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 정지훈 기자= 많은 후배들이 ‘포스트 이영표’를 노렸지만 그 누구도 완벽하게 자리매김하지는 못했다. 그만큼 이영표(36)는 위대했고 그는 진정한 한국 축구의 레전드였다.
한국 축구에 있어서 또 하나의 전설로 기억될 이영표가 ‘스포탈코리아’가 선정한 2013년 국내 화제의 인물 6위에 올랐다. 선정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 축구를 위해 그라운드를 누비던 그가 올해를 끝으로 현역 생활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풀백의 탄생. 이영표는 1999년 6월 12일 멕시코전에 A매치 데뷔전을 치렀고 2000년 FC서울의 전신 안양 LG에 입단하면서 프로로 데뷔했다. 이후 K리그 우승과 준우승에 일조한 그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눈도장을 받으며 2002 한일 월드컵에 나서게 된다.
전설의 시작은 2002 월드컵이었다.
세계적인 선수들을 상대로 준수한 수비력을 보여줌은 물론 공격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이영표 특유의 ‘헛다리’ 드리블은 많은 축구팬들로 하여금 그의 기술을 따라하게 만들었다. 특히 조별리그 포르투갈전에서 터진 박지성의 골과 16강 이탈리아전에서 터진 안정환의 골에 모두 도움을 기록하며 세계적인 스타의 탄생을 알렸다.
‘초롱이’ 이영표,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다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눈도장을 받은 이영표는 박지성과 함께 2003년 1월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의 PSV 에인트호벤으로 향하면서 유럽 무대에 진출했다. 그곳에서도 이영표의 성실함은 빛을 발했다. 초반부터 안정적인 활약을 보인 이영표는 금세 주전으로 자리 잡았고 꾸준한 경기력으로 이내 유럽에서도 인정받는 풀백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꿈의 무대’ UEFA 챔피언스리그. 에인트호벤은 2004/2005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며 이목을 끌었고 레버쿠젠, 올림피크 리옹 등을 물리치며 4강까지 올라섰다. 그리고 4강. 비록 AC밀란과의 경기에서 원정골 우선원칙으로 인해 아쉽게 탈락했지만 이영표는 박지성과 함께 맹활약했고 현지 언론들의 찬사는 끊이질 않았다.
화려한 유럽 생활 그리고 현역 은퇴
챔피언스리그에서 맹활약한 이영표는 빅 클럽들의 이적제의를 받았지만 그의 선택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이었다. 이후 성실한 플레이와 안정감으로 주전 자리를 차지한 그는 박지성과 함께 맞대결을 펼치면서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이영표와 박지성이 악수한 장면은 그해 최고의 사진으로 뽑힐 정도였다.
이후 이영표는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의 유니폼을 입으며 화려한 유럽 생활을 마무리했고 사우디아라비아 알 힐랄에서 2시즌 간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은퇴 기로에 놓인 이영표. 그의 선택은 미국이었다. 행정가를 대비한 초석이었다. 그는 2011년 미국 메이저리그사커 밴쿠버 화이트캡스로 이적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30대 중반인 이영표는 2012시즌과 2013시즌 모두 각각 30경기 이상을 소화하는 투혼을 불태웠다.
그리고 벤쿠버와 한국에서 성대한 은퇴식을 치른 이영표. 그의 질주는 이제 멈췄지만 더 큰 꿈을 꾸고 있었다.
