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판교동, 고성환 기자] 말 그대로 하늘이 도운 순간이었다. '한국 축구의 영원한 캡틴' 박지성이 15년 만에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골망을 갈랐다. 박정무 넥슨 FC그룹장이 당시를 되돌아봤다.
지난달 20일 오후 6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2024 넥슨 아이콘 매치'가 열렸다. 결과는 실드 유나이티드(수비수팀)의 대승. 실드 유나이티드는 FC 스피어(공격수팀)를 상대로 4골을 몰아치며 4-1 대승을 거뒀다.
물론 축구화를 벗은 전설들이 한국에서 모이는 초대형 축구 행사였던 만큼 승패가 중요하진 않았다. FC스피어는 세계적인 공격수들로 구성된 팀으로 티에리 앙리 감독과 박지성 코치가 지휘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수비수들로 구성된 실드 유나이티드는 파비오 칸나바로가 감독을 맡았고, 이영표 코치가 보좌했다.
당시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64210명이었다. 넥슨 측에 따르면 이번 경기는 티켓 오픈 약 1시간 만에 모든 좌석이 매진된 만큼 엄청난 열기를 자랑했다.
6만 관중은 승패를 떠나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축제를 즐기며 축구로 하나 됐다. 이벤트를 기획한 박정무 넥슨 FC그룹장도 킥오프를 앞두고 "이게 되네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경기 막판 박지성이 깜짝 출전해 페널티킥 득점을 성공했을 때는 모두가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카카와 루이스 피구, 안드리 셰우첸코, 히바우두, 칸나바로 등 발롱도르 수상자만 6명이 모인 역대급 매치였던 만큼 해외에서도 관심이 많았다. 공격수와 수비수로 나눠 맞대결을 펼친다는 콘셉트도 화제를 모았다. 넥슨에서 투자한 100억 원에 달하는 섭외비와 많은 노력 덕분에 현실이 될 수 있었다.
OSEN은 지난달 29일 오후 넥슨 사옥에서 아이콘 매치를 가능케 한 박정무 그룹장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경기를 치르느라 고생 많았다는 취재진의 말에 웃으며 "아니다. 다들 고생 많으셨다. 내가 가장 덜 고생했다"라고 답했다.
■ 다음은 박정무 그룹장과 일문일답.
-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박지성이 유니폼을 입고 나왔을 때 뭉클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거다. 준비 과정을 듣고 싶다.
박지성 선수는 당연히 안 뛰는 걸로 돼 있었다. 사실 계단도 오르기 힘든 상태다. 경기 2주 전부터 혼자 근육 운동을 열심히 했다고 하더라. 경기를 뛸 수 있는 근육을 만들기 위해 트레이닝을 했다. 일부 사람들만 알고 있었다. 대외적으로 나가면 본인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계속 근육을 만들면서 기회가 오면 한번 출전해야겠다고 했다. 마침 근육도 잘 만들어졌고, 페널티킥 상황도 나왔다. (페널티킥을) 연출한 거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조작 아니냐는 말도 들었다(웃음). 아니다. 나도 경기를 밑에서 봤는데 정말 감동이었다. 누군가 우리를, 박지성 선수의 출전을 도와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과 모든 분들께 감사한 상황이었다.
- 박지성은 유럽서 열린 자선매치에서도 뛰지 않았다. 어떻게 설득했는가.
우리가 설득했다기보다는 본인의 의지로 얘기했다. 원래 앙리도 감독만 하고 선수로는 출전하지 않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당일 아침에 뛰겠다고 해서 비상 상황처럼 이것저것 준비했다. 퍼디난드나 드록바 등 다른 선수들도 '이런 컨셉으로 경기를 한다', '함께 황금 시기를 보냈던 선수들과 같이 뛴다'고 하니까 선수들끼리도 분위기가 정말 좋았던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박지성 선수도 한번 뛰고 싶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싶다.
- 박지성이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골을 넣는 모습은 국민들에게도 엄청난 선물이었다.
내가 정말 MBTI 'T'인데 박지성 선수 응원가가 나왔을 때 가슴이 뭉클했다. 인상적이었던 게 K리그 경기나 다른 축구 경기는 서포터즈의 열광적인 응원들이 계속 있다. 그런데 이번엔 고요했다. 박지성 선수가 나오니까 박수 치고 하긴 했지만, 약간 고요하다가 갑자기 응원가가 울려퍼졌다. 정말 인상적이었다. 음악이 나오거나 노래를 부르고 북을 치는 게 아니라 그냥 '와' 하는 소리를 그때 처음 봤다. 축구장에서 골을 넣은 것도 아닌데 몸을 풀고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소리가 나왔다.
- 아이콘 매치 이후 지표가 많이 상승했는지.
