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꽃’ 조용한 거산, 장동윤과 흰둥이가 뛰댕기는 이유는? [김재동의 나무와 숲]
입력 : 2024.01.18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OSEN=김재동 객원기자] ENA 수목드라마 ‘모래에도 꽃이 핀다’의 배경이 되는 동네 거산군은 작고, 오래되고, 무거운(?) 동네다. 무겁다는 건 이 동네가 이름난 씨름 고장이라 장사들이 많고 체구 큰 남정네들이 즐비해서다.

이 무거운 동네를 잰 발로 뛰어다니는 존재는 단 둘이다. 백구와 백두. ‘흰둥이’란 이름의 진돗개 혈통 믹스견 백구가 뛰어다니는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거산군청 씨름단의 김백두(장동윤 분)가 뛰어다니는 이유는?

김백두라고 드라마 시작부터 뛰댕긴건 아니다. 시작은 옛 친구 오두식의 집을 찾았다가 웬 여자에게 업어치기를 당하면서부터다. 오유경이라는 이 여자를 백두는 옛 친구 오두식이라고 확신한다. 이런 백두를 민현욱(윤종석 분)은 “겉으론 맹해보여도 본능적으로 촉이 발달된 애들”이라고 평한 바 있다.

긴가민가 하도록은 백두도 씨름꾼 본연의 어기적 행보를 이어갔다. 하지만 오유경이 오두식(이주명 분)임을 확인하면서부터는 뜀박질이 일상이 된다.

뼈다귀를 감춰두고 절대로 내놓지 않으려는 굶주린 강아지처럼, 그리고 행여나 누군가의 손을 타진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강아지처럼 툭하면 오두식이 있는 훈련장으로 달려간다.

연상철 코치(허동원 분) 사망사건 관련 김한라(이유준 분)의 유튜브 영상을 확보했을 때도 그랬다. 급한 김에 핸드폰째 낚아 들고 슬리퍼 차림으로 내달렸다. 덕분에 발등이 온통 쓸려 피가 비쳐도 상관없었다. 큰 일 한 기분에 으스대는 중에 오두식은 정없이 말한다. “내한테 영상이나 보내믄 되지 만다꼬 핸드폰을 통째로 들고 오노?” 아무렴 어떤가.

처음 오두식이 민현욱과 부부인 줄 알았을 때 백두는 거리를 뒀다. “니 내를 곤란하게 하지마래이.” 그때 두식은 황당했다. “살다살다 벨 얼탱이 없는 얘기 다 들어본다.”

백두가 은퇴를 번복했을 때 두식은 물었었다. “혹시.. 혹시 니 내를 좋아하나?” 백두가 당황해 얼버무렸다. “뭔소리고? 내는 니 수사하는 거 도와줄라꼬 복귀한 거지” “그기 다가?” 두식이 재차 물었을 때 “그럼 뭐. 그기 다지. 내 니 쁘락치가 돼가..”하다 마빡 한 대 쥐어박히기도 했다.

오두식 표현 ‘얼탱이 없는 얘기’가 현실이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맥주 한 잔이 문제였다. 오두식의 응원에 힘입어 남항전국장사씨름대회 파죽의 4강행을 달성한 백두는 경기 중간 사라진 오두식에 실망한 채 삐뚤어질 거라며 맥주 한 잔 마셨다.

알콜의 힘을 빌어 막 살고 싶어진 백두는 집까지 찾아가 오두식을 포구로 불러냈다. 서운함을 표하는 자리였지만 분위기는 뜻밖에 달달하게 흘러갔다. “옛날 김백두 보는 것 같고 보기 좋대! 이기고 지고 상관없이 즐기는 것 같아서.”란 두식의 칭찬이 감미로왔다. 덩치 두 배 되는 6학년 형아한테 쳐발리고 “두식아 내 너무 재밌다. 나 저 엉아랑 또 붙고 싶다.”했던 옛 추억까지 거슬러 올라갔을 땐 마침내 백두의 눈은 게게 풀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김백두의 취중진심은 “근데 눈을 와 이리 느끼하게 뜨는데?”란 두식의 경계를 뚫고 입맞춤에 성공했다.

