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대표팀 ‘깜짝 선임’ 호지슨이 레드냅에 앞선 이유
입력 : 2012.05.04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기사 첨부이미지
[스포탈코리아] 홍재민 기자= 정치든 회사든 ‘깜짝 쇼’ 기법을 애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정 판단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꽤나 쏠쏠하기 때문이다. 유로2012에 나서는 잉글랜드 축구도 이 방법을 선택했다.

잉글랜드 사람들이 흔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어려운 직업”이라고 말하는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인물은 로이 호지슨(64)이었다. 토트넘 홋스퍼의 해리 레드냅 감독이라 믿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선택이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 축구 팬들까지 “웬 호지슨?”이라고 할 정도니 이번 선임의 충격파는 상당하다. 왜 레드냅이 아니고 호지슨이었을까?

우선 호지슨이란 인물을 살펴보자. 그는 전형적인 이론가 타입의 지도자다. 축구 선수로서의 경력은 매우 미미하다. 공부를 잘했던 덕분에 호지슨은 23세가 되던 해에 이미 축구 지도자가 되기 위한 대부분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리고 29세부터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36년간 16개의 클럽(8개국)과 4개국의 대표팀(잉글랜드 포함)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월드컵과 유로를 경험했고, 4개국어(영어, 노르웨이어, 이탈리아어, 스웨덴어)에 능통한 국제적 인생 경로를 걸어왔다. FIFA와 UEFA에서는 테크니컬 부문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리버풀에서의 실패만 도드라진 느낌이지만, 최소한 잉글랜드에서 호지슨은 존경 받는 인물이다.

낙마한 토트넘의 레드냅은 호지슨과 여러 모로 대조적이다. 호지슨이 문신이라면 레드냅은 무신 이미지를 가진다. 무엇보다 대중적 인기가 높다. 1994년부터 런던의 인기 클럽 웨스트 햄 감독으로서 미디어에 빈번히 노출되었다. 리오 퍼디낸드, 프랭크 램파드, 마이클 캐릭, 조 콜 등의 슈퍼 탤런트들이 휘하에서 한꺼번에 배출되는 행운도 따랐다. 2000년대 들어선 포츠머스와 사우스햄프턴이란 견원지간의 사선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이슈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2008년 포츠머스에서 FA컵을 들어올리면서 레드냅은 소위 전국구 스타 감독으로 떠올랐다. 바깥으로만 떠돌던 호지슨보다는 레드냅이 인지도와 인기 면에서 압도적이다. 그러나 잉글랜드축구협회는 결국 레드냅에겐 연락도 취하지 않았다. 전 국민이 동참한 ‘레드냅 설레발’이었던 셈이다.

잉글랜드축구협회는 호지슨 선임 이유를 국제적 경험이라고 밝혔다. 우리 감각으로는 너무 형식적인 설명처럼 보인다. 특히 위기에 빠진 잉글랜드 대표팀을 구원하기 위해선 점잖은 호지슨보다 열정적인 레드냅이 적임자다. 하지만 국제적 감각에 대한 잉글랜드 축구의 갈증은 생각 이상으로 크다. 호지슨 선임이 잉글랜드 축구 전체의 고민과 일맥상통한다고도 할 수 있다. 잉글랜드 축구가 가진 최대 문제점이 바로 ‘우물 안 개구리’식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잉글랜드 축구는 1992년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폭발적 성장세를 보여왔다. 하지만 리그 발전이 대표팀의 전력 강화로 이어지진 못했다. 프리미어리그가 외국인 세력에 점령된 탓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시티, 아스널, 첼시, 리버풀 등 인기 클럽 구성원은 예외 없이 외국인 일색이다. 구단주부터 감독, 주축 선수들까지 모조리 외국인이다. 설상가상 잉글랜드 지도자와 선수들은 빼앗긴 자기 밥그릇을 해외가 아니라 한 단계 아래의 자국 리그 또는 구단에서 찾았다. 특히 잉글랜드 선수들은 굳이 외국에서 고생하지 않아도 돈벌이가 충분하다. 내수 시장 확대가 수준 미달의 자국 선수들까지도 충분한 돈을 벌 수 있는 환경 조성이란 부작용을 낳은 셈이다. 고질적인 자기중심적 사고까지 겹쳐 잉글랜드 축구의 내적 부실화 현상은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잉글랜드 축구의 퇴보는 월드컵이나 유로 대회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2002 월드컵(8강), 유로2004(8강), 2006 월드컵(8강), 유로2008(본선 진출 실패), 2010 월드컵(16강)의 성적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0 월드컵에 “우승한다”며 나선 잉글랜드는 16강에서 독일에 4-1로 대패했다. 지금도 스페인, 네덜란드, 독일 등과의 전력차가 매우 크다. 선수들 개개인의 기량 차이뿐만 아니라 전술 수행 능력에서도 톱 클래스 팀에 현저히 떨어지는 현실이다.



잉글랜드 축구의 ‘바깥 세상 열패감’과 호지슨 선임간 상호연관성은 대단히 크다. 더 이상 외국인 감독에게 휘둘려선 안 된다는 여론에 밀려 자국 출신 감독을 물색했다. 그러나 정작 자국 감독 중에서는 프리미어리그에서 뛰어난 성과를 남긴 인물도, 해외 무대에서 수완을 인정 받은 인물도 없다. 레드냅이야말로 잉글랜드축구협회가 피하려고 하는 ‘우물 안 개구리’의 전형일지도 모른다. 전술이나 데이터보다는 라커룸 안에서의 카리스마로 똘똘 뭉친, 개인기보다는 영국 특유의 파이팅을 중시하는, 그런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호지슨은? 해외에서 오랜 경험을 쌓았고, 세계적 축구 트렌드를 꿰뚫고 있을 뿐 아니라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나름대로의 능력을 인정 받았다. 지금 당장 코앞에 닥친 유로2012 소화를 위해서라도 잉글랜드 대표팀은 경험을 필요로 한다. 에이전트와 어울려 놀러 다닌 게 유럽 경험의 대부분인 레드냅보다는 축구를 위해 유럽 도처를 돌아다닌 호지슨이 훨씬 나은 적임자라고 할 수 있다.

오늘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