난 게임 지표보다는 게임 외적인 지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FC 온라인을 매일 접속하는 분도, 게임은 안 해도 특정 방송인의 FC 온라인 관련 콘텐츠를 열심히 보는 분, 유료 결제해서 새벽에 축구를 보는 분들도 (넓게 보면) FC 온라인 유저라고 생각한다. 내 관점에서는 축구, 게임, 우리가 만든 콘텐츠를 소비해주시는 모든 분들을 유저라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는 이번에 유저가 대폭발하긴 했다. 첫날 이벤트 매치도 편집할 시간이 없어서 그냥 올렸는데 조회수가 24시간도 안 돼서 100만 회를 찍었다. FC 온라인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았다는 것만으로도 포텐셜을 확보했다고 생각한다. 그걸 계속 유지하는 게 내 임무다. 정말 만족한다.
- 아이콘 매치 시즌 2도 구상 중이라고 들었다.
이제 경기가 끝난 지 일주일 정도 됐다. 시즌 2를 생각은 하고 있는데 뭔가 확정적으로 말씀드리기는 힘들 것 같다. 이번엔 너무 짧은 기간에 준비하다 보니 해외 판권 등 여러 가지 놓친 게 많다. 다시 한다면 미리 준비하고 미리 발표할 예정이다. 더 많은 걸 챙기려 한다.
- K리그와도 많은 협업을 해왔다. 이번 계기로 오프라인 협업 확대를 기대해봐도 될까.
그렇다. 우리는 K리그 분들께 항상 같이 하자고 말씀드리고, 이것저것 많이 제안드리고 있다. 항상 손을 내밀고 있다. K리그 팬분들이 원하시는 게 있다면 모든 걸 다 바칠 자신이 있다. 그리고 K리그가 흥해야 아이콘 매치도 흥할 수밖에 없는 거다. K리그가 흥해야 FC 온라인도 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냥 K리그의 부흥이 저희 게임의 부흥이라고 거의 동일시하고 있다.
- 사실 그동안은 비판 여론도 많았다. 하지만 이번 아이콘 매치를 통해 여론이 굉장히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올라갔으면 떨어질 때가 있으니까 한번 크게 맞겠구나 싶다(웃음). 농담이고, 느낀 점을 편하게 말씀드리자면 이전에 K리그 현장을 여러 번 방문했다. 처음에는 골대 뒤 서포터즈석 앞에 서있는데 팬분들이 '강화가 터졌다', '내가 현질을 얼마를 했는데' 이런 얘기를 많이 하셨다. 그런데 가장 최근에 전북 현대와 제주 유나이티드 경기에 코인토스를 하러 갔다. 내가 나가니까 갑자기 팬분들이 '박정무! 박정무!'하면서 내 이름을 연호하시더라. 감사했다. 내가 유명해지는 걸 떠나서 우리가 몇 년 동안 해왔던 유소년 축구지원 사업 등을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고 느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 게임으로 스포츠 산업 전반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꿈꾸는 미래나 목표가 있다면.
아이콘 매치도 중요하지만, K리그1이 정말 흥행하고 있다. 팬분들도 정말 열심히 응원하신다. 그런데 K리그2나 K3, K4에도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 많다. 관중분들이 많다면 퍼포먼스도 훨씬 더 올라갈 것 같다. 넓게 봤을 때 1부리그뿐만 아니라 모두 흥해야 축구에 대한 파이 자체가 커진다고 생각한다.
너무 축구 쪽으로 얘기하는 거 같지만, 유소년 축구도 뿌리부터 튼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스포츠는 너무 엘리트 지향적으로 가다 보니까 어렵다. 사실 퇴근한 다음에 K4에서 뛰어도 되는 거다. 그런 환경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K4에서 뛰는 분들이 축구선수로 실패했다고 생각하게 되는 지금 환경이 아쉽다.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그런 부분을 바꿔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요즘 어린 학생들은 다 스마트폰 보고 유튜브 보고 한다. 우리는 게임 회사지만, 밖에서 축구하고 스포츠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축구만큼 공 하나로 쉽게 운동할 수 있는 스포츠가 없다. 이런 부분이 많이 확대되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가 'GROUND.N'도 하고 산간 오지에 가서 이천수 선수를 데리고 축구교실을 하는 거다. 영향력이 너무 작긴 하다. 이번 아이콘 매치로 생각이 변한 건 아니다. 원래 우리 팀은 항상 그런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 팬들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전하자면.
이번 아이콘 매치를 정말 사랑해주서 감사하다. 기대 이상으로 너무 많은 사랑을 주셨다. 아이콘 매치 시즌 2에 대한 기대감도 많다는 사실 역시 충분히 알고 있다.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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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넥슨,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