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제대로축구] 무리뉴vs로저스, '버스 두 대' 없어도 똑같은 결과
입력 : 2014.11.10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2013/2014 시즌이 막바지로 치달은 지난 4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첫 우승'이라는 리버풀의 해묵은 꿈은 36라운드 첼시전(0-2 패)에서 산산이 조각났다. 수비층을 켜켜이 쌓은 첼시의 진영에는 공간이 없었고, 제라드는 치명적인 실수로 우승 밥상을 뒤엎었다. 무리뉴의 템포 조절에 완전히 말려든 로저스는 "버스 두 대를 주차해 놓은 것 같았다"라며 불만을 토했다.

무리뉴는 '버스 두 대'를 이동 주차했다. 방패를 올리기보다는 상대와 티격태격 다투며 타격할 틈만 찾았다. 이른 시각 엠레 찬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슬쩍 흔들렸지만, 결국 케이힐과 코스타의 연속골로 지난 맞대결과 똑같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8일(한국시각) 영국 리버풀 안필드에서 열린 2014/2015 EPL 11라운드. 원정팀 첼시의 1-2 승리를 두 감독의 코멘트에 따라 복기한다.


▲ 무리뉴 "뒤로 밀려났어도 걱정하지 않았다"

전반 9분 만에 선제골을 내줬다. 중앙선 위에서부터 압박에 들어간 첼시는 종종 리버풀의 전진을 허용했는데, 이 과정에서 뒤로 물러나는 수비진과 완전히 복귀하지 못한 공격진 사이에 드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스털링의 패스를 받은 엠레 찬은 페너티박스 밖 먼 거리에서 과감히 슈팅을 날렸고, 이 볼이 케이힐을 맞고 굴절되면서 행운이 깃든 골로 연결됐다. 휑한 공간에 대해 중앙 수비 라인 존테리-케이힐이 앞으로 뛰어 나오는 등 최소한의 액션을 취하지 못한 것이 뼈아팠다. 엠레 찬에게는 볼을 잡고, 수비 위치를 확인한 뒤 슈팅을 하겠다는 확신을 가질 만한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그럼에도 첼시는 상당히 빨리 회복했다. 공격을 저지한 뒤 곧장 받아치는 역습의 템포는 리버풀의 수비 전환 속도를 앞질렀다. 패스의 방향 및 강도, 여러 갈래로 찢어져 침투하는 공격진의 동선은 완벽에 가까웠다. 공격이 끝난 이후의 대처도 훌륭했다. 원톱과 처진 스트라이커를 두는 시스템에서는 이 둘을 횡으로 배치해 압박의 그물을 짠다. 최소 두 명 이상이 달려들어야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 '코스타-오스카'는 끊임없이 간격을 조정하며 상대를 억눌렀고, 로브렌-스크르텔은 물론 제라드까지도 맘 편히 볼을 키핑하지 못 했다. 엠레 찬-핸더슨까지 그물에 걸린 리버풀로선 더 부지런히 공간을 만들고, 터치 횟수를 줄이는 것 외엔 달리 방책이 없었다.

▲ 무리뉴 "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모두 환상적이었다"

무리뉴의 칭찬은 끊이질 않았다. 첼시는 전반 14분 동점 골을 쏘아 올리며 빠르게 균형을 맞춘다. 존 테리의 헤더와 케이힐의 슈팅에 미뇰렛이 선방으로 맞섰고, 골라인 판독 기술이 정확한 판정을 내렸으나, 가장 결정적인 건 코스타의 헤더였다. 리버풀의 코너킥 수비 과정은 사람 혹은 공간을 방어한다는 개념이 다소 불분명했는데, 코스타는 우루루 몰린 리버풀 수비와의 경합 상황에서 완승했다. 후반에는 직접 결승골까지 뽑아냈다. 리버풀과 첼시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확실한 스코어러(Scorer)의 존재 유무였고, 코스타는 발로텔리가 흉내낼 수 없는 묵직함을 보였다.

