실한 에이스 부재는 염경엽 감독의 큰 고민거리였다.
올해도 1선발로 기대한 외국인 투수 디트릭 엔스가 5월까지 기복 심한 모습으로 안정감을 심어주지 못했다. 토종 에이스 최원태도 6월초 허리 근육통 이후 페이스가 뚝 떨어졌다. 상대를 압도할 만한 1선발이 없어 벤치가 어려움을 겪었다. 염경엽 감독도 “1선발 없이 하는 게 2년째라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지만 에르난데스의 등장에 반색했다. 남은 시즌 1위 싸움은 물론 포스트시즌에 가서도 확실한 1선발 카드가 생겼다는 점에서 더욱 고무적이다. 켈리를 과감하게 방출한 결단이 헛되지 않았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