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스페셜9 제휴] 한동훈 기자= '불규민'과 '봉크라이'는 이제 옛말이 됐다.
원래 우규민은 구원투수였다. 봉중근도 원래는 선발투수였다. 봉중근이 호투하고 내려가면 우규민이 구원 등판하던 시절이 있었다. 먼 옛날 이야기 같지만 5~6년 밖에 안됐다. ‘불규민’과 ‘봉크라이’라는 별명도 그때 얻었다. 하지만 2013년, 이들을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LG의 우규민이 13일 KIA전, 10승에 성공했다. 이로써 우규민은 10승과 30세이브를 모두 경험한 13번째 선수가 됐다. 12번째 선수는 바로 팀 동료 봉중근이었다. 지난 시즌부터 LG의 마무리투수로 활약중인 봉중근은 지난 8월 17일 군산 KIA전에서 세이브를 추가하며 시즌 30세이브를 달성한 바 있다.
우규민은 2007년 LG의 마무리로 30세이브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듬해부터는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팀의 확고한 마무리투수로 자리잡지 못했다. 특히 2009년에는 블론세이브를 13개나 기록하는 등 '불규민'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10년 경찰청 입대 후에는 선발 수업을 받았다. 입대 후 2년차인 2011 시즌, 퓨처스리그를 15승 무패로 평정했다. 전역 후 복귀한 첫 해인 지난 시즌에는 불펜과 선발을 오가며 4승 4패 9홀드를 기록하면서 가능성을 확인했다. 본격적으로 선발투수로만 등판한 올 시즌,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구원투수 시절에는 145km/h를 상회하는 옆구리투수 특유의 '뱀직구'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스타일이었다. 헌데 지금은 구속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제구 위주의 투수로 거듭났다. 이닝당 볼넷 허용율이 0.18개(134이닝에 27개 허용), 이닝 당 투구수 15.55개(134이닝에 2085개)로 1위다. 피홈런도 단 4개뿐이다. 팀 내 실질적인 에이스다.
봉중근도 원래는 선발투수였다. 2008시즌부터 2010시즌까지 3년 연속 두 자리 승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2011년 팔꿈치 수술로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2012시즌 중반에서야 1군에 복귀했다. 당시 LG는 리즈를 마무리로 전환했다가 크게 실패하여 마무리투수 자리가 공석이었다. 이에 봉중근이 컨디션 조절 차 1~2차례, 경기 막판 등판했다. 그런데 의외로 결과가 좋고, 본인 또한 적성에 맞는다고 밝혀 아예 불펜에 눌러앉게 됐다. 현재 봉중근은 7승 34세이브로 세이브 부문 2위다.
올 시즌 우규민과 봉중근은 역할 변신으로 재밌는 관계가 됐다. 봉중근이 선발투수였던 시절에는 우규민이 마무리였고, 봉중근이 마무리로 변신한 지금은 우규민이 선발투수가 됐다. 선발투수 시절 봉중근은 '봉크라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승운이 없었는데 주범이 바로 우규민이었다. 2008년 봉중근은 28경기 선발 등판해 무려 186 1/3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은 2.66이었는데 11승밖에 거두지 못했다. 심지어 '9이닝 1실점해서 죄송합니다.'라는 기사까지 나올 정도였다.
특히 2009년 4월 15일, 봉중근의 선발 예정일에 딸이 태어났다. 이날 봉중근은 8이닝 3실점으로 역투했다. 4-3으로 앞선 9회, 우규민이 등판했지만 동점을 허용하며 승을 날리고 말았다. 이날 우규민은 LG팬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그로부터 3년여가 지난 2012년 6월 22일, 우규민이 선발등판했다. 이날 우규민은 5 1/3이닝 2실점하며 선발로의 성공적인 연착륙을 알리며 선발승 요건을 갖추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5-3으로 앞선 9회, 봉중근이 등판했다. 여기서 봉중근은 2사 후 롯데의 강민호에게 투런홈런을 내주며 생애 첫 블론세이브를 기록한다. 이날 경기후 봉중근은 스스로 화를 못이겨 소화전을 맨손으로 내리치는 바람에 한달간 결장했다. 그날부터 LG는 6연패를 했고 7위로 내려갔다.
하지만 올 시즌 우규민과 봉중근은 얄궂은 운명을 이겨내고 LG 마운드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우규민이 거둔 10승 중 6번을 봉중근이 지켰다. 팀 방어율 1위, 불펜 방어율 1위의 마운드를 이끌고 있다. 현재 LG가 4강을 넘어 1위 다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마운드에서 나온다. 둘은 이제 LG 승리의 아이콘이다.
