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연휘선 기자] 사람을 죽게 만들어 놓고 영국 명문대 합격증에 눈물 흘리며 기뻐한다. 피해자가 죽었다는 말에 과오는 까맣게 잊었다는 양 "누구?"를 찾던 섬뜩한 얼굴. 인형 같이 예쁜 외모로 섬뜩함을 배가시킨 영화 '보통의 가족'의 배우 홍예지. '돌아버린 눈빛'응로 호평받은 선배 연기자 정해인처럼 또 다른 악역과 캐릭터도 꿈꾸고 있는 그를 만나봤다.
홍예지는 지난 16일 개봉한 영화 '보통의 가족'(감독 허진호, 제공/배급 (주)하이브미디어코프·(주)마인드마크, 제작 (주)하이브미디어코프, 공동제작 (주)하이그라운드)에서 재완(설경구 분)의 딸 혜윤 역을 맡아 열연했다. '보통의 가족'은 네덜란드 소설 '디너'를 원작 삼아 한국 영화로 각색한 작품이다. 이에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OSEN 사무실에서 홍예지와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는 물질적 욕망을 우선시하며 살인자의 변호도 마다하지 않는 변호사 재완과 원리원칙을 중요시 여기는 자상한 소아과의사 재규(장동건 분) 형제의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성공한 프리랜서 번역가로 자녀 교육, 시부모의 간병까지 모든 것을 해내는 연경(김희애 분)과 어린 아기를 키우지만, 자기 관리에 철저하며 가장 객관적인 시선으로 가족들을 바라보는 지수(수현 분) 서로 다른 신념을 추구하지만 흠잡을 곳 없는 평범한 가족이었던 네 사람. 어느 날, 아이들의 범죄 현장이 담긴 CCTV를 보게 되면서 사건을 둘러싼 이들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간다.
그리고 매사 완벽해 보였던 이들은 모든 것이 무너져간다. 신념을 지킬 것인가 본능을 따를 것인가 그날 이후, 인생의 모든 기준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상황. 그 중심에 홍예지가 맡은 혜윤이 있다.
홍예지는 작품을 처음 본 소감에 대해 "처음에는 찍은 것보다 편집된 게 많아서 놀랐다. 그런데 그렇게 축약이 돼서 은유적이고 파격이 더 크게 느껴져서 좋다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저는 대만 영화제 출품했을 때 처음 봤는데 그 때보다 많이 덜어지기도 했다. 새 엄마와 함께 하는 장면이나 대사들도 덜어졌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되지만 제 씬으로는 3개 씬 정도가 덜어졌다. 아빠 카드를 뺏기 전에 '새 엄마'라고 말 할 때 우리 엄마 '헌 엄마' 되는 것 같다고 말하는 장면도 있는데 덜어졌다. 그게 나중에 공개될 반전에서 혜윤에 대한 섬뜩함을 확실히 더해준 것 같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극에 서스펜스를 선사하는 섬뜩한 빌런. 홍예지에게는 첫 악역이다. 이와 관련 그는 "캐릭터 구축하는 게 먼저인데 혜윤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더라. 정말 며칠을 캐릭터 구축 때문에 고생했다. 제가 혜윤이를 이해 못하는 것처럼 관객들도 이해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이해하지 않고 그냥 해봤다. 측은한 악역이라면 달랐을 것 같은데 전사가 없기 때문에 그냥 주어진 상황을 해내려 했다"라고 털어놨다.
특히 그 배경에는 허진호 감독에 대한 강한 신뢰가 있었다. 홍예지는 "감독님과 촬영 며칠 전에도 몇 시간씩 토론을 했다. 씬 전에도 이야기를 많이 하고 들어갔다. 감독님을 많이 믿어서 할 수 있었다"라며 "허진호 감독님 작품들이 하도 유명해서 전부 다 보지는 못했지만 '덕혜옹주'를 제가 너무 좋아한다. 말없이 뒷모습만 찍어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게 찍어주시는 게 강점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 번에 '보통의 가족'을 보면서도 감독님이 많은 방면으로 연출을 하셨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 중에서도 홍예지가 봤을 때 가장 섬뜩했던 장면은 언제였을까. 그는 "혜윤이 대학 합격 발표가 났을 때 남 일에 관심 없고 법을 빠져나갈 생각만 하는데 자기한테 기쁜 일이 있을 때 눈물 흘릴 것처럼 기뻐하는 장면이 나한테만 관심이 있고 남한테는 관심이 없다는 생각에 조금 무서웠다"라고 털어놨다.
그는 영화를 본 주위의 반응에 대해 "아무래도 가족들은 제 부모님이시다 보니 '어떤 선택도 질책할 수 없어서 힘들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재완도 재규의 선택도 맞는데 덮자니 내 자식이 잘못될까 두렵고, 밝히자니 이 사건을 아는 사람이 없는데 굳이 밝혀야 할까 하는 생각에 생각이 많아져서 좋았다'고 해주셨다. 친구들은 보통 영화 연출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굉장히 잘 꼬집어내더라. 사촌동생 시호는 학교폭력 피해의 전사라도 있는데 혜윤이의 전사가 없어서 궁금해진다고 해줬다"라고 전했다.
