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고성환 기자] 라파엘 바란(31)이 이른 나이에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이유를 밝혔다.
영국 '미러'는 17일(이하 한국시간) "바란은 그가 커리어의 마지막 11년 동안 '무릎 하나'로만 뛰었다고 인정했다. 그는 지난달 만 31세의 나이로 은퇴해야 했다"라고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바란은 은퇴 후 프랑스 '레퀴프'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나는 몇 년간 태클을 하지 않았다"라며 "왼쪽 무릎이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하면 받아들여야 했다"라고 털어놨다.
어릴 적부터 오른쪽 무릎 부상이 심각해 사실상 왼쪽 무릎 하나로 버텼다는 것. 바란은 "20살 때부터 오른쪽 무릎 위에 '다모클레스의 검'을 매달고 뛰었다. 오른쪽 무릎은 튼튼해졌지만, 기동력이 약해졌다. 왼쪽 무릎이 힘을 주고 밀어내기 위해 모든 걸 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한쪽 무릎으로 11년간 어떻게 뛰었을까? 많은 노력과 희생, 케어, 새로운 균형을 관리하는 법을 배운 덕분"이라며 "심리적으로 경기장에 들어갔을 때 다른 사람들은 물론이고 나조차 무릎이 하나뿐이라고 말할 순 없었다. 사실 무릎만 본다면 걱정이 될 것이다. 다치거나 무릎이 부러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위험을 감수하며 살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말 그대로 경기장 위에서 몸을 바쳐 뛰었던 바란이다. 그는 "우리는 검투사처럼 목숨을 걸고 싸운 건 아니다. 하지만 신체적 문제, 즉 우리 자신을 걸고 뛰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강인한 사람들이다. 평생 고통을 안고 뛰어왔다"라고 말했다.
많은 업적을 이룬 바란이지만, 아쉬움이 아예 없을 순 없다. 바란은 "가끔은 혼자서 생각한다. '다리가 두 개였다면 뭔가 대단했을 거야'라고. 난 그 모든 걸 가볍게 생각한다. 내가 이런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나만의 기술을 완전히 익힐 수 있었다"라고 얘기했다.
바란은 "난 수년 동안 태클을 하지 않았다. 난 경합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적절한 순간을 기다리며 언제 상대 앞에서 멈출지, 속도를 낼지, 달리기를 시작해야 할지 기다린다. 이 무릎이 없었다면 내 포지션에서 무언가 그렇게 많이 익히지 못했을 것"이라며 "뛰어난 신체 능력을 지닌 젊은 선수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들이 자기 포지션을 마스터하는 데 에너지를 쏟는다면 괴물이 되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1992년생인 손흥민보다도 한 살 어리지만, 축구화를 벗게 된 바란. 그는 "커리어가 더 오래 지속될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예를 들면 프리미어리그(PL) 평균 연령은 낮아지고 있다"라며 "전에 멈췄더라면 후회했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난 그 모든 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라고 자신의 여정을 되돌아봤다.
프랑스 출신 바란은 한때 월드클래스 센터백으로 활약했다. 떡잎부터 달랐던 그는 2010년 17세의 나이로 랑스에서 프로 데뷔했고, 1시즌 만에 랑스를 떠나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안목은 정확했다. 바란은 빠른 발과 뛰어난 제공권, 안정적인 수비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했고,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핵심 수비수로 자리 잡았다. 그는 10년간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우승 4회, 라리가 우승 3회를 비록해 무려 18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바란은 프랑스 대표팀에서도 없어선 안 될 자원이었다. 그는 2014년 A매치에 데뷔한 뒤로 총 93경기를 소화하며 프랑스 수비를 이끌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선 프랑스를 정상으로 이끌며 월드컵 우승 트로피까지 손에 넣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모든 걸 이룬 바란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는 2021년 여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며 PL 무대에 발을 내디뎠다. 다만 맨유에서 퍼포먼스는 기대에 미치진 못했다. 바란은 잔부상에 시달리며 유리몸이 돼버렸고, 프랑스 대표팀에서도 생각보다 빠르게 은퇴했다.
그래도 바란은 경기장 위에서 안정적인 수비력을 자랑하며 베테랑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세트피스에서 헤더 득점 한 방도 쏠쏠했다. 에릭 텐 하흐 감독의 자도 아래 카라바오컵(EFL컵)과 FA컵에서 우승하며 맨유에 2시즌 연속 트로피를 안기기도 했다. 바란이 커리어를 통틀어 거머쥔 우승 트로피는 무려 22개에 달한다.
바란은 맨유와 동행을 3년으로 마무리했다. 맨유는 지난 시즌을 끝으로 자유계약(FA) 신분이 된 그를 붙잡지 않았다. 바란은 맨유에서 리그 24경기 넘게 뛴 적이 없었던 만큼 더는 믿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대신 텐 하흐 감독은 레니 요로와 마테이스 더 리흐트를 영입하며 새로운 시대를 준비했다.
바란의 다음 행선지는 세리에 A 코모였다. 그는 승격팀 코모와 2년 계약을 맺으며 다시 한번 도전을 택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부상이 말썽이었다. 바란은 데뷔전이었던 삼프도리아와 코파 이탈리아 1라운드에서 경기 시작 20분 만에 무릎에 충격을 입고 교체됐다. 세리에 A 전반기 명단에도 등록되지 못했다.
결국 한계를 느낀 바란은 은퇴를 결정했다. 그는 지난달 25일 "모든 좋은 일엔 끝이 있기 마련이다. 커리어에서 여러 도전을 해왔고,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에도 최선을 다했다. 믿을 수 없는 감정이고, 특별한 순간이다. 평생 지속될 추억"이라며 개인 소셜 미디어 계정을 통해 은퇴를 선언했다.
바란은 망가진 자신의 몸 상태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난 항상 내 자신에게 가장 높은 기준을 적용해왔고, 그저 경기를 붙잡고 있기보다는 강한 모습으로 은퇴하고 싶었다. 내 마음과 본능에 귀를 기울이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다. 욕망과 필요는 서로 다른 것들이다. 난 수천 번 넘어지고 다시 일어났다. 이제는 웸블리에서 트로피를 따낸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멈추고, 축구화를 벗어야 할 순간"이라고 밝혔다.
이제 제2의 삶을 시작하는 바란이지만, 축구계를 떠나진 않는다. 그는 "이제 경기장 밖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난 코모에 남을 것이다. 그저 축구화와 정강이 보호대를 벗을 뿐이다. 곧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해드릴 수 있길 바란다"라며 "내가 뛰었던 모든 클럽의 팬분들, 내 팀동료들, 코치진과 스태프 여러분...내 무모한 꿈보다 더 특별한 여정을 만들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을 다해 감사드린다"라고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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