실수도 놓치지 않았다. 로브렌은 공중볼 낙하지점을 확실히 파악하지 못해 볼을 흘렸고, 몇몇 이들은 옆줄 가까이 놓인 볼의 처리에 결점을 보이며 뒷공간을 파고들 여지를 남겼다. 조금 안일하게 생각했던 장면에서도 첼시는 여지없이 밀고 들어와 리버풀을 당황케 했다. 코스타의 팀 두 번째 득점은 윌리안의 깊은 패스를 끝까지 좇은 뒤 앞으로 볼을 쳐놓고 돌아 뛴 아스필리쿠에타의 도전, 그리고 이를 받기 위해 쇄도한 반대편 공격진의 착실함이 맞물린 결과였다. 상대를 끝까지 몰아내고, 공간을 확실히 커버하겠다는 적극성의 부재, 첼시는 리버풀의 느슨한 진영을 그대로 파고들었다.






▲ 로저스 "중요 지점에서의 공격이 잘 풀리지 않았다"

전반전 내내 주거니 받거니하는 열띤 양상이 반복됐다. 보통 볼이 아웃되거나, 파울 등으로 멈춰 있을 때 벤치에서는 "(볼 있는 방향으로) 몸 돌려놓고, 빨리 호흡해"라고 지시하곤 하는데, 이번 매치는 그럴 쉼표조차 둘 수 없을 만큼 무수히 많은 공격이 오갔다. 체력적인 부담을 뛰어넘는 '특별한 무언가'가 경기를 맛깔나게 하는 양념으로 작용했고, 주중 챔피언스리그를 치른 팀들이라곤 믿기지 않을 초월적인 공격 전개 속도가 나왔다.

밀집 수비에 당해본 리버풀로선 속도전이 더 나을 법했다. 최전방에서의 세밀한 전개가 안 될 바에야, 제라드가 받친 엠레찬-핸더슨의 활동량에 스털링과 쿠티뉴의 속도를 얹는 것도 승산이 낮지는 않았다. 실제 중앙선 넘어 전진한 장면도 꽤 됐다. 다만 박스 내 진입이 더없이 어려웠다. 존테리-케이힐을 밖으로 끌어내거나 정면에서 부수기에 발로텔리 카드는 부실했다. 설상가상 공격진 간의 거리 조절에까지 실패해 누군가가 공간을 만들어 볼을 잡아도, 또 다른 누군가가 지원을 해주지 못하는 현상이 빈번했다. 고립된 상태로 볼을 빼앗기고 급히 수비로 넘어가는 악순환의 반복. 로저스는 스터리지의 복귀만을 기다렸다.

▲ 로저스 "케이힐의 팔에 맞은 건 명백한 PK였다"

후반 22분 역전골을 맞은 리버풀은 2분 뒤 교체를 통해 스털링-발로텔리-보리니의 공격진, 조앨런-제라드-핸더슨의 역삼각형 중원을 꾸린다. 후반 34분에는 발로텔리 대신 램버트까지 투입했다. 첼시는 70분 이후 점점 수비 숫자를 늘리면서 상대가 활용할 공간을 죽여나갔다. 지역을 방어하는 과정 중 오스카와 코스타까지 경고를 받았을 만큼 부지런하고도 터프하게 상대를 괴롭혔다. 조직 대 조직으로 맞붙기에 힘이 부족했던 리버풀은 볼 줄 곳을 찾지 못해 종종 개인 드리블로 전진하려는 궁여지책도 폈다.

이미 '버스 두 대'를 경험해본 리버풀은 슈팅에 적극적이었으나, 시도하는 족족 튕겨 나왔다. 총 12개의 슈팅 중 5개(제라드 2회, 발로텔리 2회, 핸더슨 1회)가 70분이 넘어서 나왔는데, 골문 위로 뜬 발로텔리의 슈팅 외 4개 모두 수비벽에 걸렸다. 슈팅 타이밍을 늦게 가져갔다기보다는 첼시의 수비 집중력이 워낙 높았다. 시야에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골키퍼 쿠르트아를 대신해 먼저 몸을 날렸고, 슈팅이 날아갈 수 있는 각도를 최소화했다. 로저스는 제라드의 슈팅이 케이힐의 팔에 맞은 것을 두고 적극 항의했으나, 주심의 휘슬은 조용했다.


글=홍의택
사진=ITV foot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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