이어 "원작 소설엔 학교폭력이 없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도 혜윤이 그런 선택을 한 것은 선배님들과 얘기하면서 생각이 든 게 '콩콩팥팥'이라는 거다. 제가 말을 잘못한 것도 있고, 노숙자 죽음에 두려워하지 않음으로 인해 아빠가 자수를 해야겠다고 바뀐 부분도 있지만 변호사인데 '딸을 자수 시킨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도 있어서 그런 타이틀 때문에 선택한 것일 수도 있지 않냐는 이야기가 선배님들과 이야기하며 나왔다. 그런 계산적인 아빠라 혜윤이가 계산적으로 자라고 엄마를 언급한 것도 있는 것 같다"라고 평했다.
또한 "연경이 가족 사진 찍을 때 '정말 너희 아빠 저 여자랑 결혼한다니?'라고 하는 장면도 있다. 혜윤이가 엄마를 그리워 할 시간도 없이 빈자리를 빨리 메꾼 것 같다. 지수가 말한 것처럼 애들 생각은 궁금하지 않냐고 하는데 시호랑 작은 아빠는 대화를 하는데 그 사건 이후에도 저와 아빠는 대화가 없다. 가족 사진 찍은 게 3년 전이고, 혜윤이 친엄마가 죽은 지도 5년도 안 된 시기다. 한창 사춘기인 중학생 때 친모가 죽고, 새 엄마가 오고 혜윤이 외로웠을 것 같다. 그게 혜윤의 범죄의 이유는 아니지만 혜윤이 그래서 사촌동생인 시호를 친동생처럼 생각하고 어울리고, 이복동생에게도 웃으며 다가간 이유인 것 같다"라고 평했다.
이 밖에도 '보통의 가족'은 은유적이고 축약적인 장면들로 관객으로 하여금 깊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에 홍예지는 "감독님이 오히려 역질문을 많이 하셨다. 촬영 할 때도 촬영 전에도 혜윤이를 생각하다 보니까 그런 길을 찾아가는 법을 많이 배운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해하지 않고 하려니 어려웠지만 혜윤이가 '왜 이런 말을 할까?'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욕을 어떻게 하면 맛있게 할 수 있을까라거나, 지수랑 리모콘으로 기싸움을 하는 장면에서도 욕이 없었는데 혜윤이를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 중얼중얼 하다가 감독님이 방금 그 욕이 좋다고 해주셔서 바꼈다"라고 털어놨다.
또 "시호랑 햄버거 먹으며 대화하는 장면은 컷마다 대사가 바뀌었다.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하시는 걸 보고 더 집중하게됐다. 원래도 '너네 아빠 간수 잘해'에서 '아빠한테 잘해드려'라고 자식들이 아빠를 구슬린다는 느낌으로 바뀌었다"라고 설명했다.
혜윤이 가장 먼저 존재감을 보여준 장면은 작은 엄마인 연경과 가족 사진을 보며 '존멋'이라고 평한 장면이다. 이 장면에도 나름의 함의가 있었다. 홍예지는 "혜윤이가 봉사활동을 하지도 않고 확인증을 받았는데 '나중에 할게요'라면서 상황을 모면하고 미룬다. 연경은 혜윤에게 확인증을 주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런 선행을 실천해온 사람이고 혜윤에게 '나중에 꼭 해'라고 확답을 받는다. 혜윤에게는 평생 절대 할 일 없는 선행을 실천하는 작은 엄마 연경이 대단해 보였던 거다. 그걸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수랑 차를 타고 가면서도 기싸움을 하는 씬이 있다. 처음엔 그걸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잘 몰랐다. 무시를 해야 할지 지수가 혜윤이를 칭찬하면서 예쁘고 공부도 잘한다고 얘기하면 혜윤이 '부럽죠'라고 얘기하는데 그게 비아냥인지 생각이 많았다. 감독님이 그 때도 여러 버전으로 찍게 기회를 주시더라"라며 "그 밖에도 여러 버전으로 했던 게 아빠랑 통화하는 합격자 발표 이후에 노숙자 죽었을 때 누구라고 얘기하는 장면이 '누구?' 한 단어인데 굉장히 여러 버전으로 찍었다. 누구인지 아는데 망설이는 것으로 갈지, 정말 까먹은 채로 갈지 정말 여러 버전으로 찍었다. 저는 그렇게 기회를 많이 얻은 게 배우로서도 기회를 많이 얻었고 표출해볼 수 있던 게 좋았다. 기회를 많이 여러번 주시는 게 허진호 감독님과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이었다"라며 깊은 감사를 표했다.