이영표는 지난달 14일에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대표팀의 모든 경기가 기억에 남고 가슴 속에 살아있다. 이영표라는 선수를 떠올렸을 때 축구를 모두와 함께 즐겼다고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며 여전히 환한 미소와 함께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이제 그라운드를 누비는 이영표의 모습은 볼 수 없지만 그가 꿈꾸던 프로 행정가로서 또 한 번 최고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올해의 인물(90점 만점)
1. 홍명보 80
2. 황선홍 61
3. 손흥민 60
4. 기성용 59
5. 김신욱 48
6. 이영표 34
7. 정몽규 33
8. 박은선 27
9. 박주영 15
10. 류승우 14
한국 축구에 있어서 또 하나의 전설로 기억될 이영표가 ‘스포탈코리아’가 선정한 2013년 국내 화제의 인물 6위에 올랐다. 선정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 축구를 위해 그라운드를 누비던 그가 올해를 끝으로 현역 생활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풀백의 탄생. 이영표는 1999년 6월 12일 멕시코전에 A매치 데뷔전을 치렀고 2000년 FC서울의 전신 안양 LG에 입단하면서 프로로 데뷔했다. 이후 K리그 우승과 준우승에 일조한 그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눈도장을 받으며 2002 한일 월드컵에 나서게 된다.
전설의 시작은 2002 월드컵이었다.
세계적인 선수들을 상대로 준수한 수비력을 보여줌은 물론 공격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이영표 특유의 ‘헛다리’ 드리블은 많은 축구팬들로 하여금 그의 기술을 따라하게 만들었다. 특히 조별리그 포르투갈전에서 터진 박지성의 골과 16강 이탈리아전에서 터진 안정환의 골에 모두 도움을 기록하며 세계적인 스타의 탄생을 알렸다.
‘초롱이’ 이영표,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다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눈도장을 받은 이영표는 박지성과 함께 2003년 1월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의 PSV 에인트호벤으로 향하면서 유럽 무대에 진출했다. 그곳에서도 이영표의 성실함은 빛을 발했다. 초반부터 안정적인 활약을 보인 이영표는 금세 주전으로 자리 잡았고 꾸준한 경기력으로 이내 유럽에서도 인정받는 풀백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꿈의 무대’ UEFA 챔피언스리그. 에인트호벤은 2004/2005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며 이목을 끌었고 레버쿠젠, 올림피크 리옹 등을 물리치며 4강까지 올라섰다. 그리고 4강. 비록 AC밀란과의 경기에서 원정골 우선원칙으로 인해 아쉽게 탈락했지만 이영표는 박지성과 함께 맹활약했고 현지 언론들의 찬사는 끊이질 않았다.
화려한 유럽 생활 그리고 현역 은퇴
챔피언스리그에서 맹활약한 이영표는 빅 클럽들의 이적제의를 받았지만 그의 선택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이었다. 이후 성실한 플레이와 안정감으로 주전 자리를 차지한 그는 박지성과 함께 맞대결을 펼치면서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이영표와 박지성이 악수한 장면은 그해 최고의 사진으로 뽑힐 정도였다.
이후 이영표는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의 유니폼을 입으며 화려한 유럽 생활을 마무리했고 사우디아라비아 알 힐랄에서 2시즌 간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은퇴 기로에 놓인 이영표. 그의 선택은 미국이었다. 행정가를 대비한 초석이었다. 그는 2011년 미국 메이저리그사커 밴쿠버 화이트캡스로 이적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30대 중반인 이영표는 2012시즌과 2013시즌 모두 각각 30경기 이상을 소화하는 투혼을 불태웠다.
그리고 벤쿠버와 한국에서 성대한 은퇴식을 치른 이영표. 그의 질주는 이제 멈췄지만 더 큰 꿈을 꾸고 있었다.
이영표는 지난달 14일에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대표팀의 모든 경기가 기억에 남고 가슴 속에 살아있다. 이영표라는 선수를 떠올렸을 때 축구를 모두와 함께 즐겼다고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며 여전히 환한 미소와 함께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이제 그라운드를 누비는 이영표의 모습은 볼 수 없지만 그가 꿈꾸던 프로 행정가로서 또 한 번 최고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올해의 인물(90점 만점)
1. 홍명보 80
2. 황선홍 61
3. 손흥민 60
4. 기성용 59
5. 김신욱 48
6. 이영표 34
7. 정몽규 33
8. 박은선 27
9. 박주영 15
10. 류승우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