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 이두원 기자= 1974년 서독 월드컵 골든볼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네덜란드 토털사커의 지휘자로 엄청난 명성을 쌓은 네덜란드의 요한 크루이프(68)다.
당시 네덜란드는 개최국 서독에 밀려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세상은 대회 최우수선수로 전차군단의 리더였던 프란츠 베켄바워가 아닌 크루이프를 선택했다. 월드컵이 열린 곳이 서독이었고 우승 또한 서독이었기에 골든볼의 영광이 웬만해선 다른 선수에게 갈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만큼 크루이프를 중심으로 오렌지 군단이 당시 보여준 전원수비, 전원공격의 토털사커는 당시로선 획기적이었고 꽤 충격적이었다.
지금 와서 당시의 경기를 살펴보면 토털사커는 당시로선 생소하기만 했던 전방 압박이 동반된 벌떼축구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포지션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전방에서부터 상대를 압박하고, 허점을 보이는 순간 여러 명이 이를 에워싸 공을 빼앗고 전광석화 같은 역습으로 무너뜨리는 것이 주 내용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효과가 큰 만큼 위험 부담도 따르고, 골키퍼를 제외한 10명의 필드 플레이어가 90분 내내 유기체처럼 움직일 수 있는 조직력과 체력 등이 필요한 도박과 같은 전술이었다.
'토털사커'는 아약스 사령탑 출신의 리누스 미헬스 감독이 창안했지만 이를 그라운드 위에서 완성시킨 이가 바로 크루이프다. 적재적소로 이어지는 날카로운 패싱력과 시야, 스피드, 강약조절, 드리블까지 그는 하나의 유기체여야 제 기능이 발휘될 수 있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를 담당했고, 이를 100% 수행해냈다.
압권은 본선 2라운드였다. 1라운드를 통과한 8팀이 2개조로 나뉘어 펼쳐진 2라운드에서 네덜란드는 아르헨티나를 4-0으로 완파한 뒤 동독과 브라질을 각각 2-0으로 물리치는 완벽한 모습으로 결승에 올랐다. 아쉽게 결승에서 '득점 기계' 게르트 뮐러와 베켄바워, 율리 회네스, 폴 브라이트너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이 버틴 서독에 역전패했지만 크루이프의 네덜란드가 선보인 경기력을 대중의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유일한 흠이라면 우승이라는 마지막 방점을 찍지 못한 것이었다.
네덜란드는 4년 후 대회에서도 결승에 올랐지만 개최국 아르헨티나와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해 또 다시 준우승에 머물렀다. 관심을 모았던 크루이프는 가족들이 살해 협박을 받으며 출전하지 않았고 그렇게 국가대표 경력을 마치면서 끝내 우승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아쉽게도 크루이프가 이루지 못한 월드컵 정상의 꿈은 아직도 오렌지 군단에게는 꿈으로 남아 있다. 지난 2010년 남아공 대회에서 기회를 잡았지만 이번엔 무적함대 스페인의 벽을 넘지 못했다. 지금은 조금 약해진 감도 없지 않지만, 브라질월드컵에서 네덜란드의 첫 우승의 꿈이 이뤄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로빈 판 페르시(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아르연 로번(바이에른 뮌헨) 웨슬리 스네이더(갈라타사라이)처럼 오렌지군단을 채우고 있는 크루이프의 일당백 후배들은 그 만큼 많다.
당시 네덜란드는 개최국 서독에 밀려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세상은 대회 최우수선수로 전차군단의 리더였던 프란츠 베켄바워가 아닌 크루이프를 선택했다. 월드컵이 열린 곳이 서독이었고 우승 또한 서독이었기에 골든볼의 영광이 웬만해선 다른 선수에게 갈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만큼 크루이프를 중심으로 오렌지 군단이 당시 보여준 전원수비, 전원공격의 토털사커는 당시로선 획기적이었고 꽤 충격적이었다.
지금 와서 당시의 경기를 살펴보면 토털사커는 당시로선 생소하기만 했던 전방 압박이 동반된 벌떼축구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포지션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전방에서부터 상대를 압박하고, 허점을 보이는 순간 여러 명이 이를 에워싸 공을 빼앗고 전광석화 같은 역습으로 무너뜨리는 것이 주 내용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효과가 큰 만큼 위험 부담도 따르고, 골키퍼를 제외한 10명의 필드 플레이어가 90분 내내 유기체처럼 움직일 수 있는 조직력과 체력 등이 필요한 도박과 같은 전술이었다.
'토털사커'는 아약스 사령탑 출신의 리누스 미헬스 감독이 창안했지만 이를 그라운드 위에서 완성시킨 이가 바로 크루이프다. 적재적소로 이어지는 날카로운 패싱력과 시야, 스피드, 강약조절, 드리블까지 그는 하나의 유기체여야 제 기능이 발휘될 수 있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를 담당했고, 이를 100% 수행해냈다.
압권은 본선 2라운드였다. 1라운드를 통과한 8팀이 2개조로 나뉘어 펼쳐진 2라운드에서 네덜란드는 아르헨티나를 4-0으로 완파한 뒤 동독과 브라질을 각각 2-0으로 물리치는 완벽한 모습으로 결승에 올랐다. 아쉽게 결승에서 '득점 기계' 게르트 뮐러와 베켄바워, 율리 회네스, 폴 브라이트너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이 버틴 서독에 역전패했지만 크루이프의 네덜란드가 선보인 경기력을 대중의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유일한 흠이라면 우승이라는 마지막 방점을 찍지 못한 것이었다.
네덜란드는 4년 후 대회에서도 결승에 올랐지만 개최국 아르헨티나와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해 또 다시 준우승에 머물렀다. 관심을 모았던 크루이프는 가족들이 살해 협박을 받으며 출전하지 않았고 그렇게 국가대표 경력을 마치면서 끝내 우승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아쉽게도 크루이프가 이루지 못한 월드컵 정상의 꿈은 아직도 오렌지 군단에게는 꿈으로 남아 있다. 지난 2010년 남아공 대회에서 기회를 잡았지만 이번엔 무적함대 스페인의 벽을 넘지 못했다. 지금은 조금 약해진 감도 없지 않지만, 브라질월드컵에서 네덜란드의 첫 우승의 꿈이 이뤄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로빈 판 페르시(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아르연 로번(바이에른 뮌헨) 웨슬리 스네이더(갈라타사라이)처럼 오렌지군단을 채우고 있는 크루이프의 일당백 후배들은 그 만큼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