오디션 과정에도 이러한 홍예지의 근성을 허진호 감독이 눈여겨 봤다고. 홍예지는 "오디션을 볼 때 허진호 감독님 앞이라 너무 떨려서 제가 당당하고 뻔뻔하게 못했다는 생각에 집에 가는 길에 차를 돌려서 돌아왔다. 문전박대를 당하더라도 기회를 달라고 해보려 했다. 다른 친구들 오디션 끝난 다음에 기회를 주셔서 다시 그 때 오디션을 봤다. '이제 연기가 만족스러워?'라고 하셔서 '아직 못 보여드린 것 같다'라고 해서 만족할 때까지 연기하고 가라고 하시더라. 같은 장면을 3~4번 더 했는데 '이제 혜윤이 보여드린 것 같다'고 했는데 처음과 다시 봤을 때 연기가 다른 걸 좋게 봐주신 것 같았다"라고 털어놨다.
선배 연기자들과의 경험도 홍예지에겐 남다른 기회였다. 그는 "감독님이 저한테 '이렇게 해줘'라고 주문하셨을 때 그 전의 연기와 섞여서 혼란을 많이 겪었다. 그런데 설경구 선배님은 같은 장면을 여러번 다른 느낌으로 주문했을 때 다 다르게 하시는 걸 보고 그렇게 경우의 수를 많이 준비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배우가 되야겠다고"라며 감탄했다.
이어 "저도 숫기가 많이 업고 애교도 없다. 설경구 선배님도 말수가 적으신 편이다. 그런데 툭툭 하시는 농담이 정말 저희 아빠 같았다. 그런 농담들에 아빠 같은 느낌을 받다 보니 덕분에 풀어졌다. 제가 애교가 없는 모습을 안 좋아하실 수도 있는데 '너는 애교도 없고 숫기도 없고 친해지는데 오래 걸리는 사람이구나'라고 그냥 그렇게 얘기해주셔서 저는 저대로 연기를 하고 현장에 있을 수 있었다"라며 웃었다.
또한 그는 "아무래도 대선배님이시다 보니 조금 더 의지할 수 있었다"라며 "김희애 선배님과는 한 씬 밖에 안 겹쳤다. 그런데 김희애 선배님이 선배님을 찍지 않을 때도 100% 연기를 해주셨다. 저도 더 열심히 집중하려 했다. 저도 저를 찍지 않을 때도 100% 하려고 하지만 그래도 다를 것 같다. 연차가 오래 되셨고 연기 경험이 많으신데도 상대 배우를 위해 100% 해주시는 걸 보고 나도 나를 찍을 때 만큼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수현 선배님을 제가 너무 좋아해서 촬영할 때도 너무 설렜다. 수현 선배님이 먼저 얘기도 많이 해주시고 제가 먼저 SNS 팔로우를 하는게 부담스러우실까 봐 먼저 말을 못했는데 먼저 물어봐주시고 제 생활에 대해서도 궁금해해주셨다. 현장에서 그런 얘기들로 인해 긴장이 많이 없어졌다"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거장 허진호 감독과 대배우 선배들 사이 많은 것을 배운 '보통의 가족' 홍예지는 "저는 '보통의 가족'이라는 제목 자체도 그렇고 영화가 굉장히 '부조화'가 많은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이 캐스팅을 봤을 때도 장동건, 김희애 선배님이 부부로 나올 거라고는 매치를 많이 못하셨을 것 같다. 새 엄마가 들어오는 장면이나 정말 '보통의 가족'이 아니다. 부조화를 다룬 영화인 것 같고. 가족간 대화의 부재가 얼마나 크게 영향이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인 것 같다. 가족이랑 봤을 때 토론 주제가 다르고, 친구들과 봤을 때 토론 주제가 다르다. 내의견을 곰곰히 생각해보고 얘기를 많이 할 수 있는 작품인 것 같다"라고 평했다.
더불어 "저는 작품에 들어갔을 때 관객 분들에게 정말 큰 욕을 먹겠다는 생각으로 들어갔다. 시사회도 그렇고 무대인사 때도 그렇고 데리고 가서 자수시키고 싶었다는 말이 많았다. 혜윤이는 대체 왜 그러는 거냐라는 말을 들었을 때 뿌듯하더라. 작품을 보고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얻고 싶다. 그동안에는 제가 많이 울고 피해자 쪽 역할을 많이 했는데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베테랑2' 정해인 선배님이 했던 것처럼 정말 악인, 싸이코 같은 역할도 해보고 싶다. 제가 그동안 해본 게 액션을 필두로 한 작품이라 액션이 주인 작품도 해보고 싶다. 욕 먹는 반응도 괜찮다. 욕 먹으려고 연기한 거니까 많이 욕해달라. 관객 분들 개개인 입장이 궁금하다. 그런 의견을 많이 나누고 싶다"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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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OSEN 민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