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구의 월드사커] 아르헨티나의 2002년과 2014년
입력 : 2013.03.25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장원구의 월드사커] 아르헨티나의 2002년과 2014년

지난 주말 지구촌은 뜨거운 축구 열기로 활활 불타올랐다. 2014 브라질 월드컵 대륙별 예선이 전 세계 곳곳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이제 그 열기는 오는 26일과 27일 다시 한번 피어오를 것이다.

주말 예선에서 여러 강팀들이 승리한 가운데 남미 1위 팀 아르헨티나가 가장 주목을 끌었다. 아르헨티나는 홈구장인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리버플레이트 스타디움에서 베네수엘라를 3-0으로 완파했다. 골운이 좋았다면 스코어가 더 벌어질 수도 있는 완승이었다.

이 승리로 아르헨티나는 7승2무1패 승점 23점으로 1위를 더욱 탄탄히 했고, 5위 팀 베네수엘라(12점)와 차이를 11점차로 벌려 4위까지 주어지는 본선 직행 티켓을 사실상 굳혔다.

사실 아르헨티나같은 강팀이 월드컵 예선을 걱정할 일은 별로 없다. 물론 2010 남아공월드컵은 완전히 예외였지만 말이다. 이는 마라도나 당시 감독의 능력 부족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었다. 어쨌든 아르헨티나는 1974년 독일월드컵 이후 11회 연속 본선 진출을 (거의) 확정지은 셈이다.

베네수엘라전이 끝나고 일부 언론은 아르헨티나에 대해 “2014 브라질월드컵의 강력한 우승후보”라고 보도하기 시작했다. 월드컵 개막전 킥오프를 하려면 아직 1년도 훨씬 넘게 남은 이 시점에 너무 성급한 보도일 수 있다.

그러나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를 비롯해 곤살로 이과인, 앙헬 디마리아(이상 레알 마드리드), 세르히오 아구에로(맨체스터 시티), 에세키엘 라베치(PSG)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막강한 공격수들을 줄줄이 보유한 알레한드로 사베야 감독이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것만은 분명하다. 현 시점에 아르헨티나의 공격진은 그 비교대상이 없을 만큼 단연 세계최강이다.

선수 구성이 화려하고, 명장의 지도력이 빛을 발하며 예선에서 1위를 독주하는 모습. 그리고 유럽 언론조차 ‘우승후보 0순위’로 꼽는 이 상황. 이 장면을 보면 언뜻 2002년 한일월드컵이 생각난다.

당시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이 이끌던 아르헨티나도 막강한 선수층을 바탕으로 남미예선에서 무적의 행진을 거듭했다. 13승4무1패 승점 33점. 2위 그룹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독주했다. 그리고 본선을 앞두고 윌리엄힐, 브윈, 벳365 등 세계 유수의 베팅회사들로부터 공히 가장 낮은 배당률(가장 높은 우승확률)을 받았다.

하지만. 결과는 크게 빗나갔다.

아르헨티나는 우승은 커녕 16강에도 들지 못하고 일찍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잉글랜드, 스웨덴, 나이지리아 등과 죽음의 F조에 편성됐을 때만 해도 아르헨티나가 최소한 16강에는 오를 것이라고들 예상했다. 그러나 숙적 잉글랜드에 0-1로 지고(당시 오언이 얻어내 베컴이 성공시킨 PK에 대해서는 지금도 오심 논쟁이 일고 있다), 스웨덴과 1-1로 비기는 바람에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조별리그 탈락의 희생양이 됐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아리엘 오르테가, 후안 베론, 클라우디오 로페스 등 막강한 공격라인을 앞세워 줄기차게 상대의 문전을 두들겼지만 밀집수비에 막혀 남미 예선 때처럼 골을 많이 터뜨리지 못했다. 그리고 눈물을 삼켜야했다.

당시 ‘클라린’, ‘라 나시온’ 등 아르헨니타 유력지들은 ‘2년 반 동안 잘 하고 2주일을 못해 잔치를 망쳤다’고 개탄했다. 월드컵 남미 예선이 2년 반 동안 열리고, 아르헨티나가 조별리그를 치른 기간은 2주간이었기에 이런 헤드라인을 뽑은 것이다.

때문에 요즘 아르헨티나 언론들은 메시의 신기(神技), 동료 선수들의 뛰어난 활약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2002년의 트라우마가 아직도 강력히 남아있기에 섣불리 우승 얘기는 꺼내지 않고 있다.

축구팬들에게 가장 재미있는 논쟁거리는 바로 “마라도나와 메시 중 누가 역대 최고인가”다. 너무 많이 논쟁이 벌어져 진부한 느낌이 들다가도 그 판이 벌어지면 또 입에 침을 튀겨가며 싸우고, 손가락에 물집이 생길 정도로 댓글을 달면서 옳고 그름을 논한다.

만약 메시가 2014 브라질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린다면 이 논쟁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월드컵 우승을 어느 팀이 차지할 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월드컵 같은 단기 대회에서는 정말 천운이 따라야 승리하고, 우승을 할 수 있다. 운은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선수진을 탄탄히 구성하고, 감독이 지도력을 발휘해야하며 그 나라 축구협회의 완벽한 지원, 축구팬들의 열화같은 성원, 그날 운동장 컨디션, 주심과 부심의 휘슬 등이 모두 유리하게 맞아떨어질 때만이 월드컵에서 1승을 한다. 그리고 그런 천운이 7번 연속 겹쳐야 황금빛 찬란한 FIFA컵을 들어 올릴 수 있다.

아르헨티나가 현재의 경기력을 꾸준히 유지해 본선에서 막강한 공격력을 계속 과시한다고 해도 8강이나 4강전에서 일방적으로 문을 걸어 잠군 상대와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패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국민들, 그리고 아르헨티나 축구를 좋아하는 팬들의 입장에서는 1986년 이후 28년 만에 FIFA 트로피를 들어올리길 간절히 기원하겠지만 그 결과는 오직 신만이 알 수 있다.

그저 지금의 경기력을 꾸준히 유지해나가면서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담담히 기다려야 할 것이다.

사진=ⓒBPI/스포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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