으레 알콜이 활성화시키는 백두의 기억분해효소는 막강했다. ‘술을 한방울 마셨다’ 다음은 ‘엄마(장영남 분)가 내려다본다’로 이어졌었다. 하지만 오두식의 입에서 “기억해 내!”란 명령어가 떨어지고 나니 백두의 기억분해효소도 맥을 못췄다. 단지 꿈인지 기억인지가 헷갈릴 뿐.

그래서 두식에게 확인차 물어봤다. “진짜 있었던 일을 기억하는 건지 꿈을 기억하는 건지 니 함 들어볼래? 꿈이니까.. 니가 날 한적한 곳으로 끌고갔어. 요래요래 하다가..꿈이니까.. 내가 니한테 뽀뽀를 했어. 이기 혹시 꿈이 아이가?”했는데.. 두식의 반응이 야릇하다. 눈동자가 갈피를 잃고 입술이 오물조물 거린다. ‘앗, 와씨!’ 그래서 백두는 또 달린다.

그러던 판에 김백두와 오두식의 스캔들이 거산바닥을 휩쓴다. 주미란(김보라 분)으로부터 내막을 전해 들은 오두식은 김백두에게도 당부한다. “아이다. 우리 아무 사이 아니다. 하늘이 쪼개져도 그런 사실 없다고 분명히 말해라. 괜히 다른 소리 안나오도록 단디 해라.”

그런 두식이 백두는 내심 서운하다.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지랑 내랑 어떻게 아무 사이도 아니겠노? 적어도 친구사이는 맞잖아. 그리고 친구사이에 그거까지 했으믄 소문이 마냥 그런 것도 아닌데..”

투덜대며 찾은 시장. 거기엔 오두식과의 스캔들로 입길을 시작한 시장 사람들과 엄마 마진숙 여사가 있었다. 백두를 끌어다 다그치는 엄마. 백두는 그 표정들을 안다. 사람들은 오두식을 쫓아냈던 20년 전 그 표정들을 하고 백두를 바라보고 있었다.

백두의 입이 열린다. “근데요. 안믿을거잖아예. 전에도 그랬었다 아이가. 옛날에 두식이한테 다들 그랬었다 아이가. 두식이네가 그래 아니라고 하는데도 기어이 쫓가냈었잖아. 제발, 제발예. 인자 고만하이소. 억울하게 몰린 사람들은 평생을 상처 속에 살아가는 기라예. 그러니까. 쫌! 제발 쫌!”

백두는 다시 달린다. 이번 달음박질은 좀 더 간절하다. 20년 전 그 때 처럼 오두식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까지 더해졌다. 그렇게 훈련장으로 내달렸다.

어찌보면 뛰어 달려갈 곳이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런 일이다. 그곳에 와락 열어 젖힐 문이 있다는 건 또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리고 거기에 오두식이 있다는 건 정말로 얼마나 큰 안도이고 기쁨인가.

그렇게 마주 선 두식에게 백두가 숨가쁘게 말한다. “그 소문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니는 아인데 내는 맞다고. 내 니 좋아한다.. 니 내 뭘 잃었는지 물어봤지? 니다. 며르치 김밥 잃은 것도, 씨름 파트너 잃어버린 것도 맞는데, 그게 다 니를 잃었던 거다. 인자는 후회 안할라고.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려 갖고 아무 것도 못하고 너를 올려 보냈는데 인제는 안그럴라고. 인제는 맥없이 니를 안보낼 거다. 야 오두식! 내 니를 진짜로 좋아한다. 진짜로 좋아한다고.”

뜀박질 뒤 끝이라서 헥헥 거칠어진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단번에 몰아쳐 말한다. 조석희(이주승 분)를 번번이 애먹이는 흰둥이도 잡히고 나면 그렇게 헥헥거린다.

어쨌든 김백두가 뛰는 이유는 밝혀졌다. 그런데 흰둥이를 잡은 조석희는 여전히 궁금하다. “저수지 쪽으로 기가는 이유가 있을 낀데?” 본능적으로 촉이 발달한 흰둥아, 너는 와 저수지로 그래 뛰어가노?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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