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기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상징과 같았던 유격수 브랜든 크로프드(37)는 지금 세인트루이스 카다널스 유니폼을 입고 있다. 13년 몸담은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처음으로 낯선 팀에서 새 시즌을 준비 중이다.
크로포드의 마음에는 여전히 샌프란시스코가 진하게 남아있다. 지난 1일(이하 한국시간) 자신의 SNS를 통해 “나를 지명하고 빅리그에 콜업한 뒤 믿음을 갖고 13년 동안 뛰게 해준 샌프란시스코 구단주와 프런트 오피스, 평생 친구가 될 선수들과 코치 여러분, 그리고 부침을 겪을 때 함께 응원해준 최고의 팬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여러분과 함께 꿈도 꾸지 못한 일을 해냈다. 나와 아이들에겐 평생 잊지 못할 추억과 순간들이 가슴에 새겨질 것이다”며 감사의 작별 인사를 했다.
우투좌타 유격수 크로포드는 지난 2008년 샌프란시스코에 4라운드 지명된 뒤 2011년 빅리그에 데뷔했다. 2012년부터 주전 유격수를 맡아 지난해까지 13시즌 통산 1654경기를 뛰며 타율 2할5푼(5575타수 1392안타) 146홈런 744타점 OPS .715를 기록했다. 골드글러브 4회에 빛나는 안정된 수비력과 함께 올스타 3회, 실버슬러거 1회 경력의 크로포드는 2012·2014년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도 손에 꼈다.
영원한 샌프란시스코맨이 될 줄 알았는데 지난해 시즌을 마친 뒤 냉기류가 흘렀다. 2년 3200만 달러 연장 계약이 끝나면서 은퇴설이 나오긴 했지만 크로포드는 현역 연장을 원했다. 지난해 11월 파르한 자이디 샌프란시스코 야구운영사장과 면담 자리를 갖고 팀에 남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자이디 사장은 지난겨울 한국인 외야수 이정후에게 6년 1억1300만 달러의 거액을 투자한 샌프란시스코 프런트 수장이다.
1일 ‘디애슬레틱’에 따르면 크로포드는 “결국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람(자이디 사장)이 나를 다시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난 메이저리그 계약을 제안한 세인트루이스에 왔다. 세인트루이스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팀이다. 커리어 내내 그들의 플레이 방식과 조직 운영 방식을 존중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난 샌프란시스코에 돌아가고 싶었다. 그것이 내게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었다”고 속내를 밝혔다.
이어 그는 지난해 11월 자이디 사장과 만난 사실을 알리며 “출전 시간에 대한 욕심은 전혀 없었다. (같은 내야수) 마이크 루시아노, 케이시 슈미트, 타일러 피츠제럴드, 타이로 에스트라다 등 내가 도올 수 있는 선수라면 누구든 도와주는 베테랑 멘토 역할을 하는 게 목표였다. 그게 내가 자이디를 찾아간 이유였다”고 이야기했다.
어느덧 30대 후반으로 접어든 나이. 기량도, 몸 상태도 예전 같지 않아 풀타임 주전 욕심은 없었다. 성장이 필요한 젊은 내야수들을 도우면서 베테랑 멘토 역할을 자처했지만 자이디 사장은 답하지 않았다. 해를 넘겨 1월, 2월이 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샌프란시스코가 유격수를 추가 영입하지 않으면서 재계약 희망을 갖고 연락을 기다렸지만 끝내 오지 않았고, 지난달 28일 1년 200만 달러를 계약을 제안한 세인트루이스로 팀을 옮겨야 했다.
세인트루이스와 계약하기 전 크로포드의 에이전트 조엘 울프가 자이디 사장에게 다시 한 번 계약 의사를 물었다. 하지만 “초청 선수로 다른 선수들과 로스터 마지막 한 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한다”는 말을 듣곤 크로포드도 샌프란시스코 복귀 의지를 접어야 했다.
크로포드는 11월 만남을 떠올리며 “자이디 사장의 반응이 미지근했다. 개인적인 감정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자이디 사장은 이에 반박하며 “크로포드는 우리 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2021년 시즌 후 2년 연장 계약도 했다. 그 계약에 모두가 만족스러워했다. 지난 5년간 우리 둘 다 이곳에 같이 있었고, 정말 멋진 순간을 함께했다. (악감정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이디 사장이 크로포드와 재계약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내부적으로 논의한 결과 크로포드가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갖고 있어도 멘토링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적합성 문제가 있었다. 그가 우리의 젊은 선수들을 멘토링하며 최선을 다해 돕는 것에 대해선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젊은 선수들은 기복이 있기 마련인데 안 좋을 때 프랜차이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유격수가 벤치에 앉아있으면 젊은 선수들이 더 플레이하기 어려운 역학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험 부족한 선수들이 성장통을 겪고 극복하는 과정에 있어 크로포드라는 존재 자체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힌 크로포드는 “지난 몇 년간 많이 다쳤기 때문에 매일 경기하기 어려운 상태다. 매일 뛰고 싶지도 않다. 백업 선수로의 전환은 내게 당연한 일이다. 난 그렇게 할 준비가 돼 있었다”며 아쉬워했다.
자이디 사장은 또 다른 이유로 로스터의 마지막 한 자리는 내야와 외야를 오가며 대주자 역할도 할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하며 그에 가장 적합한 선수가 피츠제럴드라고 강조했다. 백업 선수로 다양한 활용도 측면에 있어 유격수로 제한된 크로포드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봤다.
구단과 선수의 생각이 각자 다를 수 있지만 여러모로 찜찜한 이별이다. 구단 역사상 최다 유격수 출전(1617경기) 기록을 갖고 있고, 월드시리즈 정상에도 두 번 오른 우승 공신이 ‘팽’ 당한 기분을 토로했다는 점에서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waw@osen.co.kr