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광주, 이상학 기자] 위기의 KIA 타이거즈를 살린 비였다. 그런데 아직 안심할 수 없다. 위기를 막아야 진짜 비 덕을 본 것이다.
지난 21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4 프로야구 한국시리즈(KS) 1차전은 포스트시즌 초유의 서스펜디드, 일시 정지 게임으로 선언됐다. 정규시즌 때도 43년 역사상 11번밖에 나오지 않은 진귀한 상황이 가을야구에 발생한 것이다.
KIA 제임스 네일과 삼성 원태인, 양 팀 선발들의 투수전이 이어진 상황에서 5회까지 ‘0’의 균형이 이어졌다. 하지만 6회초 선두타자 김헌곤이 우월 솔로 홈런을 터뜨리며 삼성이 기선 제압한 뒤 르윈 디아즈가 볼넷을 골라내며 네일을 강판시켰다.
KIA는 우완 불펜 장현식을 투입했지만 제구가 잡히지 않았다. 강민호에게 5구 만에 볼넷을 내주며 무사 1,2루 위기가 이어졌다.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장현식은 김영웅에게 초구부터 볼을 던졌다. 6개의 공을 던졌지만 스트라이크가 1개밖에 들어가지 않았다. 제구가 말을 듣지 않으면서 삼성이 상승 흐름을 이어갔고, KIA에는 위기감이 고조됐다.
그런데 여기서 비가 KIA를 도왔다. 경기 전부터 오락가락하는 비 때문에 3번이나 그라운드에 방수포를 깔았다 걷기를 반복한 이날 경기는 오후 7시36분 지연 개시됐다. 예정된 개시 시간보다 1시간6분이나 경기가 늦게 시작됐다. 22일에도 비 예보가 있어 KBO는 어떻게든 이날 경기 강행을 밀어붙였다.
5회까지는 순조롭게 빠른 속도로 경기가 진행됐지만 6회초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다. 공교롭게 이때 삼성이 선취점을 내면서 서스펜디드 게임이 성립됐다. 동점인 상황에서 원정팀이 이닝 초 공격에서 리드하는 점수를 냈을 때 홈팀의 이닝 말 공격이 시작을 하지 못했거나 동점 또는 역전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중단되면 공격과 수비 횟수 불균형으로 서스펜디드 게임이 된다.
일단 삼성의 손해가 너무 크다. 5회까지 66개의 투구수로 무실점 호투한 선발투수 원태인을 허무하게 소모했다. 정상적으로 경기가 이어졌다면 7회까지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투구수였다. 남은 4이닝을 불펜으로 막아야 하는 것도 큰 부담인데 경기 흐름 면에서 더욱 아쉽다. 홈런으로 선취점을 올린 뒤 연속 볼넷으로 주자를 모아 KIA를 압박하던 상황에서 서스펜디드 게임이 됐으니 흐름이 뚝 끊겼다.
박진만 삼성 감독도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된 뒤 공식 인터뷰에서 “시즌 중에도 잘 안 일어나는 상황이 발생해 당황스럽다. 선발투수를 쓰고 경기가 중간에 끊기는 경우를 걱정했는데 많이 아쉽다”면서 “흐름을 우리가 가져온 상황에서 끊겼다”며 당혹감을 내비쳤다.
반면 장현식 제구가 잡히지 않아 추가점을 내줄 수 있었던 KIA는 급한 상황을 모면했다. 다만 KIA도 완전히 안심할 순 없다. 6회초 무사 1,2루 김영웅 타석 원볼 상황이 서스펜디드 게임에 그대로 이어진다. 이 위기를 잘 극복해야 비 덕을 제대로 보는 것이다. KIA로선 시간을 두고 몇 가지 선택지를 고민해볼 수 있다는 게 긍정적이다.
이범호 KIA 감독은 “김영웅 상대로 가장 좋은 투수를 올릴지, 아니면 번트를 생각해서 번트 수비를 가장 잘하는 투수를 올릴지는 (정재훈) 투수코치와 얘기해봐야 할 것 같다. 원볼이 된 상황에서 타자가 치려고 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격적으로 나갈 것 같아서 우리도 거기에 맞게 왼손 투수를 올려야 할지 여러 가지로 고민해보겠다”고 밝혔다.
장현식으로 그대로 갈 수도 있지만 흐름상 좌완 투수로 바꿀 가능성이 높다. KIA 불펜에는 곽도규, 최지민, 이준영, 김기훈, 김대유 등 무려 5명의 좌완 투수들이 있다. 좌타자 김영웅에게 쓸 수 있는 카드를 다양하게 보유 중이다. 올 시즌 상대 전적은 곽도규가 2타수 무안타 1볼넷, 김기훈과 김대유가 나란히 1타수 무안타 1삼진, 최지민이 3타수 1안타 1볼넷 1삼진을 기록했다. 이준영은 상대 전적 기록이 없다. 표본이 크지 않지만 데이터로만 보면 곽도규나 김대유의 등판이 유력하다.
삼성에서도 이 상황을 역으로 이용할 수 있다. 무사 1,2루였지만 우천 중단이 선언되기 전 김영웅은 초구에 번트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상대 투수가 바뀐다면 보내기 번트로 주자들을 한 베이스씩 진루시켜 다음 타자 박병호에게 해결 능력을 기대할 수 있다. 다양한 시나리오가 주어진 만큼 양 팀 벤치 머리 싸움이 치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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