사진=뉴스1제공
원래 우규민은 구원투수였다. 봉중근도 원래는 선발투수였다. 봉중근이 호투하고 내려가면 우규민이 구원 등판하던 시절이 있었다. 먼 옛날 이야기 같지만 5~6년 밖에 안됐다. ‘불규민’과 ‘봉크라이’라는 별명도 그때 얻었다. 하지만 2013년, 이들을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LG의 우규민이 13일 KIA전, 10승에 성공했다. 이로써 우규민은 10승과 30세이브를 모두 경험한 13번째 선수가 됐다. 12번째 선수는 바로 팀 동료 봉중근이었다. 지난 시즌부터 LG의 마무리투수로 활약중인 봉중근은 지난 8월 17일 군산 KIA전에서 세이브를 추가하며 시즌 30세이브를 달성한 바 있다.
우규민은 2007년 LG의 마무리로 30세이브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듬해부터는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팀의 확고한 마무리투수로 자리잡지 못했다. 특히 2009년에는 블론세이브를 13개나 기록하는 등 '불규민'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10년 경찰청 입대 후에는 선발 수업을 받았다. 입대 후 2년차인 2011 시즌, 퓨처스리그를 15승 무패로 평정했다. 전역 후 복귀한 첫 해인 지난 시즌에는 불펜과 선발을 오가며 4승 4패 9홀드를 기록하면서 가능성을 확인했다. 본격적으로 선발투수로만 등판한 올 시즌,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구원투수 시절에는 145km/h를 상회하는 옆구리투수 특유의 '뱀직구'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스타일이었다. 헌데 지금은 구속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제구 위주의 투수로 거듭났다. 이닝당 볼넷 허용율이 0.18개(134이닝에 27개 허용), 이닝 당 투구수 15.55개(134이닝에 2085개)로 1위다. 피홈런도 단 4개뿐이다. 팀 내 실질적인 에이스다.
봉중근도 원래는 선발투수였다. 2008시즌부터 2010시즌까지 3년 연속 두 자리 승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2011년 팔꿈치 수술로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2012시즌 중반에서야 1군에 복귀했다. 당시 LG는 리즈를 마무리로 전환했다가 크게 실패하여 마무리투수 자리가 공석이었다. 이에 봉중근이 컨디션 조절 차 1~2차례, 경기 막판 등판했다. 그런데 의외로 결과가 좋고, 본인 또한 적성에 맞는다고 밝혀 아예 불펜에 눌러앉게 됐다. 현재 봉중근은 7승 34세이브로 세이브 부문 2위다.
올 시즌 우규민과 봉중근은 역할 변신으로 재밌는 관계가 됐다. 봉중근이 선발투수였던 시절에는 우규민이 마무리였고, 봉중근이 마무리로 변신한 지금은 우규민이 선발투수가 됐다. 선발투수 시절 봉중근은 '봉크라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승운이 없었는데 주범이 바로 우규민이었다. 2008년 봉중근은 28경기 선발 등판해 무려 186 1/3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은 2.66이었는데 11승밖에 거두지 못했다. 심지어 '9이닝 1실점해서 죄송합니다.'라는 기사까지 나올 정도였다.
특히 2009년 4월 15일, 봉중근의 선발 예정일에 딸이 태어났다. 이날 봉중근은 8이닝 3실점으로 역투했다. 4-3으로 앞선 9회, 우규민이 등판했지만 동점을 허용하며 승을 날리고 말았다. 이날 우규민은 LG팬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그로부터 3년여가 지난 2012년 6월 22일, 우규민이 선발등판했다. 이날 우규민은 5 1/3이닝 2실점하며 선발로의 성공적인 연착륙을 알리며 선발승 요건을 갖추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5-3으로 앞선 9회, 봉중근이 등판했다. 여기서 봉중근은 2사 후 롯데의 강민호에게 투런홈런을 내주며 생애 첫 블론세이브를 기록한다. 이날 경기후 봉중근은 스스로 화를 못이겨 소화전을 맨손으로 내리치는 바람에 한달간 결장했다. 그날부터 LG는 6연패를 했고 7위로 내려갔다.
하지만 올 시즌 우규민과 봉중근은 얄궂은 운명을 이겨내고 LG 마운드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우규민이 거둔 10승 중 6번을 봉중근이 지켰다. 팀 방어율 1위, 불펜 방어율 1위의 마운드를 이끌고 있다. 현재 LG가 4강을 넘어 1위 다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마운드에서 나온다. 둘은 이제 LG 승리의 아이콘이다.
사진=뉴스1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