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나연 기자] 배우의 연기력은 작품의 완성도와 몰입감을 높이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같은 대사라도 사소한 디테일의 차이에 따라 전달되는바가 다른만큼, 캐릭터를 어떤 배우가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때문에 배우들은 더더욱 캐릭터와 혼연일체한 연기를 선보이기 위해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신들린 연기력으로 '은퇴설'까지 나돌았던 배우들의 사례가 눈길을 끌었다. 오로지 캐릭터를 완벽히 표현해내기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내려놓은 배우의 모습을 본 시청자들이 농담처럼 "은퇴작이냐"는 반응을 보인 것. 결국 이는 일종의 찬사인 셈이다.
배우 이이경은 지난 1일 첫 방송된 tvN 월화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서 선보인 연기로 은퇴설에 휩싸였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절친과 남편의 불륜을 목격한 후 살해당한 강지원(박민영 분)이 10년 전으로 회귀해 시궁창 같았던 운명을 새롭게 개척해나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작중 이이경은 회귀 전 강지원의 남편이었던 박민환 역으로 분했다. 박민환은 강지원이 암투병을 하는 중에도 정수민(송하윤 분)과 불륜을 저지르는 데 이어 강지원의 보험금을 챙기고, 불륜이 들키자 "어차피 죽을 거잖아"라는 망언을 쏟아냈을 뿐만아니라 끝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제작발표회에서 이이경은 "제가 봐도 밉다. 드라마에 몰입하신 분들이 손가락질 할 것", "지상 최악의 남편", "여러분들의 분노를 끌어올려줄 수 있는 친구"라고 귀띔했던 바 있다. 단단히 못을 박고 시작한 만큼 이이경은 시청자들의 뒷목을 잡게하는 빌런 연기로 작품의 초반부를 이끌었다.
특히 '은퇴설'에 불을 지핀 것은 2일 방송된 2회 엔딩 장면. 당시 박민환은 회귀 후 인생 2회차를 맞은 강지원에게 "자기랑 뜨밤 보내려고 택시타고 왔다"며 들이댔다. 또 침대 위에 강지원을 눕히고는 "지금 우리에게 옷 같은 건 필요없다. 거기 꼼짝말고 있어라"라며 샤워 타올을 모두 벗어던져 경악을 자아냈다. 그의 '내일이 없는' 불꽃 열연에 지켜보던 시청자도 강지원과 함께 비명을 질렀다는 후문.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이이경은 자신의 소셜 계정을 통해 비하인드 영상을 공개했다. 그는 "저 당시 내 마음은 빨리 CUT 소리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고 솔직한 심경을 토로해 웃음을 안겼다. 분노 유발과 더불어 온 몸을 내던진 '대환장' 코믹 연기에 시청자들은 "은퇴작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그간 고생 많으셨다"고 댓글을 남겨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해에는 배우 안재홍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마스크걸'에서 파격적인 연기 변신으로 충격을 안겼다. 작중 김모미(이한별 분)를 짝사랑하는 회사 동료 주오남 역으로 분한 안재홍은 탈모에 비만 분장까지, 비주얼부터 범상치 않았다. 원작 웹툰과의 싱크로율을 높이기 위해 그동안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과감히 '추남'으로 변신한 것. 여기에 주오남의 음침하고 변태적인 성향을 백보 살린 오타쿠 연기는, 원작을 뛰어넘다 못해 "경지에 다다랐다"는 평이 쏟아졌다.
이밖에 강간, 리얼돌 등 자극적인 요소의 등장에도 안재홍은 몸을 사리지 않았다. '안재홍'은 사라지고 '주오남'만 남아있는 연기는 평소 그를 잘 알고 있는 팬들마저 소름이 돋을 정도. 이에 배우 김의성은 안재홍의 소셜 계정에 "아.. 드럽고 좋더라"라고 진솔한 평을 남겨 화제를 모았다. 시청자들 역시 우스갯소리로 "은퇴작 아니냐"는 댓글을 달자, 안재홍은 인터뷰를 통해 "(반응을) 다 봤다. 너무 재밌었고, 감사했다. 제가 표현한 캐릭터에 대해 좋은 말씀을 해 주시는 게 너무 감사했다"고 화답했다.
이어 '마스크걸' 출연 이유에 대해 "연기자 입장에서는 새로운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귀한 기회가 될 것 같았다"며 "'좋은 연기를 하고 싶고,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지향점을 생각했을 때 망설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 인물을 더 잘 소화해내고 싶고 새로운 얼굴을 잘 담아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게 생겼던 작품이었다. 주오남이라는 캐릭터를 정말 살아있는 인물처럼 표현했을 때 이 작품이 더 재밌어질 것이고, 모미(이한별 분)가 더 빛날 것 같다는 생각을 가졌다. 표현이 잘 될수록 김경자(염혜란 분)도 강력해 질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캐릭터를 준비했다"고 연기 열정을 드러냈다.
배우 임시완은 '소년시대'에서 보여준 찌질한 연기로 연출자인 이명우 감독까지 "은퇴할까봐 걱정된다"고 우려하게 만들었다. 쿠팡플레이 '소년시대'는 1989년 충청남도, 안 맞고 사는 게 일생 일대의 목표인 온양 찌질이 병태가 하루아침에 부여 짱으로 둔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작중 임시완은 장병태 역으로, 그간 보여줬던 '엄친아' 이미지를 집어던지고 찌질함의 정수를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단정한 외형은 촌스러움으로 무장하고, 공감성 수치를 유발하기까지 하는 코믹 연기에 '은퇴설' 농담이 나도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명우 감독은 인터뷰에서 "캐스팅을 하면서 가장 필요한 덕목은 단 한순간도 멋있어 보이려고 하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자기를 놓을 수 있는 배우. 완벽하게 놔줘야 몰입이 되고 응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다음 작품 어떻게 하려고 저러나' 싶을 정도로 자신을 내려놨다. 현장에서 임시완과 너무나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다"고 임시완을 향한 찬사를 쏟아냈다.
이 같은 발언에 임시완은 "내가 은퇴를 할까봐 걱정될 정도였다고 하는데, 그런 프레임을 씌우신 것 같다. 저는 전혀 은퇴 생각이 없다. 연기를 더 오래, 연기 수명을 오래 가고자 열심히 했는데 강제 은퇴를 시키는 것 같아서 부담스럽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도 "함께 연기하는 보조 출연자 분들이 저와 마주치기만 하면 웃더라. 내 얼굴만 봐도 웃는다는 건 굉장히 고무적"이라며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라고 만족감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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